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의 꿈 108년, 알파 로메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는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을 뺄 수 없듯, 달리는 것이든, 나는 것이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즐긴다. 모터스포츠도 예외일 수 없다.

자동차 제조사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회사,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제조사, 그래서 경영난에 허덕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마니아층이 두터운 회사가 바로 알파 로메오(ALFA ROMEO)다.

순수한 운전의 재미와 감동을 주는 독특한 성향의 자동차 회사 알파 로메오는 방패 모양의 그릴, 십자가와 뱀 모양이 그려진 독특한 엠블럼, 그리고 아름다운 곡선과 특유의 달리기 성능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알파 로메오는 작고 고성능인 차량을 주로 만들었으며, 정체성이 무척 뚜렷한 제조사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시승할 기회가 없었던 알파 로메오 미토를 1주일간 천 킬로미터 정도 타보았다. 미토(MITO)는 2009년 알파 로메오에서 새롭게 만든 도로용 소형 해치백이다. 차체 크기는 유럽에서 실용성으로 인기가 많은 B세그먼트에 속한다. 미토라는 이름은 조금 성의 없어보이지만, 밀라노와 토리노의 앞 글자만을 따서 지었다.

밀라노는 알파 로메오의 역사가 스며있는 성지(聖地)다. 엠블럼에서도, 창업 초기부터 모터스포츠에서 우승을 쓸어담는 전성기까지, 알파 로메오와 밀라노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토리노는 한때 라이벌이었으며, 지금은 알파 로메오의 모기업이 된 피아트의 영역이다. 밀라노에 있던 본사를,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 그룹(FCA)에 합병된 후 토리노로 옮긴 알파 로메오에게는 피아트라는 시부모 밑에서 가혹한 시집살이가 한창이다.

미토는 엑센트 크기에 BMW 미니와 같은 B세그먼트 고성능 해치백이다. 처음 타보는 알파 로메오라서 무척 긴장하며 테스트 했던 것 같다. 미토 시승기에 앞서,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알파 로메오라는 제조사에 대해 알아보겠다.

 

알파 로메오의 시초, A.L.F.A

알파 로메오는 다락(Darracq)이라는 프랑스 자동차를 조립하던 SAID(Societa Anonima Italiana Darracq)가 시초이다. 이 SAID라는 회사는 프랑스의 기업가 알락센더 다락과 이탈리아의 귀족 우고 스텔라가 포함된 투자자들이 모여 이탈리아 밀라노에 설립했다. 원래는 나폴리에 세우기로 계획했으나, 1906년 알렉산더 다락이 밀라노 쪽에 공장 짓기 적합한 곳이 있다며 계획을 뒤집는 바람에, SAID는 밀라노 북서쪽 외각에 자리잡은 포르텔로에 공장을 짓고 다락을 조립 판매하기 시작했다.

다락 자동차는 프랑스에서 생산한 부품을 밀라노로 가져와 조립했다. 하지만 품질이 좋지 않았고, 생산 또한 무척 지연되면서 수요를 맞추지 못해 경영이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이탈리아의 투자자들 중 대표격인 우고 스텔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그 이름을 롬바르다 자동차 제조 주식회사(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 A.L.F.A라고 지었다. 다락 자동차와는 계속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차량을 생산했다.

1909년,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인 주세페 메로시를 고용하고, 그에게 새로운 자동차의 디자인을 맡겼다. 이 자동차는 1910년 A.L.F.A의 첫 작품이 되는 42마력 24 HP이다. 나중에는 24 HP를 기반으로 60마력에 가까운 엔진을 장착했다. 1911년 부터는 24 HP 두 대로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라는 레이스에 출전하고, 레이스용 자동차인 GP1914를 생산하는 등 모터스포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회사 운영은 순탄할 것 같았지만, 유럽에는 서서히 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뒤덮고 있었다.

 

기업가 니콜라 로메오의 A.L.F.A 인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A.L.F.A에서는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다. 회사는 1915년에 니콜라 로메오라는 기업가에게 매각됐다. 니콜라 로메오는 공장을 군수물품 생산체계로 변환시켰고,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전쟁이 끝난 후, 니콜라 로메오는 그 돈으로 철도사업에 투자하여 큰 수익을 얻었다. 니콜라는 자동차 제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차량 생산이 중단된 공장에는 백여 대의 차량을 만들 만큼 부품이 남아있었다.

니콜라는 1919년 다시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1920년에는 니콜라가 자기의 성인 로메오를 붙여, 회사 이름을 ‘알파 로메오’로 변경했다. 그 이후 생산된 차가 바로 토르피도(Torpedo) 20-30 HP였다. 토르피도 20-30 HP는 알파 로메오의 엠블럼을 달고 판매되었다.

