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화제의 '짤'과 주인공들

[쉽게 읽는 서브컬처-57] 평창동계올림픽의 막이 올랐습니다. 7번의 수술을 이겨내고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임효준 선수와 넘어지고도 포기하지 않고 '기적의 질주'를 선보이며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여자 스케이팅 계주 선수들, 그리고 메달 색과 상관없이 그동안 갈고닦은 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올림픽의 주인공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연 못지않게 빛나는 조연을 뜻하는 '신스틸러'들이 평창에도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서브컬처계(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평창올림픽의 '밈' 요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밈(meme)이란 원래 리처드 도킨스가 주창한 사회적·문화적 유전자를 뜻합니다. 지금은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를 통칭하는 용어로도 쓰입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강력한 밈이었죠.
◆"우리랑이 최고시다!" 인기폭발 마스코트 수호랑
'수호랑'은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 캐릭터입니다. 백호를 모티프로 디자인한 귀여운 캐릭터죠. 평창 패럴림픽의 마스코트인 반달가슴곰 캐릭터 '반다비'와 함께 평창의 얼굴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호랑은 '급조된 캐릭터'로 시작했습니다. 애당초 평창 올림픽조직위는 민화 속 까치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선정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2015년 10월 갑자기 진돗개로 교체됩니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가 결국 지난해 4월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부랴부랴 두 달여 만에 만들어 마감 직전에 승인을 받은 마스코트가 바로 수호랑과 반다비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수호랑이지만, 인기는 엄청납니다. 캐릭터 상품으로서의 높은 완성도(=귀여움)과 올림픽 현장 곳곳에서 활약하는(=귀여운) 모습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되면서 네티즌의 최애(最愛·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급부상했습니다. 특히 여성 비중이 높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수호랑을 소비하는 방식은 아이돌 스타의 팬덤을 꼭 닮았습니다. 수호랑이란 이름 대신 '우리랑'이란 애칭으로 부르고,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짤방(사진 이미지)이나 움짤(짧은 영상)을 게시판을 통해 공유합니다. 평창올림픽 홈페이지에서 팔리는 인형 같은 굿즈는 재고가 풀리는 족족 품절됩니다. 8일 공식 스토어 개장 이후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은 약 24만개가 팔렸는데, 이는 올림픽 배지 판매량(16만개)보다 많은 수치입니다.
이러한 팬덤은 무대 뒤 의외의 모습 덕도 있습니다. 수호랑은 걷다가 넘어지거나, 머리가 커서 문에 걸리는 등 허술한 모습은 물론, 쓸쓸히 혼밥을 하거나 책상 위를 온통 자기 굿즈로 채워놓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냥 웃고 홍보하는 마스코트를 넘어 감정과 성격이 살아있는 캐릭터가 된 셈이죠. 무대 위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아이돌이 무대 밖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빈틈 많은 반전 매력을 보여주는 것처럼요. 평창 조직위가 수호랑과 반다비를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한 것 역시 '캐릭터 만들기'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의 대세 '라이언'과 수호랑 중 누구를 선호하냐는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해당 글에는 "우리랑 고기길만 걷자" "국가픽(나라가 밀어주는 아이돌) 슈스(슈퍼스타) 수호랑"같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수호랑의 인기가 남다르다보니 함께 데뷔한 반다비와의 비교하는 글들도 가끔 올라옵니다. 반쯤 장난이지만 팬덤 간의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비' 반다비는 겨울잠 시즌인데도 열일하는데 수호랑은 만날 놀러 다니는 밉상" "반다비 악개(악성 개인팬) 정치질 자제요" 이런 식이죠.

수호랑, 반다비는 외국인의 눈에도 매력적인 모양입니다.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는 한국행 비행기에서 수호랑 안대를 끼고 자는 모습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수호랑과 반다비) 둘 다 너무 귀엽다.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검은색 반다비"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스키 여제' 린지 본은 수호랑 인형을 가리키며 "얘는 너무 귀엽다. 정말 예쁘다"고 말했습니다(영원히 고통 받는 반다비).
'마스코트가 귀여운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올림픽과 월드컵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마스코트, 그중에서도 인기를 끈 마스코트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긴 말은 필요 없고, 2002 한일 월드컵 마스코트였던 아토, 니크, 캐즈와 2012 런던 올림픽 웬록과 맨더빌을 소개합니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무서운데 끌려! 개회식의 미친 존재감 '인면조'
평창올림픽의 개회식은 여러모로 호평이었습니다.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1218개의 드론으로 만든 오륜기와 LED와 증강현실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연출, '퀸' 김연아 선수가 대미를 장식한 성화 점화까지 높은 완성도로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죠.
개회식에는 '인면조(人面鳥)'도 등장했습니다. 사람이 조종하는 인면조 퍼핏(인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상상 속 동물 '만세(萬歲)'를 모티프로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너무 무섭게 생겼다는 것. 새의 몸에 달린 사람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리얼해서 기괴한 느낌을 줬고, 긴 목이 뒤틀린 채 흐느적거리며 날갯짓하는 모습 역시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존재감이 남달랐습니다.

