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느림의 미학

서울문화사 2018. 2. 2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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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시간을 정리하며 보내온 마지막 편지.
이제 아나운서 김보민으로 돌아간다.
객원 에디터 이이슬 글 김보민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3년이 흘렀다. 나는 삶의 3가지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가장 잘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 둘은 목숨을 줘도 아깝지 않을 사랑을 만나 결혼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그 사람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인생을 사는 거다.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선이 같은 사람이 좋았다. 남편과 난 짐 캐리가 나오는 코미디 영화를 보며 울고 또 울었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에 다른 영화를 봤다. 백발의 노부부가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에서 “우리도 저렇게 살자”고 외쳤다. 그 후 남편과 10년을 앞서 살기로 결심하며 택한 일본행이었다. 적당한 때는, 결심한 그날이다. 교토는 모든 계절이 아름답고 세계 문화유산이 17개나 있으며 일본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도착해서부터 헤맸다. 헤이세이(平成, へいせい, 일왕 즉위부터 현재)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의 연호를 몰랐던 나는 ‘2018년’처럼 서기로 썼다. 은행, 관공서에 갈 때면 용기가 필요했다. 식당 예약은 웹 사이트에서 가능했지만, 전화 예약이 필수인 병원은 통화하기 전에 미리 연습했다. 아나운서인 나도 낯선 언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신칸센(新幹線) 표를 사러 갔을 때다. 지정석과 자유석 중에서 자유석을 선택했는데, 일본어로 자유석을 뭐라고 하는지 몰라 급한 김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프리(free) 새키(席) 주세요”라고 했다. 한국에서 일본인이 경주역에서 “프리 좌석 주세요”라고 말하는 느낌일 것이다. 옆에 있던 남편은 나의 임기응변에 한 번 놀라고, 자유석(自由席, 지유새키)을 ‘프리 새키’ 라고 크고 명확하게 말하는 내 음성에 두 번 놀랐다며 두고두고 놀린다.

어느 날, 작은 소바 가게에서 거울을 보려고 콤팩트를 꺼내 들자 점원이 여기서는 안 된다며 주의를 줬다. 그런 법도 규정도 없는데 내 것으로 얼굴도 못 보냐고 항의하려 해도 따져 묻기가 쉽지 않다. 그 와중에도 소바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나오는 길에 잘 먹었다고 인사까지 했다. 알고 보니 점원은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 자제를 당부했던 것이다.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선 일본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교토에서 사는 한국인 주부들은 일본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도 곧 일본처럼 될 것이다, 현재 일본이 20년 후 한국의 모습이라고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융통성’이라는 표현으로 기본조차도 건너뛰는 것이 많은데 비해 선진국인 일본은 지킬 것은 모두 다 지키려 하므로 공정 사회라는 느낌마저 든다.

일본 주부들에게 한국의 ‘퀵 서비스’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그들은 ‘기적의 배달부’라고 했다. 한국은 빠르고 간편하며 24시간 다 되는 그런 시스템의 나라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빠를수록 삶이 힘들어진다는 이유였다. 일본에서는 때론 기다림이 불편하지만 익숙해지니 그러려니 하며 지낸다. 집이 춥고 좁다고 생각했는데 껴입으니 괜찮고, 심지어 방 하나는 쓰지도 않는다. 일본인들은 분수에 맞는 삶을 살며 느림의 미학을 즐긴다.

인터넷에 ‘김보민’을 검색해보았다. 아나운서 김보민, 배우자 김남일, 아들 김서우. 더불어 이젠 나의 칼럼이 함께 뜬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느라 모자와 마스크를 하고 다니고 글재주나 셀카를 찍는 기술도 없는 내가 칼럼을 연재하며 교토 곳곳을 누비려는 결심을 한 것은 모험이었다. 주관적인 시선으로 썼음에도 나의 추천을 믿고 교토의 한 맛집을 찾아왔다는 분들이 계셨기에 힘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3월부터는 더욱 깊어진 눈으로 교토를 담아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김보민의 다짜고짜 교토’를 읽어주신 분들께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다시 KBS 아나운서 김보민으로 찾아갑니다.”

앙증맞게 진열된 인형들.
발길을 붙잡는 문구점. 
일본에서 초밥을 제대로 즐겨보자.
김보민·김남일 부부와 아들의 행복한 모습. 

글쓴이 김보민

2014년 일본 교토 상가 FC로 이적한 남편 김남일 선수를 따라 일본으로 간 KBS 아나운서. 2016년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지도자로 변신,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 코치로 발탁된 남편을 한국으로 보내고 아들과 함께 교토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객원 : 에디터 이이슬 | 글 : 김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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