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아해야, 청산에 가쟈스라

완도(전남)=박정웅 기자 2018. 3.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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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 아니리에 청보리 발림 '휘영청'
노란꽃빛 물든 푸른 청산도의 봄
청산도 봄길 
구들장논둑엔 새생명 꽃빛 잔치

지난 6일 찾은 슬로길 1코스 서편제길 인근에서 본 도락리해변은 빙그레 웃는 듯한 논썹 동그란 풍광이 아름답다. 4월이면 푸른 바다와 초록 유채,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진 청산도의 청녹황 세계가 펼쳐진다. /사진=박정웅 기자

청산은 푸르다. 전남 완도, 짙푸른 다도해에 솟은 청산도는 푸른 산과 바다, 하늘을 가졌다. 바다는 어찌 보면 초록빛을 띤 듯하다. 난대림이 들어찬 초록의 산도 짙푸른 때깔이 물씬하다. 물살과 바람이 거세고 공기 또한 맑은 청산도의 바다와 하늘과 산은 눈 시리게 푸르다.

푸른 청산도의 봄은 원색의 연회장이다. 초록 잎사귀 틈 사이로 빨간 동백꽃은 새색시마냥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긴 겨울, 오랜 애틋한 기다림이었나. 세한(歲寒), 수많은 사연에 푸른 잎사귀는 코팅한 듯 광택이 반지르르하나 모가지 통째 떨어진 동백꽃은 처연하게 검붉다.

느린섬여행학교에 핀 동백꽃. /사진=박정웅 기자

주저앉은 봉분 뒤 홍매화 한 그루. 푸른 바다를 붉게 휘저었을, 옛 삶을 잊지 않겠다는 듯 봄바람에 꽃망울 송송한 가지를 하늘거린다. 빨간 동백꽃 후드득 떨어지고 그의 잎사귀 더 짙푸르면 노란 물결, 검붉던 동백꽃의 빈자리를 채우리라.

괜히 영춘화라 했을까. 개나리는 봄볕에 조는 고양이마냥 가지를 축 늘어뜨리며 봄을 서둘러 부른다. 잎사귀 푸른 유채는 어느새 노란 웃음꽃을 벙긋 피운다. 봄동꽃 또한 유채꽃 못지않게 노랗다. 입맛을 돋우는 유채와 봄동은 어느덧 눈으로 먹는 노란 꽃으로 사진에 담긴다.

청산도에서 만난 개나리꽃. 개나리는 봄을 부른다는 뜻에서 영춘화라 불린다. /사진=박정웅 기자

그 사이, 청보리의 푸름이 더해지고 돌담길에 아지랑이 스멀스멀 일면 청산도의 봄은 완성된다. 긴 겨울을 돌아나온 돌담길이며 유채밭이며 청보리밭엔 오랜만에 빨강, 초록, 파랑, 그리고 자홍의 원색 인파가 왁자지껄 쏟아진다.

구들장논둑이나 다랭이논둑에서 온갖 생것들이 소생의 기쁨을 누릴 즈음, 청산의 길을 달팽이마냥 느려터지게 걸어보자.

그 길을 나무와 땅과 가슴에서 세 번 핀다는 동백의 심정으로 걸어도 좋다. 고수(鼓手)는 없어도 상관 없겠다. 눈 먼 한까지 담지는 못할 소리지만 진도아리랑 한가락쯤을 구성지게 뽑아보자. 또 푸른 바다가 너르게 들어오는 벼랑 끝, 끝내 돌아오지 않을 임을 사무치게 기다렸을 어느 여인의 신발에 발을 포개면 눈이 절로 감긴다.

◆서편제 롱테이크 아련한 슬로시티

서편제 촬영지, 돌담길 옆 유채꽃이 푸르다. 4월이면 노란 유채꽃이 장관을 이룬다. 슬로길 1코스이며 드라마 <봄의 왈츠>, <피노키오> 세트장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세월의 바다를 건넌 청산도는 2007년 아시아 첫 슬로시티로 선정됐다. 달팽이 이정표가 인상적인 100리 슬로길은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 ‘세계슬로길 제1호’ 자리를 꿰찼다. 느림의 길이 빠르게 달려온 삶에 쉼표를 줄 수 있는 데다 문화·역사·인문·자연 콘텐츠가 곳곳에 묻어 있어서다.

