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주한미군 없는 한미 동맹' 주장..실현 가능할까

서울시청앞 광장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주한미군 철수 반대와 북핵개발 저지를 외치며 인공기를 찢었다. 반면 탑골공원에서는 불평등한 한미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자주와 평화를 외쳤다. “84년전 독립을 선언했던 선조들의 뜻을 다시 새기고자 행사를 마련했다”는 양측 주최측의 언급 외에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었던 두 집회는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국내 여론의 시각차가 그만큼 크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

◆미군 주둔 없는 동맹은 ‘빈껍데기’
한미 동맹에서 주한미군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주한미군 없는 한미 동맹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연합방위체제는 국가 안보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인식되어왔다.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지 않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허점을 주한미군이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주둔해야 동맹이 유지된다는 규칙은 없다. 미국은 2000년대 이래로 해외 주둔 미군 규모를 줄이는 대신 스트라이커 장갑차 부대 등을 창설, 미국 본토에서 신속하게 해외로 전개하는 능력을 향상시켜왔다. 덕분에 모든 동맹국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고도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에서도 일부 국가는 미군이 주둔하지 않지만 큰 문제가 없다. 미군이 동맹국에 전개하는데 필요한 공항과 항만, 미군과의 연합훈련 경험이 풍부한 군대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북한이 주한미군을 위협적 존재로 간주하고 있으므로 이를 해소해야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은 여전하다. 이와 관련해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17일 보도된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최선은 (한미) 동맹을 없애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한미 동맹을 다자안보협력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자안보협력체제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통해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국들이 안보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신(新) 한미 동맹 구축 준비해야
남은 방법은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미 동맹 체제 유지뿐이다. 하지만 1953년 10월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동맹 체제는 냉전 시대의 유물로 21세기 환경에 부합하지 않는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인식 속에 구축된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면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이같은 지적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다.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더불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한미 동맹의 발전을 외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해왔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북한 비핵화, 북미정상회담 등이 잇따라 거론되면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는 지금이야말로 한미 동맹의 재구축이 시급하다. 이는 북한에게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이 북한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에 위협적이지 않은 한미 동맹 재구축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동맹의 확대 및 강화다. 쉽게 말하면 미국의 글로벌 안보전략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한반도 방위는 전시작전통제권을 확보한 한국군이 주도하되 특전사를 비롯한 일부 병력을 신속대응부대로 편성한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 주한미군을 아시아태평양 안보지킴이로 바꾸고, 한국군 신속대응부대는 주한미군과 함께 분쟁지역으로 출동해 연합작전을 수행한다.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미국 해군과 함께 해적 소탕작전을 지속하고,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조직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대(對)테러 국제연대에 참가해 테러와의 전쟁을 함께 한다. 한미 연합훈련 강도와 횟수도 미일 동맹 수준으로 격상한다. 사실상 혈맹(血盟)이 되는 셈이다.
반면 미국과의 안보 협력 확대가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고, 대만을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국을 압박한 바 있는 중국이 제2, 제3의 한한령을 내릴 여지는 충분하다. 미국과 평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의 반발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미국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도 많아졌다. 자유와 평등, 시장경제, 인권에 기반한 미래 비전을 설정하고 그에 맞게 동맹 현안을 조정하면서 대등한 관계에서 글로벌 이슈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방위의 한국화’를 지원하고 한국은 미국의 안보 어젠다를 지지하면서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문제는 이같은 방안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은 1990년대부터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대등한 동맹관계를 추구했으나 리비아 공습,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독자적인 군사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유럽 주둔 미군 규모가 늘어나면서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도가 높아졌다. 일본은 미국과 대등한 형태의 연합지휘구조를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미국과의 군사일체화 수준이 매우 높다. 한국도 유럽과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은 지난 60여년 동안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의 동맹 체제는 현 시점에서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950년대의 한미 동맹 체제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평등주의와 이상적 외교에 휩쓸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에는 동북아 안보정세가 불확실하다.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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