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판문점엘 갔던 날이 1월 26일이었으니까 겨우 3개월 전 일 뿐이다.
도라산 전망대에 서서 개성 쪽을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생계기반을 놔둔 채 빈손으로 저 길로 돌아왔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가족들의 마음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날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슈뢰더 전 독일수상에게 묻어서 갔던 터라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미연합군과 중립군쪽으로부터 70년 분단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식사도 대접받았지만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요즘 아이들의 표현처럼 '일(1)'도 없었다.
지난해 12월 두리가 도쿄 아시안 컵을 다녀왔다. "아빠! 안데르센 감독이 아빠한테 안부 전해 달래요." 안데르센은 북한축구대표팀의 감독이다. 그 친구도 프랑크 푸르트에서 여러 해를 뛰었으니 나를 모를 리가 없다. 더구나 그 친구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1988년에는 내가 UEFA컵 우승을 했으니 꽤 부러운 마음으로 중계를 봤겠지. 하하하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줄곧 독일에서 살아온 그가 평양에서 산다는 것은 몹시 불편하고 답답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라도 하지 않을까? 두리도 그게 궁금해서 "평양에서 사는 거 괜찮아?" 하고는 이것저것 물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며 자기가 사는 곳은 외국인들이 사는 구역이라는 설명도 한 모양이었다. 안데르센 와이프는 "살기가 너무 좋다!"며 좋아하더라고 했다. 그럼에도 두리나 나의 마음속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말을 해야만 하겠지!". 한마디로 믿지 않았다.

지난 27일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들 눈앞에서 영화처럼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잡을 때는 전혀 슬픈 스토리가 없는 영화인데도 자꾸 눈물이 났다. 다리 위를 걸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두 팔을 저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숨 막히도록 무겁고 힘든 고민을 함께 나누며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들' 같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스러운 순간을 티브이로 함께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저리고 아팠다. 우리가 2002년 정환이의 골장면을 , 컬링대표팀의 "영미야!"를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은 것처럼 이 날의 장면들은 채널을 돌려가며 찾아서 볼 만큼 봐도 봐도 행복했다.
그 날 점심에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을지로로 향했다. 평소에도 좋아하지만 그 날은 막 먹고 싶어 졌다. 냉면을 먹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텅 비어버린 축구장보다 더 많았다. 대기표를 받은 사람들이 밖에 까지 꽉 찼다. 엄두를 낼 수가 없어서 평양냉면은 포기하고 함흥냉면을 먹고 돌아왔는데 저녁 뉴스를 보니 나 같은 사람들로 냉면집들이 넘쳐났던 모양이었다. 김정은의 함박웃음과 구수한 이북식 농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그들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빠르게 바뀌어 가다니! 그럼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빨리 변하게 될까? 정말로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서 프랑크푸르트로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휴가를 보내러 원산으로 가볼까?

1990년 3월, 베를린 장벽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자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키르쉐'를 재건하기 위해 우리는 자선 경기를 했다. 세계선발팀과 동서독선발팀으로 나눠서. (내가 두 골을 넣었다는 자랑도 꼭 쓰고 싶다.)엊그제 같다. 시골마을 운동장 같았던 그 드레스덴 축구장은 의자조차 없는 나무 스탠드였고, 함께 갔던 독일 수상 핼뭇 콜의 자리도 A4용지에 'Dr Kohl'이라고 써서 나무의자에 붙여 놓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몇 해 전 다시 방문한 드레스덴은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우리가 기금을 모아 재건했던 프라우엔 키르쉐를 보는 마음도 각별했다. 하물며 2006년 독일 월드컵에 갔을 때는 매일 티브이를 장식하는 독일대표팀의 주장인 발락도 수상 메르켈도 모두 동독 출신이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드레스덴에서 자선경기가 있던 날, 티브이로 몰래 분데스리가를 시청했다는 동독의 축구팬들은 싸인을 받겠다며 사진을 들고 몰려와서 호텔 주변에 진을 쳤다. 무척 신기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티브이가 잡혀서 분데스리가를 본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니 그들은 연예인 사진을 들고 싸인을 받으러 올 것 같다.
참, 한 가지 더 기억나는 것이 있다. 대북방송이 한창이던 1970년대 시절, 내가 독일에서 골을 넣으면 우리 쪽에서는 그것도 북쪽에 대고 자랑(?)을 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슈뢰더 전수상과 판문점을 다녀온 얼마 후 갑자기 내 핸드폰과 메일에 불이 났다. 슈뢰더 전수상이 독일의 포커스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에서는 아직도 차붐을 죄다 알아보더라!"고 의아해 하자 슈뢰더의 약혼녀 김소연 씨가 "한국에서는 슈뢰더 보다 차붐이 훨씬 더 유명하다"고 했다는 인터뷰 기사였다. 두리의 독일 변호사가 기사를 캡쳐해서 보내줬는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 뉴스를 전해주는 독일의 친구들의 문자가 빗발쳤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친구들이 쓸데없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한마디 했다. '한국은 나의 홈그라운드야!'하하하

그 날 판문점에서 우리는 입을 모아 '이렇게 추운 날은 처음' 이라며 평창올림픽을 걱정했다. 개막식에서 얼마나 떨어야 할 지도 난감해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세 달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화창한 봄날 아침에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꿈을 꾸며 싱거운 자랑질을 하고 있다니!!! 유럽의 한 복판에서 그들의 변화를 내 눈으로 직접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안 될 거야!' 하고는 지레 상상조차도 안 했던 일들이 생활로 다가 올 모양이다. 그때가 오면 나도 평양에서 '축구교실'을 할 거다. 내가 직접 가르쳐줘야지! 차범근이 얼마나 유명한 할아버지인가는 북한대표팀 감독인 안데르센 더러 "네가 설명해줘라!"고 할까? 하하하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좋다 보니 실없는 소리가 멈춰지질 않는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