 

알파 로메오와 엔초 페라리

1920년 알파 로메오는 23살의 신참 레이서, 엔초 페라리를 레이스 부분 드라이버로 영입한다. 엔초는 1923년 비토리오 야노라는 걸출한 레이스 엔지니어를 설득해서 알파 로메오로 영입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비토리오는 최초의 DOHC 기술을 개발해 레이스카에 적용한 당대 최고의 차량 엔지니어였다. 비토리오는 현재 알파 로메오의 고성능 경량 차량이라는 정체성을 만든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알파 로메오의 주세페 메로시가 디자인 한 레이스카 40-60 HP 코르사는 1920년, 무겔로 서킷 경기에서 주세페 캄파리가 탄 차가 우승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같은 해 타르가 플로리오에서는 엔초 페라리가 2등으로 들어왔다. 주세페는 도로용 차량이지만 우승한 레이스 카처럼 단단한 차량인 40-60 HP를 만들어냈다. 6 리터 직렬 4기통 엔진에 70마력을 냈다.

한편 1914년에는 밀라노의 마르코 리코티 백작이 카로체리아(차량 디자인 전문회사)에 40-60 HP를 기반으로 물방울 모양의 자동차를 만들도록 한다. 이 차는 '40-60 HP 에어로다이나미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무게가 베이스 모델보다 훨씬 무거웠지만 최고 속도가 더 높았다. 자동차 공기역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엔초 페라리는 1924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코파 아세르보라는 경기에서 처음으로 승리했다. 알파 로메오에서는 엔초의 실력을 확인하고는 더 큰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잘 나가던 엔초는 1932년 아들 디노가 태어나면서, 차량 개발과 관리부분을 맡게 되었다. 엔초는 알파 로메오의 펙토리 레이싱 팀을 맡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당대 최고의 레이서로 꼽히는 주세페 캄파리, 타지오 누볼라리등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엔초는 자신 소유의 차량을 만들고 싶었고, 결국 1929년 알파 로메오를 떠난다. 한편 펙토리 팀은 회사에서 분리되면서, 엔초가 이 레이싱 팀에 투자했다. 엔초의 레이싱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탄생이다. 하지만 1933년까지 알파 로메오와의 파트너십 관계는 계속 이어왔는데, 제정적 이유로 알파 로메오의 도움 없이 완전히 홀로서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3년부터 1938년까지는 스쿠데리아 페라리가 알파 로메오의 펙토리 레이싱 팀 이름으로 활동했다. 흔히 요즘 말하는 아웃소싱 방식이다. 이때 이름은 알파 코스(Alfa Corse). 이후 페라리가 만든 차에도 알파 로메오 엠블럼을 사용해 만들었고, 최초로 페라리의 엠블럼이 등장한 것은 1947년이다.

페라리 엠블럼을 달았다는 것은, 알파 로메오와는 다른 팀으로 싸우겠다는 선전포고였다. 페라리는 꾸준히 주요 경기에서 승리해왔고, 결국 1951년 실버스톤에서 열린 포뮬러 1 경기에서 알파 로메오의 알페타 159를 꺾고 첫 승리를 거둔다. 처음으로 강적 알파 로메오를 격파한 엔초는 아이처럼 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알파 로메오는 포뮬러 원의 전신인 그랑프리(Grand Prix)에서 수 많은 승리를 해왔던 터주대감이다. 그런 자신의 품에서 키운 소규모 팀,페라리에게 패배하여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1952년과 1953년에는 월드 그랑프리가 포뮬러 투 규정으로 운영되면서, 강력한 슈퍼차저를 장착한 알파 로메오는 나갈 수 없었다. 결국 알파 로메오는 1951년을 끝으로 포뮬러 1 레이스에서 철수하게 된다. 한편 페라리는 레이스를 운영하는데 돈이 부족해졌다. 결국 팀 운영비용을 벌기위해서, 페라리는 일반인이 탈 수 있는 도로용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돈 보다 중요하다고?

서두에서도 얘기했지만, 경쟁의식은 인간 본연의 속성이라고 보여진다. 특히 남한테 지고는 발 뻗고 못자는 호전적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겨서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 실질적인 이득보다는, 자존심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사들도 같은 성격을 지녔다.

포뮬러 1이 생기기 이전, 초창기 월드 그랑프리와 밀레 밀리아, 타르가 플로리오 같은 굵직한 각종 모터스포츠에는 알파 로메오의 차량들이 출전해 매번 좋은 성적을 냈다. 알파 로메오 하면 언제나 상위권에 속하거나 우승하는 강력한 팀이었다. 페라리가 아웃소싱으로 운영했던 알파 코스, 1961년 출범한 오토 델타 팀이 모터스포츠 하면 알아주는 알파 로메오의 레이싱 팀이었다.

