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의 남편 신상옥 감독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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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은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찍으면서 이영화에 출연한 최은희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뒤 1954년 결혼했다.
당시 최은희와 부부 사이였던 신감독의 동거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수미는 가정을 파탄낸 여배우라는 비난을 받았다.
오수미는 신감독이 납북된 뒤 사진작가 김중만과 결혼했고, 신 감독과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를 키웠다.
신 감독 최은희가 탈북에 성공한후 아이들을 다시 데려갔고, 오수미의 김중만과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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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슈섹션] 신상옥 감독은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찍으면서 이영화에 출연한 최은희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뒤 1954년 결혼했다.
부부는 함께 50년대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며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혼 후 납북돼 북한에서 부부로 재회, 영화 작업을 함께하다 탈출하는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다.
더팩트에 따르면, 신감독은 일본 도쿄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7년 고려영화사에서 최인규 감독 작품의 ‘희망의 마을’ ‘파시’ 등 미술을 맡으면서 제작ㆍ연출ㆍ활영 등 영화 전반에 간한 지식을 비웠다.
![신상옥 감독(왼쪽)과 최은희 [사진=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4/17/ned/20180417101917566jwjb.jpg)
6.25전쟁중 부산에서 ‘악야’를 첫작품으로 감독에 데뷔했고, 이후 이광수의 ‘꿈’ 김동인의 ‘젊은 그대’등 초기의 순수문예적 작품을 발표했다.
신 감독은 1973년 영화 ‘이별’의 파리 로케이션 때 여배우 오수미와 내연 관계로 발전하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최은희와 부부 사이였던 신감독의 동거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수미는 가정을 파탄낸 여배우라는 비난을 받았다.
오수미는 신감독이 납북된 뒤 사진작가 김중만과 결혼했고, 신 감독과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를 키웠다. 신 감독 최은희가 탈북에 성공한후 아이들을 다시 데려갔고, 오수미의 김중만과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1961년 신감 독은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연출함으로써 완숙기에 접더든 연출력을 보여줬다. 최은희 납북에 이어 1978년 홍콩을 여행하던 중 납북됐다. 그로부터 8년간 북한 최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설립해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등으 작품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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