“TBS 사태, 정권 맘에 안 들면 방송사 하나 없앨 수도 있다는 사건”
[주간경향] 개국 35년 된 수도권 공영방송 TBS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논란은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시는 TBS 재정의 70%를 차지하는 서울시 출연금을 삭감했고, 서울시의회는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6월 조례안이 시행됐고, 지난 9월 행정안전부는 TBS의 서울시 출연기관 지위를 해제하면서 서울시 출연금이 완전히 끊겼다. TBS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민간투자 유치를 위해 정관 변경을 허가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방통위는 현재 방통위원이 1명뿐이라는 이유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성구 TBS 대표이사 대행은 지난 9월 24일 직원 전원에 대한 구조조정 및 해고 계획안을 결재한 뒤 사퇴했다. TBS는 올해 말 재허가 심사도 앞두고 있다.
보수진영 쪽에선 TBS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어 문제라고 주장한다. 반면 PD, 기자, 작가 등 240여명의 TBS 직원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을 장악하고 없애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송지연 언론노조 TBS지부장(46)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 지부장은 21년차 방송작가로 2006년부터 TBS에서 일했다. 그는 “(TBS 폐국 위기는)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송사 하나를 없앨 수도 있다는 사건”이라며 “TBS 폐국이 선례로 남으면 TBS 구성원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TBS의 상황은 어떤가.
“올해 6월 폐지 조례가 적용되면서 돈줄이 끊겼다. 임금이 삭감됐고, 9월부터는 월급을 받지 못했다. 앞으로도 돈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대료, 관리비, 송출비 등 방송사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비용들도 못 내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비가 없었던 것은 2023년 3월부터였다. 그때부터 작가나 외부 출연자·진행자들이 거의 살아남지 못하게 됐다. 아나운서와 PD들이 직접 원고를 쓰거나 진행하는 등 ‘일인다역’을 하고 있다.”
“TBS가 정말 없어진다면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이후 권력에 의해 방송사가 사라지는 최초의 사례다. 1990년 개국했고, 35년간 시민들이 즐겨듣던 방송인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해고 계획안의 시한이 10월 31일로 알려졌다. 직원들 분위기는 어떤가.
“오늘 우연히 (직원들이 이용하는) 익명게시판을 봤는데 슬픈 내용이 많았다. 밖에 나가기 싫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걸릴 것 같다는 글이 있었다. 9월 25일이 월급날이었는데 월급이 안 나온 지 한 달이 되니 피부로 와닿는 것이다.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직원은 240명 정도가 남아 있다. 원래 360명 정도였다. 예전엔 정치인, 연예인 등 외부 출연자들이 회사를 왔다 갔다 했는데 지금 회사는 많은 직원이 나가거나 무급휴직해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남아서 싸우고 있나.
“정말 내 일터가 사라지는지, 두 눈으로 목도하고 증인으로 남고 싶은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시민을 위한 방송을 제작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남아 있는 분, 내가 그만두면 동료들이 힘드니까 자리를 채우기 위해 남아 있는 분도 있다. 나는 타이태닉에서 선장이 마지막으로 배를 지키는 마음으로 남아 있다.”
-TBS 폐국 위기가 드러내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TBS가 정말 없어진다면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이후 권력에 의해 방송사가 사라지는 최초의 사례다. 1990년 개국했고, 35년간 시민들이 즐겨듣던 방송인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TBS가 없어지는 것은 TBS 구성원들에게만 비극이 아니다. 취약한 법적 지위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폐지 조례라는 이름으로 방송사가 사라지는 선례가 남는 것이다. 정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앨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건드는 일이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학생인권조례도 비슷한 방식으로 폐지됐다.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이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게 문제인가.