알파 로메오는 누구나 탈 수 있는 대중적인 차량을 만들기 보다는, 고성능의 잘 달리는 차를 보급하고 싶었다. 모터스포츠는 고성능 차량을 홍보하기 위한 좋은 무대이다. 그러나 레이스용 차량은 제작 대수가 적기 때문에 시제품 차량부터 전용 부품생산까지 무척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하이테크 기술을 개발해 모터스포츠에서 승리하는 것이, 경영에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모터스포츠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뒀음에도 그것이 매출로 연결되지 않았다.  알파 로메오는 그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모터스포츠는 매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결국 경영상태가 악화되어 매각 위기에 빠졌다.

1933년에는 니콜라 로메오가 경영부진을 이유로 사퇴, 이탈리아 국영 기업의 소유로 넘어간다. 알파 로메오는 무쏠리니 독재정권하에 일반 차량들 보다는 버스, 상용차와 트럭, 트롤리버스 같은 차량들을 많이 만들었다. 전쟁중에는 군수품과 비행기 엔진등을 만들어 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모터스포츠 생각뿐이었다.

80년대 들어서 계속된 경영 악화는 회사 매각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여러 기업이 인수의사를 밝혔으며 이중에서는 폭스바겐 그룹의 전 의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러브콜을 보냈지만, 결국 1986년 피아트에 인수되었다. 라이벌이었던 란치아와도 피아트 아래에서 ‘피아트의 알파-란치아 공업’으로 합병되었다. 한편 페라리 역시 경영난에 허덕이다 1960년 SEFAC S.p.A. 라는 공기업으로 전환되었고, 1969년에는 피아트가 지분을 50% 이상 모아 결국 피아트 자동차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기업들의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단순히 돈을 뛰어넘어서, 자존심 하나만 가지고 버텨온게 아닌가 싶다.

 

포뮬러 1에 다시 참가, 알파 로메오 자우버 F1팀

유럽 전역에서는 여러 가지 룰로 각국에서 그랑프리들이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룰이 차이가 많이 나서 제조사들에게도 무척 신경써야 하는 문제 중 하나였다. 결국 국제 자동차 연맹(FIA)가 출범하면서 유럽 전역의 그랑프리는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로 묶이게 되었다. 알파 로메오는 유럽 전역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 1950년 시작한 포뮬러 1에서도 첫 월드 챔피언을 가져갔다. 이후에는 타이틀 스폰서, 또는 엔진 제공사로 그랑프리에 출전했다. 61, 62, 63, 65년도에는 스폰서 부분으로, 70년 브루스 멕라렌 모터 레이싱에, 71년 STP March 레이싱 팀에, 76년 브라함-알파 로메오(Brabham-Alfa Romeo)팀에 엔진을 지원하며 참여했다.

소극적으로 참여하던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에서, 이제 알파 로메오의 이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포뮬러 1 팀 중 하나인 자우버에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 기업인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FCA)의 알파 로메오 브랜드 회생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페라리가 알파 로메오를 퇴사하고, 자신의 차량을 만들어서 결국 승리를 쟁취해 낸 시절이 있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알파 로메오와 페라리는 한솥밥을 먹는 사이이다. 페라리는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FCA)에서 분리되긴 했으나, 주식 상장 이후 페라리의 최대 주주가 아넬리 가문의 지주회사 엑소르(Exor)이기 때문에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자회사에서 동등한 관계가 되었을 뿐, 결국 같은 소유주의 것이다. 아넬리 가문은 피아트를 창업한 재벌가문이다.

하지만 한동안 포뮬러 1에서 손을 띄고 있었던 알파 로메오의 엔진을 얹기에는 부담스러웠는지, 페라리의 엔진를 리브랜딩 하여 알파 로메오의 이름으로 지원한다. 한편으로는 자우버 팀은 페라리의 자매팀이 되어, 앞으로 신규 드라이버가 자우버로 포뮬러 1에 입문한 후 실력을 쌓으면, 페라리 팀으로 옮겨가기 위한 두 번째 팀으로 보고 있다.

