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지도자 체포.. 팽 당하는 'IS격퇴 공신' 쿠르드족
IS와 전쟁 끝나자 동맹들 '돌변'
터키, 쿠르드 시리아 거주지의 87개 마을·115곳 거점 빼앗아.. 수만명 살 곳 잃고 떠돌이 신세
미국 등 국제사회는 수수방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Kurd)족 거주지역인 아프린이 최근 한 달 이상 터키군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한 육상과 공중 공격이 병행됐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쿠르드는 시리아 북부 아프린주(州) 87개 마을과 군 초소 등 전략 거점 115군데를 터키군에 빼앗겼다. 쿠르드 민병대원과 민간인 등 최소 600명이 사망하고 2000여 명이 포로로 잡히거나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프린 주민 수만명은 실향민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비보(悲報)가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아프린 지역 쿠르드 지도자인 살레 무슬림(67) 쿠르드 민주동맹당(PYD) 의장이 지난 24일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체포됐다"고 25일 보도했다. 터키 정부가 그에게 2016년 터키 테러 사건 연루 혐의를 씌워 체코 정부에 체포를 의뢰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쿠르드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억지 혐의라는 해석이 많다.

쿠르드는 작년까지만 해도 터키를 비롯해 미국과 시리아의 동맹군이었다. 'IS'라는 국제사회 공동의 적(敵)이 있었기 때문이다. 쿠르드는 민병대를 조직해 국제연합군 IS 격퇴 작전의 선봉에 섰다. 미국은 무기를 제공하며 쿠르드를 지원했다. 쿠르드의 활약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쿠르드가 독립의 꿈을 이룰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작년 말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거의 제거되며 격퇴전이 마무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각국 정부가 쿠르드에 등을 돌리거나 더 이상의 지원을 끊었다. 터키는 아예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쿠르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다. 시리아 내 쿠르드가 터키 내 쿠르드 세력과 연대해 분리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터키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쿠르드를 방어해주지 않고 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쿠르드가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터키군이 자국 영토로까지 들어와서 쿠르드를 공격하지만 이를 방치하고 있다. IS 격퇴전이 끝나자 쿠르드가 '토사구팽(兔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나자 사냥한 개를 삶아 먹는다)'의 처지에 놓인 것이다.
쿠르드는 아리안계 인종으로 기원전 3세기부터 중동 일대에서 고유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지키며 살아왔다. 전체 인구가 3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큰 민족이다. 하지만 한 번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터키(1540만명)·이란(680만명)·이라크(430만명)·시리아(130만명) 등 여러 나라를 떠돌며 흩어져 살고 있다. 이에 '중동의 집시(Gypsy)' 또는 '유랑 민족'이라 불린다.
쿠르드는 과거 수차례 독립 시도를 했다. 이들은 세계 1차 대전(1914~1918년)으로 오스만 제국이 무너질 무렵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는 데 성공했지만, 터키의 반발에 막혀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70년대 초에는 미국과 이란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지원받았지만, 1975년 이라크와 이란의 관계가 급개선되면서 독립운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과의 전쟁이 끝나가던 1988년 이라크 내 쿠르드가 분리 독립하거나 이란 편에 설 것을 우려해 이들을 화학무기로 대량 학살하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다.
쿠르드는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미·영국 등의 도움으로 이라크 동부 유전(油田) 지역에 자치 정부를 수립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들은 이라크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만, 자신들만의 군대를 창설하고 자치권을 확대해나갔다. 작년 IS 사태로 이라크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분리독립 국민투표를 하며 독립 시도를 했지만, 이라크 정부군의 무력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의 권한은 크게 위축됐다.
쿠르드는 국제연합군의 IS 소탕전에 동맹군으로 참전하면서 한때 '이번에야말로 독립국가를 수립할 기회다'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IS가 소탕되자 각국으로부터 이용만 당하고 거주지역에서조차 공격을 받고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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