“책임은 명확하게 오세훈 서울시장에 있다. 서울시 측은 돈줄을 끊은 것에 대해 ‘TBS를 없앤 게 아니다. 민영화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TBS가 소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영화에) 준비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정의 70%가 서울시 출연금이다. 현재는 ‘킬러 콘텐츠’가 다 없어졌고, 협찬이나 광고 수익도 얻기 힘든 상황이다. 자본도 없다. 서울시 출연기관 지위에서 해제되고, 방통위가 정관 개정을 승인하지 않아 외부에서 돈이 유입될 수도 없다. TBS가 자립할 수 있는 모든 통로가 막혀 있다.”
TBS는 원래 ‘서울시 산하 사업소’였고, 직원들도 임기제 공무원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울시 정책 홍보 방송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 TBS의 청계천 사업 홍보가 예다. 그래서 TBS는 박원순 서울시장 때인 2020년 2월 독립적인 서울시 출연기관인 ‘미디어재단’으로 새출발했다. TBS는 당시 “교통·기상 정보 중심의 교통방송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종합 채널로서 뉴미디어의 선두주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부속기관에서 벗어나 시민을 위한 미디어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재정적으로는 서울시 출연금에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구조가 결과적으로 서울시 측이 TBS를 폐국 위기로 내모는 과정에서 ‘약한 고리’가 된 셈이다.
-보수진영은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 시사프로그램의 정치적 편향성을 서울시 지원 폐지의 근거로 내세운다. 진보진영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모호하다. 각자 기준이 달라서 어떤 방송이 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편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편향성 논란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방송사를 없애는 잣대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TBS는 우리 스스로가 제작의 자율성을 부여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서울시 사업소였을 때 서울시 정책을 비판하기보단 홍보하는 시정방송이었다. 2016년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시작하고, 2020년 재단으로 전환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렇게 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탄압 국면이 온 것이다. 스스로 자정하고 시민들과 결합하는 과정에 있었는데 탄압 국면을 마주하면서 멈췄다.”
-프로그램의 편향성 논란과 TBS 폐국 위기는 구별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된다. 정쟁을 떠나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TBS에 대해 시민들에게 두 가지 관점이 있는 것 같다. 한 정파를 옹호하는 편향적인 방송에 세금을 쓸 수 없다는 관점과 주요 프로그램들이 사라질 때 TBS 구성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침묵한 게 문제라는 관점이다. 공영방송의 공정성은 담보해야 하지만, 방송사를 없애는 것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그런데 정권이 (오세훈 시장으로) 바뀌자마자 폐지 조례안이 나왔고, 급격하게 돈줄을 끊어버리는 상황이 됐다. 굉장히 잘못된 일이었음에도 TBS는 양쪽(진영) 모두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그 잘못된 일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 채로 시간이 지나버렸다. 제대로 논의하면 좋겠다. 공정성의 문제가 한 방송사를 없애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를 말이다.”
-TBS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일부 시사프로그램에만 관심이 집중된 것 같다. TBS가 해온 역할을 설명해 달라.
“TBS에는 시민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교통과 기상에 대해 인프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에 재난이 일어났을 때 구역별로 나눠서 방송하고, 코로나19 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송을 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영상 특이점>과 같은 프로그램도 나왔다. 사각지대의 노동자, 사회적 약자를 찾아가 소통하고,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TBS의 공적 기능을 보지 않고 시사프로그램 몇 개로 등치시켜 바라보는 게 안타깝다. 논란이 된 시사프로그램들은 없어졌다. 그런데도 계속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 방식 자체가 폭력적이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는 내부에서 제작 자율성이나 편성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있을 때 싸워왔다. 오히려 오 시장이 임명한 대표가 내놓은 혁신안은 ‘시사방송 퇴출’이었다. 공영방송으로서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데 시사를 퇴출하겠다고 하니 블랙코미디 같았다.”
-폐국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있나.
“정당하게 돈을 벌 방법이 없는 상태다. 다만 우리 스스로 주파수를 반납하거나 청산하지는 않을 것이고, 끝까지 버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임금을 받지 않고도 TBS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냐, 생계에 위협을 받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소중한 일터를 떠날 것이냐, 우리는 그런 기로에 서 있다. 버티고,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왔는데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TBS를 즐겨보던 시·청취자, 시민사회와 같이 TBS를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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