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0〉불귀신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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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과 관련해서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설화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짝사랑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쉰 살 무렵에 왕이 된 선덕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움과 너그러움은 물론이려니와 지혜로움까지 만천하에 과시하는 정치적인 이야기지만, 지귀의 입장에서 보면 죽어서도 사랑의 불을 끄지 못하고 세상을 태우며 돌아다니는 사적인 상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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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라 선덕여왕과 관련해서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설화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짝사랑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다. ‘태평통재’ ‘대동운부군옥’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 사랑의 전모는 이렇다.
지귀(志鬼)라는 이름의 역인(驛人)이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선덕여왕을 사랑했지만, 신분이 달라 다가가지도 못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여왕이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측은한 마음에 절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절에 미리 가서 기다리던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여왕은 그가 자는 모습을 보고는, 황금 팔찌를 풀어 그의 가슴에 얹어주고 궁궐로 돌아갔다. 여왕을 만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그의 몸에서 불이 일었다. 결국 그는 그 불에 타죽어 불귀신(火鬼)이 되었다.
설화는 여왕의 사사로운 반응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이, 그녀가 술사(術士)에게 다음과 같은 주문을 쓰게 해 문벽에 붙이게 했다는 사실만 덧붙인다. “지귀의 심중에 있는 불이 그의 몸을 태워 불귀신이 되었네. 넓은 바다 밖으로 떠돌고 있으니 볼 수도 없고 친할 수도 없네.” 이 주문으로 불귀신, 즉 화재를 막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쉰 살 무렵에 왕이 된 선덕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움과 너그러움은 물론이려니와 지혜로움까지 만천하에 과시하는 정치적인 이야기지만, 지귀의 입장에서 보면 죽어서도 사랑의 불을 끄지 못하고 세상을 태우며 돌아다니는 사적인 상처의 이야기다. 그런 처지의 지귀가 안쓰러웠던지 시인 김춘수는 그러지 말고 “삭발을 하고/가야산 해인사에 가서/독경이나 하지”(‘타령조 3’) 그랬냐며 지귀를 위로한다.
그런데 진짜 위로다운 위로는 시인 서정주의 ‘선덕여왕의 말씀 1’에 나온다. 시인은 선덕여왕의 영혼을 등장시켜 지귀의 영혼을 이렇게 달랜다. “사랑이거든/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서라벌 천년의 지혜가 가꾼 국법보다도 국법의 불보다도/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그의 사랑이 “살(肉體)의 일”, 즉 육체적인 사랑을 뛰어넘는 진정한 사랑이라면 “국법의 불”, 즉 정치보다 더 영원하라는 여왕의 탈정치적인 위로요 축원이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까지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던 지귀에게 이보다 더 위안이 되는 말이 있을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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