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 2만6000곡서 뽑아낸 한 문장.."나는 너를 사랑해"
노랫말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나' 22만회, '너' 12만회로 선두..'사랑' 단어 포함된 노래 65% 달해
방탄소년단의 '팔도강산' 가사처럼 사투리 활용한 힙합의 감수성에 감탄
노래가 된 시 15곡중 6곡이 소월 詩
■ 100년간 유행가 2만6251곡 가사 언어학적분석

음반으로 발매된 최초의 노래로 알려진 '희망가'가 나온 1923년부터 한 세기에 걸쳐 사랑받고 있는 유행가 2만6251곡을 추려 원고지 7만5000장에 달하는 노랫말을 분석했다. 흩어진 자료를 한데 모으기 쉽지 않아 노래방 책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이 노랫말들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며 "가락과 장단이 중심인 듯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노랫말"이라고 말한다.
우선 시와 가사의 관계부터. 시에 곡을 붙이면 노래가 된다. 그럼에도 유행가가 된 시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김소월의 시가 노래로 많이 불린 게 돋보이는 이유다. 김정희의 '개여울'(1967), 유주용의 '부모'(1969),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1978), 희자매의 '실버들'(1978), 라스트포인트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1979), 마야의 '진달래꽃'(2003)까지 저자가 추려낸 노래가 된 시 15편 중 6편이 김소월의 시다. 저자는 '개여울'을 예로 들며 5연과 3음보로 구성된 데다 3연과 5연이 같아 후렴을 만들기도 쉬운 구조라는 탁월한 장점이 있음을 짚어낸다. 김소월은 규칙적이고 적당한 길이, 쉽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노래를 위한 시'의 전범이 됐음을 알려주며 여러 사람이 기억하고 공감하는 노랫말도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노래를 실은 매체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레코드판에서 테이프로 CD에서 다시 음원으로. 매체의 제약이 사라지자 곡 길이도 자유로워졌다. 이 변화를 고스란히 담은 것이 곡 길이와 가사 글자 수다. 노래방책 '빅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가사의 평균 글자 수는 1949년까지 158.4자, 1950~1969년 137.4자에 그쳤던 것이 점차 늘어났다. 1970~1989년에는 197.6자, 1990~1999년 346.7자, 2000년 이후에는 486.4자로 말이다.

우리 노래가 유독 편애하는 호칭도 있다. 가사 속 어머니는 481회, 엄마는 1011회가 나오는 데 반해 아버지는 353회, 아빠는 367회에 그친다. 노래 속 엄마가 늘 친근하고 고맙고 그리운 존재임을 떠올려보면 수긍이 간다. 노랫말에서 오빠는 특이한 지위를 차지한다. 과거에 오빠는 가족 간에 쓰는 말이었지만 어느덧 범위가 넓어졌다. 그래서 2000년도 이전 노래 6773곡에 등장하는 오빠는 64회에 불과하지만 2000년도 이후 1만9478곡에는 784회나 등장한다. 누나가 289회, 언니가 145회 등장한 것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숫자다. 왁스의 '오빠'가 등장한 게 2000년이었다. 여자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누구나 오빠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게 된 '오빠 전성시대'의 상징과 같은 노래인 셈이다.
노랫말 속에 사투리도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 특히 최근 힙합 음악은 자유자재로 사투리를 활용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팔도강산' 가사는 마치 전국 투어를 위해 전국 지명을 다 끼워넣은 것처럼 보인다.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우리가 와 불따고 전하랑께 우린 멋져부러 허벌라게 아재들 안녕하십니꺼 내 카모 고향이 대구 아입니꺼 그캐서 오늘은 사투리 랩으로 머시마 가시나 신경 쓰지 말고 한번 놀아봅시더." 이 노래를 분석하며 저자는 사투리에 애정을 담아 쓴 가사의 언어학적 통찰과 사회 감수성에 감탄한다. 심지어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말이 우리말이듯이 지역 사투리나 세대 사투리가 들어간 노래도 모두 우리 노래이다. 모두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이라고 말한다.
이 밖에 노래가 사랑한 직업 1·2위가 선생님과 마도로스라는 점, 노래가 사랑하는 계절은 봄, 겨울, 여름, 가을 순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노래가 영원히 사랑할 단어도 빠뜨리지 않는다. 눈과 크리스마스다. 두 단어가 같이 등장하는 노래는 40곡에 달한다.
지리적으로는 서울과 부산에 이어 강남과 홍대가 대구나 인천보다도 더 많이 노래에 등장한다. 노래와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단연 술과 커피다. 술은 제목과 가사를 합쳐 2000번 이상 등장하고 소주는 170여 번 나온다. 커피 역시 530여 번 등장한다. 저자는 "우리의 삶과 늘 함께하는 노래이니 의식주 모두가 노랫말에 꾸준히 반영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노래가 시대상을 반영하게 된다면 "아파트도 아닌 원룸에서 헐렁한 차림으로 혼밥과 혼술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며 "노래도 그렇게 혼자 듣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유행가는 흘러가는 노래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장 친숙하게 부르고 즐긴 생생한 역사임을 부정할 순 없다. 이 책이 소개하는 수많은 노래를 만났을 뿐인데, 지난 백년을 통과하는 시간 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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