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비리포트] 임수혁-김상진, 못다 핀 비운의 별

비운의 스타 롯데 임수혁과 해태 김상진 (사진: 롯데 자이언츠/ KBO)

2018 KBO리그의 시작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개막이 성큼 다가옴에 따라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선수들은 저마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현 시점에서 선수들에게 시즌 목표를 물으면  대개 지난해보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밝히곤 한다.

프로 무대에 첫 선을 보이는 파릇파릇한 신인들부터 선수로서 황혼기를 보내는 베테랑들까지 새 시즌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차이가 없다. 실력 향상을 통해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이 프로 선수 본연의 임무이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때 부와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 이승엽처럼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판단할 때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스스로 퇴장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절정의 기량을 뽐내야 할 시기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대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뛰어난 재능과 가능성을 갖췄지만 불의의 사고와 병마가 그들의 활약을 허락치 않은 것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야구 팬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름들이다.

#1. '돌아오지 못한 2루주자' 임수혁

특유의 홈런포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던 롯데 임수혁 (사진: 롯데 자이언츠)
2월 7일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날짜다 .  90년대 마해영과 함께 마림포를 결성해 롯데의 해결사로 활약했던 임수혁이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날이 바로 2010년 2월 7일이기 때문이다.

장타력이 강점이던 임수혁은 큰 경기에서 고비마다 시원한 홈런포를 날리며 롯데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선수였다. 1995년 플레이오프에서 LG 이상훈을 상대로 때려냈던 역전 홈런과 99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임창용을 상대로 때려냈던 동점 홈런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1995시즌 이후 강점인 타격을 앞세워 롯데 주전 포수로 자리를 굳히는 듯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수비가 좋은 강성우에 국가대표 출신 최기문이 트레이드로 롯데에 유니폼을 입으며 주전 경쟁이 거세졌다. 게다가 임수혁은 지병인 부정맥과 무릎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라 주로 대타로 출전하곤 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각오를 새롭게 다진 임수혁은 시즌 초반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롯데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개막 후 출장한 10경기에서  3개의 홈런포를 몰아치며 좋은 타격감을 뽐냈다.

주변 동료들에게도 "밀레니엄인 2000시즌에 최고의 활약을 할 것 같다."는 그의 말이 현실화 되는듯 했다. 하지만 임수혁의 밀레니엄은 비극이 되고 말았다.

4월 18일 경기에서 1루에 출루해 있던 임수혁은 후속 타자 우드의 안타로 2루까지 도달했다. 롯데 팬들은 스코어링 포지션에 안착한 임수혁이 이어진 후속타로 홈을 밟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임수혁은 갑작스럽게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지병인 부정맥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했던 상황이지만 당시 경기장에는 긴급 상태를 대비한 구급인력이 대기하고 있지 않았고 안타까운 시간만이 흘러갔다.

# 롯데 임수혁의 시즌별 기록 

임수혁의 프로 통산 기록. (출처=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쓰러진 2루주자 임수혁은 병상에서 10년의 세월을 버텼지만 결국 2010년 2월 7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떠난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임수혁을 그리워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많은 야구팬들이 있다.

임수혁이 떠난 후 롯데는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4년 연속 최하위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롯데는 임수혁이 뛰었던 90년대에는 92년, 95년, 9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그 이후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임수혁이 동점홈런을 터뜨리며 가져온 한국시리즈 티켓이 마지막 초대권이다.

임수혁의 통산 홈런 갯수인 47호를 이어나가겠단 각오로 47번의 등번호를 택했던 강민호는 이제 팀을 떠났다.  롯데 팬들은 한국시리즈 진출을 견인할 제 2의 임수혁을 고대하고 있다.

#2.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아기 호랑이' 김상진

한국시리즈 우승메달을 목에 건 해태 김상진

해태 타이거즈는 프로 원년이후 1997년까지 16시즌 동안 무려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며 프로야구 사상 최강의 팀으로 기억되고 있다.  해태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순간  마운드를 지켰던 투수는 주로 선동열이었다. 해태 왕조의 주역인 선동열이 에이스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던 선동열이 현해탄 건너 일본 리그로 떠난 후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우승을 결정한 마운드에는 갓 스물을 넘긴 젊은 투수가 서 있었다. 96년 진흥고를 졸업하고 바로 해태에 입단한 김상진이 그 주인공이었다.

▲ 97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완투승을 거두던 김상진의 모습. ⓒ KIA 타이거즈 

제구력이 강점이던 김상진은 프로 입단 후 타이거즈의 미래를 책임질 투수로 호평을 받았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96년 입단 첫 시즌부터 9승(123.2이닝 4.29)을 거두며 선발진에 합류했다.

이듬해인 97시즌에는 한층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이며 역시 9승(147.2이닝 3.60)을 기록했다. 게다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완투승을 기록하며 9번째 우승을 매조지했다. 선동열의 부재를 아쉬워 하던 해태팬들은 영건 트리오 이대진, 김상진, 임창용이 이끄는 해태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 해태 김상진의 시즌별 주요 기록

(출처=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하지만  김상진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98시즌 이후 목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단순한 부상인줄 알았던 통증의 원인은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것이었다..

시즌이 끝난 후, 피를 토하며 쓰러진 김상진의 목뼈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어진 정밀 검사 결과였다. 몇달 전까지 프로 무대 마운드를 지키던 김상진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지속적인 통증으로 그를 괴롭혔던 목뼈의 종양 역시 위에서 전이된 것이었다.

약관의 김상진은  위기 상황에서도 담담한 표정으로 꿋꿋한 모습을 보였던 투수였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직후에도 바로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으며 꿋꿋하게 투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드시 마운드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팬들에게 약속도 했었다.

하지만 김상진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1999년 6월 10일

어쩌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운드를 지킬 수도 있었던 김상진은 예기치 못한 병마로 너무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해태의 후신인 KIA는  지금까지도 그의 기일에 유니폼에 검은 띠를 착용한다.  '약관의 에이스' 김상진을 기리기 위함이다.

# 1997년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영상, 故김상진(해태)


[기록 출처 및 참고 : 야구기록실 KBReport.com, 스탯티즈, KBO기록실]


글: 이정민 필진/김정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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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공: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