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공기'의 실체

김기철 2018. 4. 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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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연구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박용민 옮김, 헤이북스 펴냄)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32] 누구나 그런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회의 시간에 긴 논의 끝에 어떤 결론을 내렸는데, 회의 끝나고 회사 앞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론이 회의에서 내렸던 결론과 달랐던 경험. 참석한 사람도 똑같았는데 결론이 다르다면 과연 그 결론은 누가 내린 것인가. 회의실이 내린 것인가, 호프집이 내린 것인가, 아니면 맥주에 들어 있는 알코올 성분이 내린 것인가.

한국에서는 이를 '분위기'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공기'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공기'라는 말은 한국의 '분위기'와 비슷하지만 밀도는 훨씬 더 높다. 개인에게 미치는 구속력이 더 크다는 얘기다.

'책의 역습' 저자 우치누마 신타로 씨가 최근 서울의 작은 서점을 다룬 책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이라는 책을 냈는데 그는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을 읽고 서울의 서점이나 출판에 흥미가 생긴다면 우선 현지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서울에 부유하는 '공기'에 몸을 맡겨보기를 권한다."

일본인들이 '공기'라는 말을 어떨 때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글이었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는 없지만, 상황과 결정에 대한 구속력을 가진 어떤 힘. 그것이 바로 일본인들이 말하는 '공기'다.

흔히 '일본론'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조용하고, 소심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착한' 일본 사람들이 위안부나 난징대학살, 731부대 생체실험 같은 반인륜적이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니 대부분 '국화와 칼'이나 '혼네와 다테마에' 같은 대립적인 개념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설명한다.

하지만 뭔가 하나 빠진 느낌이 든다. 일본인 개인과 일본 사회 집단의 차이에 대한 설명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공기의 연구'는 이 퍼즐을 비로소 완성해주는 책이다. 1977년에 쓰인 책이지만,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이 그 설명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

◆모든 책임은 공기에게

일본이 미군에 항복선언을 한 1945년 8월 15일 도쿄의 풍경은 그로테스크했다고 한다. 슬프고 우울하고 절망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도쿄의 거리에는 이상한 활기가 넘쳤다고 전해진다.

전후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는 사카구치 안고는 '타락론'에서 당시의 풍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폭격 직후 이재민들의 행진은 허탈이나 방심과 종류가 다른 놀랄 만한 충만과 중량을 지닌 무심하고 순진한 운명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사카구치는 스스로 느낀 기분을 "예상할 수 없는 신세계를 향한 불가사의한 재생, 그것에 대한 호기심은 내 일생에서 가장 신선한 것이었고, 그 기괴한 신선도에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라도 도쿄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는 기묘한 주문에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패전 후 1호 히트곡으로 나미키 미치코가 부른 '사과의 노래'가 꼽힌다. 전쟁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소녀들의 해방감을 표현한 노래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반전이 가능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항복 선언과 함께 순식간에 '공기'가 바뀌었으니까. 전쟁을 결정한 것도, 전쟁을 수행한 것도 개인들이 아니라 일본 사회를 짓누른 '공기'였으니까.

일본이 치른 대동아전쟁에 포병장교로 참전했던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공기'가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일본 전함 야마토호 이야기로 설명한다. 야마토호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오키나와 해전에 투입된다. 하지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예상대로 격침됐고 3000명의 탑승자 가운데 269명만 살아남은 처참한 패배였다.

일본 군부는 처음부터 야마토호의 출항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전함 야마토호는 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수뇌부의 냉담한 '공기'를 읽은 해군이 출전을 결정했고, 출전해서 침몰하는 것 자체가 '공기의 명령'이었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2차 대전 후 전범국가로서 일본과 독일이 전쟁범죄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달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인들은 그 모든 잘못된 결정의 책임을 '공기'에게 맡기고 미국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공기'의 명령에 따라 살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모든 일본인이 이런 형태로 외형적인 자기 변혁을 시행함으로써 '나는 변했고, 오늘부터는 민주주의자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그것을 믿어버리고, 그 믿음에 따라 진정한 변혁을 회피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121쪽)

평화헌법에 서명하는 쇼와 덴노

◆텐노도 공기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일본 사회의 상징인 천황제, 즉 '덴노'조차도 '공기'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로 설명하는 것이다.

