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양극의 소년>-시스템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의 저항

2018. 1. 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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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의 소년〉은 비상상황에서 하나의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 운영 시스템 안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소외당하는지 매우 상세하게 다룬다.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활용하는 자가 될 것이다.’ 지난해 베스트셀러를 점유한 책 〈플랫폼 레볼루션〉이 외치는 말이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뿐 아니라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등 다양한 콘텐츠에 기반을 둔 플랫폼들이 잇따라 성공하자 플랫폼은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중심 화두가 되었다. 많은 기업이 선구적인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한다.

은송 작가의 만화 <양극의 소년>의 한 장면./레진코믹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변종 생물체

플랫폼 모델이 잘 나가는 서비스 이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만큼 그 영향력 또한 일개 서비스 수준을 초월한다. 해당 플랫폼이 중개하고 있는 산업의 생태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정 서비스에만 기대는 게 아닌 만큼 플랫폼에는 해당 산업 생태계와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가 주요한 과제다. 이는 플랫폼이 지닌 ‘거버넌스’의 문제로, 보다 상세하게는 “플랫폼 생태계에 누가 참여할지, 어떻게 가치를 분배할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지에 관한 일련의 규칙”을 세우고, 이행해야 하는 문제다.(〈플랫폼 레볼루션〉)

플랫폼은 종종 국가나 도시에 비견된다. 양자를 운영하는 돈의 규모 자체도 비슷하지만(참고로 구글 예산은 미국 국방부 예산에 맞먹는다) 무엇보다 이 거버넌스의 문제가 기존 국가, 도시의 운영방식과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플랫폼 거버넌스의 문제를 읽을 수 있는 웹툰으로 〈양극의 소년〉이 있다. 〈양극의 소년〉은 비상상황에서 하나의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 운영 시스템 안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소외당하는지를 매우 상세하게 다룬다.

작중 사회는 변종 바이러스 ‘로텝’에 의한 상시적 비상상황에 놓여 있다. ‘로텝’에 감염되면 ‘웜’이라는 변종 생물체가 되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먹거나, 극히 적은 확률로 변이인간 ‘헤테로’가 된다. ‘헤테로’는 겉보기엔 일반 사람들과 동일하지만 일반인과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머리가 비상하게 뛰어나거나, 괴력을 발휘하거나, 초월적인 신체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에 더해, 다쳐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자가치유력도 생겨난다.

주인공은 바로 이 ‘헤테로’다. ‘헤테로’는 ‘웜’을 물리치는 선봉대 ISO(국제안전기구)의 일원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로텝’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실험대상이기도 하다. ‘헤테로’ 가운데에서도 능력이 뛰어나고 잘 훈련된 사람은 사회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그렇지 못한 부류는 사회에서 차별과 눈총의 대상이 된다. 때로 ‘헤테로’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특권도 있지만, 이 특권조차 사실 헤테로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이질감에 따른 것이다.

‘헤테로’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애당초 같은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기도 한다. 자가치유되는 탓에 학교에서는 폭력과 린치의 대상이 되고, 연구소에서는 어떤 제재 없이 어린 헤테로들에게 비인간적인 실험을 강행한다. 〈양극의 소년〉 주인공인 ‘강하루’도 수년에 걸쳐 연구소에서 실험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연구소의 일원들은 헤테로에 대해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연구소는 어린 ‘헤테로’들을 그들의 가정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감금하여 약물 투입과 실험을 일삼았고, 필요하면 거짓 뉴스를 내보내 국민들을 선동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ISO의 위치는 다소 복잡하다. 이들은 단순한 히어로가 아니다. 그들은 ‘웜’과 싸우는 정예부대이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 말하듯 ‘헤테로’의 인권을 지키는 최전선이기도 하다. 작품에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헤테로’가 같은 사람으로 대우받기 위하여 스스로 사회적 쓸모를 증명하고 협상 권력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자들은 어떻게 싸우는가. 이들은 대중을 움직이며 싸운다. ISO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 연구소도 페이크 뉴스를 통해 움직인다. 대중은 ‘헤테로’를 혐오하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헤테로’로 이루어진 ISO를 동경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와 인식을 십분 활용하여 연구소 측 사람들은 지금이 ‘비상시국’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헤테로’에 대한 ‘사용권’을 암묵적으로 승인받는다.

플랫폼은 소유가 아닌 공공의 것

결국 ‘헤테로’들의 인권을 박탈하는 주체는 연구소장이나 특별한 악의 화신이 아니라 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특정 시스템, 그리고 동시에 이 시스템을 용인하는 일반 대중들이다. 학교에서 “어차피 나을 거니 상관없잖아?”라며 계단 위에서 ‘헤테로’를 떠미는 학생들, ‘헤테로’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교장, 평상시에 챙기는 듯 친밀함을 보이다가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등 돌리는 연구소 사람들…. 주인공 ‘강하루’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 모든 사람이 바로 ‘헤테로’를 ‘헤테로’이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중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시스템들을 직시하고 여기에 저항한다. 그러나 이들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찰나, 웹툰은 지금 장기 휴재에 돌입했다. 여기서 작품 안팎의 콘텍스트가 이어지는데, 사실 이 웹툰의 장기 휴재 건도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인한 것이다. 〈양극의 소년〉 작가 ‘은송’은 연재하던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웹툰 작가 처우에 대해 건의하고 이를 SNS에 알렸는데, 이후 〈양극의 소년〉은 모든 이벤트 프로모션에서 완전히 누락되었다. 그가 건의한 것은 배경용 스케치업 공동구매, 상업용 폰트 지원, 명절 연휴에는 웹툰 작가에게도 휴일을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와 비슷한 시점에 ‘회색’ 작가도 레진코믹스가 웹툰 고료를 제대로 정산하지 않았다는 이슈를 제기했다.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레진코믹스가 유선 연락을 회피하며 일관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고, 그 이후에도 해당 작가에 대한 루머를 퍼뜨리는 등 불공정한 모습을 보여 더 큰 논란이 일었다. 이 모든 것은 앞서 말한 플랫폼의 거버넌스 그 자체로, 레진코믹스는 가치를 분배하는 데에서도,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거버넌스에 실패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플랫폼은 단순히 시장의 전유물이 아니다. 플랫폼은 여기에 참여하는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의 관계에 따라 성장하며 발전하는데, 이 ‘관계’라는 것은 사실상 플랫폼의 소유가 아닌 공공의 것이다. 최근 생겨나고 있는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 있고, 플랫폼에 있어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다. 따라서 지금 레진코믹스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기업 윤리가 아니다. 그보다도 본질적인 플랫폼 본연의 원칙이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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