슬로길은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 왈츠>, <피노키오> 등 문화를 꿰매 잇는다. 푸른 삶도 이엉처럼 엮었으니 구들장논(양지리), 돌담길(상서리), 초분(당리)이 그것이다. 장보고의 부관인 한내구 장군을 모신 당집과 청산진성(당리), 고인돌(읍리)에 얽힌 역사의 숨결도 따른다. 또 국내유일의 블루홀인 범바위, 작은기미(장기미)해변, 풀등(신흥리), 갯돌해변(진산리) 등 바다를 품었다.

당리마을 영화 <서편제> 세트장. 사진=박정웅 기자

청산도전복, 청산도봄동…. 완도의 256개 섬 중 하나인 청산도가 외지에 널리 알려진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한국영화 거장인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촬영지로 알려졌기 때문. 그전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후렴구가 인상적인 <어부사시사>를 지은 윤선도의 보길도가 잘 알려져 있었다.

1993년 개봉한 <서편제>는 당시 한국영화사상 첫 100만명 관객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당시 100만은 단관 개봉(서울 단성사 1곳)에서 찍은 것으로 멀티플렉스(전국 동시 개봉)인 오늘날 1000만과는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청산도 슬로길은 <서편제>에서 시작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편제 촬영지는 슬로길 전체 11코스(총연장 42.195㎞) 중 1코스에 해당한다. 1코스는 청산도의 관문인 청산도항(미항길)에서 서편제촬영지(서편제길)를 지나 화랑포공원으로 이어진다.

청산도 초분. 오른쪽 솔가지는 지난해 것인 듯 색이 바랬고 왼쪽 것은 올해 것인지 푸르다. 솔가지는 냄새를 없애면서 벌레가 꼬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청산도항에서 해안을 따라 오른쪽 언덕길(일부 데크길)을 오르면 익숙한 풍광을 마주한다. 노송이 우거진 당집 앞에서 숨을 고르면 남도 판소리가 울려 퍼진다. 바로 서편제의 하이라이트인 송화(오정해)가 동호(김규철)의 장단에 맞춰 ‘진도아리랑’을 부른 돌담길이다.

돌담길 좌우로 노란 유채꽃이 장관이다. 언덕을 지나 당리마을에 이르면 촬영 당시 초가집이 기다린다. 서편제 돌담길을 떠나기 전 앞서 만난 당집을 지나치지 말자. 해상왕 장보고의 부관인 한내구 장군을 모신 당집이 쓸쓸하다. 일제강점기 도굴당한 한내구 장군의 묘를 당집으로 기린 곳이다.

범바위 전경. 바람이 불 때면 바위틈(구멍)에서 호랑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지구 자기장보다 7배 이상의 센 자기장으로 나침반이 방향을 잃는다. 자철석이 많아서 이 해역 일대를 한국판 버뮤다삼각지대로 부른다. /사진=박정웅 기자

파도가 이는 모습이 마치 꽃처럼 아름답다는 화랑포공원에 서면 완도의 아름다운 섬인 보길도, 노화도, 횡간도가 보인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긴 곳인데 쉼터 옆 돌로 만든 신발이 눈길을 끈다. 신발은 다행히 푸른 바다 대신 섬으로 향해 있는데 곡절 많았을 섬사람의 심정을 담았을 것이다.

2코스엔 청산도의 독특한 지역문화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이중 장제문화인 초분이다. 일종의 풍장문화로 청산도 사람들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관을 땅에 올려놓은 뒤 짚이나 풀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뒀다가 3년 후 뼈만을 수습해 다시 묘를 썼다.