 

고성능의 상징, 네잎클로버 - 콰드리폴리오

알파 로메오의 일부 모델에는 차체 측면에 콰드리폴리오(Quadrifolio)라 부르는 네잎클로버가 그려져 있다. 흰색 삼각형 안에 네잎클로버가 그려진 이 뱃지는BMW의 M 디비전, 벤츠의 AMG와 같은 고성능 차량을 뜻한다. 이외에도 GTA와 GTV가 쓰였는데, 그란투리스모GT에 가벼운 무게(Alleggerita)를 붙인 것이다. 최초로 쓰인 것은 1923년, 우고 시보시의 차량에서 레이스에 행운과 안전을 빌며 네잎클로버를 흰색 사각형 안에 그려넣은 것이었다.

우고는 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머쥐었고, 타르가 플로리오에서도 우승했다. 하지만 부적으로 너무 행운을 많이 받은 탓인지, 신형 P1을 몬자 서킷에서 테스트 하던 중 우고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때 사고난 P1에는 콰드리폴리오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알파 로메오에서는 우고 시보시를 기리기 위해 흰색 사각형을 삼각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일반 차량에서 처음 쓰인 것은 1963년 알파 로메오 줄리아 TI 슈퍼였다.

 

108년, 알파 로메오 엠블럼의 변화

해외 자동차 매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엠블럼 중 1위를 한 자동차가 바로 알파 로메오다. 붉은 색 십자가와 꼬불꼬불한 녹색 뱀 모양이 인상적인 이 복잡한 엠블럼 안의 그림은 처음 정해진 이후부터 알파 로메오의 긴 역사가 담겨있다. 좌측의 붉은 십자가는 밀라노의 상징, 우측은 14세기 밀라노를 통치했던 바스콘티 가문의 문장이다. 둘 다 밀라노를 상징한다. 그래도 잘 모를까봐 친절하게 아래쪽에 밀라노라고 적어두었다.

1925년, 알파 로메오 P2가 메이저 그랑프리들에서 우승을 휩쓸자, 이를 기념하고자 엠블럼 둘레에 월계관을 씌웠다. 1946년에는 엠블럼 만드는 기계가 고장나서, 적색 한 가지로만 만들어내기도 했다. 1972년에는 공장을 나폴리로 이전하면서 밀라노 라는 문구가 빠졌다. 이후 월계관도 없어지면서 지금의 알파 로메오 엠블럼이 되었다.

 

하이테크 개발에 앞장 선 알파 로메오

1914년 레이스용 차량인 GP1400에 최초의 DOHC를 적용했다. 도로용 차로는 1928년 6C 1500 스포트에 처음 사용되었다. 또한 초기형 전자식 인젝터 시스템을 1940년 밀레 밀리아에서 6C 2500에 선보였다. 6개의 전자식 인젝터와 연료펌프가 조합되어 준 고압으로 작동되었다. 또한 기계식 가변 밸브 타이밍(Variable Valve Timing, VVT) 기술을 최초로 생산차량에 적용한 회사이기도 하다. 1980년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3세대의 엔진에 VVT가 장착되었다.

1962년에는 4도어 후륜구동 패밀리 세단, 줄리아 TI 타입 105(Tipo 105)에 최초로 네 바퀴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를 적용했다. 1996년에는 알파 로메오 156(Tipo 932)에 승용차로는 세계 최초로 커먼 레일 터보차저 디젤엔진을 장착했다.

알파 로메오는 모터스포츠를 무척 사랑하는 자동차 제조사이다. 이미 경영 악화로 한 번 손뗀적이 있지만, 올해 다시 포뮬러 1에 진입했다. 모터스포츠의 이미지와 알파 로메오는 무척 잘 어울린다. 이전의 고성능 이미지를 살려 현재는 럭셔리 고성능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2005년에는 마세라티의 V8 4.7 리터 엔진을 얹은 신형 8C를 출시했다. C는 실린더를 뜻한다.

이어서 2013년에는 로터스 엘리스의 미드십 플랫폼을 가져와 1742cc 터보 멀티에어 엔진을 얹은 4C(Tipo 960)를 내놓았다. 2016년에는 신형 4도어 세단 줄리아(Tipo 952)와 고성능 SUV 스텔비오(Tipo 949)를 LA 오토쇼에서 출시했다.

알파 로메오는 모터스포츠에 매달리는, 고집 센 이탈리아 사람 같다. 그 고집이 지금의 알파 로메오를 살아남게 했지만, 언제까지나 꿈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나마 모터스포츠에 남긴 위대한 발자국 덕분에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독특한 이탈리아 고집쟁이 알파 로메오는 2000년 대에 들어서 매력적인 차량들을 내놓으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꾼다. 물론 치명적인 그들만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다. 알파 로메오의 포뮬러 1 복귀는 그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난해하면서도 매력있는 알파 로메오. 다음으로 이어지는 미토 시승기를 통해서, 이들이 자동차를 통해 어떤 꿈을 추구하는지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