2차 대전 패전 후 히로히토 덴노는 자신이 인간임을 천명한다.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덴노는 현인신'이라는 선언이 한 번도 없었다. '덴노는 신이다'는 선언을 한 적이 없는데 '덴노는 신이 아니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신기하게도, 최초로 덴노가 현인신이라고 말한 사람을 찾아보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찾아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공기'가 한 일이니까. 덴노제야말로 전형적인 '공기의 지배' 체제인 것이다."(92쪽)

사실 '대정봉환'을 통해 '덴노'가 상징적인 존재에서 실권을 가진 진정한 '텐노'가 되는 과정 자체가 '텐노'가 주도한 것도 아니고 '텐노'가 원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텐노가에서조차 불교식 행사를 금지당한 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메이지 4년(1871년)까지만 해도 궁중에 불단을 두고 역대 덴노의 위패를 모셔두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 사회에 모든 불교식 행사가 중단됐고 이런 영향은 덴노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궁중에 있었던 불상 등 불교 관련 물건들이 모두 사찰로 옮겨졌고 불교식으로 치르던 장례마저도 금지당했다. 저자는 "덴노 자신도 사상 및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표현했다.

근대화 입구에서 일본 사회가 대정봉환을 통해서 '덴노'를 불러냈던 이유는 바로 막부 시대와 다른 새로운 '공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쇼와 덴노의 사진을 보면 늘 침울한 표정이다. 세자 시절도, 결혼할 때도, 덴노로 즉위했을 때도, 항복 선언을 했을 때도, 맥아더 장군 옆에서도, 평화헌법에 서명할 때도 한결같이 우울한 모습이다. 최고 권력자였지만 그 역시 '공기'의 압력에 질식당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리라.

"덴노제를 짧게 정의하면 '우상적 대상에 대한 임재감적 파악에 바탕을 두고 감정을 이입합으로써 수립되는 공기의 지배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덴노제란 공기의 지배다. 따라서 공기의 지배를 그대로 둔 채 덴노제를 비판하거나 공기에 지배당한 채 덴노제를 비판하는 것은 그 비판 자체가 덴노제의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의미에서 애초부터 난센스다."(56쪽)

◆'공기'에 '물'을 끼얹어라

우리나라에 '원령공주'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의 원래 제목은 '모노노케 히메'였다. '모노노케(物の怪)'는 일본의 고전(古典)과 신화에 나오는 존재로 인간에게 빙의해서 사람을 괴롭히거나,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원령(怨靈), 사령(死靈), 생령(生靈) 등 영혼(靈魂)을 의미한다.

애니메이선 `모노노케 히메`의 한 장면. 자연에 깃든 정령들의 힘을 영화화했다.

'모노노케'는 '공기'와도 연결된 말이다. '공기'라는 말은 숨, 호흡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됐고 이어 사람과 사물, 자연에 깃드는 정령 등의 의미로 확대되어 갔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사회의 종교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의 종교적 특징은 한마디로 '애니미즘'이다. 애니미즘은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 곁에 머문다는 믿음이다. 이를 '임재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공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모든 곳에 언제나 존재하는 신비한 힘에 대한 믿음은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한 저항을 쉽게 포기하고 개인들을 체제 순응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 원인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에 사실상 단 한 번의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도, 일본 사회가 정치의 세습을 쉽게 용인하는 이유도, 아베 신조라는 기형적인 정치인이 탄생한 배경도 일본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공기'의 압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일본이 '공기'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물'에서 찾았다. 물을 끼얹어서 팽창한 공기의 압력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통상성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스스로 끼얹을 물 한 바가지 갖지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한탄이다.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 우치무가 간조가 그 위험을 경고한 바 있지만, 아쉽게도 우리 일본인은 아직까지 새로운 '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물'은 아무도 전통적이고 일본적인 물의 바탕에 깔린 생각과 서구적인 대립 개념으로 파악한 것을 종합할 때 비로소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110쪽)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일본 사회는 물을 찾지 못한 듯하다.

옮긴이는 일본 센다이총영사로 부임한 박용민 총영사다.사진은 박용민 총영사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임용장을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책의 일본판 원문을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일본판보다 한국어 번역본이 더 훌륭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판으로 옮긴이가 달아 놓은 192개에 이르는 주석 덕분이다. 일본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뿐 아니라 최근의 흐름까지 옮긴이는 주석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옮긴이는 현직 외교관이다. 그는 최근 일본 센다이총영사로 부임했다. 센다이총영사관은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야마가타 등 일본 동북 지방 6개 현을 관할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던 바로 그 지역이다.

일본은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를 직접 입었던 후쿠시마 지역 역시 원전 재가동에 대한 찬성률이 높다는 점이다.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비합리적인 여론이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현장에서 살핀 뒤 '공기의 연구'를 잇는 또 다른 책을 써줄 것을 기대해본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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