◆구들장논 켜켜이 쌓인 푸른 청산의 삶

양지리 구들장논의 청보리. /사진=박정웅 기자

섬의 배꼽에 해당하는 대봉산을 넘으면 고단했을 삶의 흔적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청산도의 대표적인 논농사인 구들장논이다. 보통 구들장은 온돌난방에 쓰이나 청산도의 구들장은 경사진 섬에서 벼를 키운 일등공신이었다.

대봉산 아래 6코스 양지리엔 구들장논들이 예쁘게 포개져 있고 청보리가 지천으로 푸르다. 마을 어귀엔 구들장논 체험장이 있다. 구들장논은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이다. 구들장을 깔기에 앞서 바닥엔 통수로를 확보하는데 마치 구들온돌의 아궁이를 닮았다. 빤히 들여다본 통수로에서 울리는 맑은 물소린 귀를 달게 했다.

구들장논의 통수로. 빤히 들여다보니 맑은 물소리가 들리고 입구엔 들꽃이 피었다. /사진=박정웅 기자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았던 청산도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구들장논은 농업유산적 가치가 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또 이듬해엔 국내 최초로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건너편 매봉산의 완사면에 자리한 상서리는 정겨운 마을이다. 경사가 있는 대봉산 양지리의 구들장논과는 대조적으로 다랑치논(다랭이논)이 많다. 다랑치논 역시 땅 한 평 소중한 섬사람들의 터전이다.

상서마을 담장길.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마실을 나왔다. /사진=박정웅 기자
동백꽃 핀 상서마을 돌담길. /사진=박정웅 기자
상서리 마을을 앞뒤로 둘러싼 다랑치논엔 살아 있는 화석이 산다. 긴꼬리투구새우가 그것인데 그만큼 청산도의 환경이 깨끗하다는 방증이다. 긴꼬리투구새우는 휴지상태의 알을 30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데 논에 물이 차면 부화해 30여일을 활동한다. 상서리마을회관을 장식한 화석 생물에 아이들 눈이 번쩍 뜨인다.

상서마을은 돌담이 예쁜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전체가 구불구불한 돌담길로 이어졌다. 층층이 쌓아올린 돌담은 소박하게 지어진 농가와 조화를 이뤄 포근한 정감을 선사한다. 상서마을 옛담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환경부 자연생태우수마을, 국립공원 명품마을, 국립공원 최고 명품마을 선정 배경이 됐다.

청산도 슬로길 코스도(상아색 부분은 구들장논을 가리킨다). /사진=완도군

청산도 여행팁

오는 4월7일부터 한달 동안 슬로걷기축제가 청산도 전역에서 열린다. 100리 슬로길은 천천히 걷는 길이다. 11코스 전 구간을 무리하게 완보할 까닭이 없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고싶은 곳을 찾아도 좋겠다.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전 코스 명소를 찾을 수 있어서다.

청산복지회관(청산도항 인근)을 나선 순환버스는 당리(서편제)-읍리(고인돌과 하마비)-청계리(범바위)-양지리(구들장논)-상서리(돌담길)-신흥리(풀등)-진산리(갯돌해변)-지리(해수욕장)-청산도항으로 돌아온다. 1회 이용권(14세 이상 5000원, 14세 미만 3000원)으로 경유지 반복승차가 가능하다. 단 매주 월요일(슬로걷기축제 기간 제외)엔 쉰다.

또 해설가가 탑승하는 투어버스가 있다. 순환버스와 같은 경로를 이동하는데 범바위가 시기별로 추가된다. 요금은 7000원(14세 미만 5000원)이다. 이외에 청산버스와 청산마을버스, 택시가 청산도항에서 기다린다.

완도여객선터미널(061-552-0116)에서 청산항(청산농협 061-552-9388)까진 50분 걸린다. 매표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며 개찰은 출항 5분 전에 마감된다. 운항은 기상과 이용현황에 따라 조정되니 예약 사이트나 문의전화를 통해 사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차량 도선은 별도의 예약을 받지 않고 대기순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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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전남)=박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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