강렬한 첫 인상 덕에 인면조는 데뷔 직후 '유교 드래곤'이란 별명이 생겼고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장식했습니다. (이상한 걸 좋아하는) 일본 네티즌에게도 제대로 어필했는지 개회식 당일 일본의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에서도 검색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런 게 날아들어서 거기 너 삼강오륜을 해라 하면 쫄아서 평생 노인공경해버린다" "웃어 분위기 평창나기 싫으면" "요괴워치에 나와도 납득할 것 같은 비주얼" "인면조가 고구려거야? 신라가 삼국통일하길 잘했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팬아트도 등장했습니다. 주로 보스 몬스터나 수호랑의 마스코트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지긴 하지만 팬아트 맞습니다. 채팅 앱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등록 신청한 발 빠른(=돈 냄새를 맡은) 능력자도 나타났습니다. 정부도 심상찮은 인기를 실감했는지 대한민국 정부 공식 페이스북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인면조로 바꿨습니다. '#물_들어왔을_때_노_젓습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요.
인면조는 배일환 평창동계올림픽 제작단 미술감독이 디자인하고 퍼핏 디자이너 니컬러스 머흔이 제작했습니다. 배일환 감독은 자신의 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인면조가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 예상도 못했다"면서도 "놀랍고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하늘엔 인면조 땅 위엔…'모루겟소요' 총알맨
매끈하고 길쭉한 원형 투구를 쓰고 있는 건장한 남성들의 은색 나신. 인면조와 함께 평창올림픽 음지의 마스코트로 활약하고 있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모르겠어요 아니 '모르겟소요'입니다.
모르겟소요는 원래 평창올림픽과는 무관한 김지현 작가(50)의 설치미술작품 '총알맨들' 입니다. 김지현은 2008년 개인전 때 발표한 총알맨을 2013년 평창 비엔날레에 출품했습니다. 알펜시아 리조트에 설치된 '총알맨들'은 비엔날레 이후 강원문화재단이 사들인 것이고요.

총알맨들이 모루겟소요가 된 사건의 전말은 이달 초순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인 관광객/기자 : 이게 대체 뭔가요?
자원봉사자 : 모르겠어요
일본인 : 아~ 모르겟소요(モルゲッソヨ)구나
자원봉사자 : 음?
올림픽을 앞두고 평창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이 '모르겠다'는 대답을 이름으로 착각하면서 모르겟소요라는 별명이 붙은 것. 16세기 남미에 당도한 에스파냐인들이 지역 이름을 물었는데 말을 잘 못 알아들은 주민이 통치자의 이름(Biru)을 답하는 바람에 졸지에 나라 이름이 정해진 페루(Peru)라든가, '저 도시요?'라고 되물어봤을 뿐인데 이스탄불로 개명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지난달 31일 개관한 메인프레스센터(MPC)도 알펜시아 리조트 내에 있는지라 '총알맨들 앞은 각국 보도진의 집합 장소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왔습니다.
인면조 못지않은 존재감 덕분에 총알맨들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본에서의 뜨거운 반응이 역수입돼 한국에서도 인면조와 함께 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김지현 작가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대인의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총알맨은 일종의 욕망의 껍데기 같은 형상"이라면서 "작가는 작품 개념이 온전하게 읽히길 바라지만, 작품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9일 열린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쇼트 프로그램에서 중계카메라에 잡힌 한 남자가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카메라를 응시하던 영상 속 남자가 자신의 오륜기 모양 선글라스를 벗자 두 번째 선글라스가 등장합니다. 독특한 콘셉트와 자연스러운 표정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등장 직후 올림픽 밈으로 등극했습니다.
평창 선글라스맨의 정체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감강찬(23·김규은-감강찬 페어 세계랭킹 45위)입니다. 다른 선수들과 함께 앉아 응원하던 그는 연습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선글라스를 벗으며 화제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타임지,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앞다퉈 감강찬 선수의 영상과 인기를 전했습니다. 특히 사우던스포츠네이션이 지난 12일 트위터 계정에 올린 짧은 영상은 이틀 새 11만3000여 건의 '좋아요'를 기록했고 189만여 회나 재생됐습니다. 평창 선글래스맨의 영상은 12일 미국의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 움짤 분야에서 1위를 기록했는데, 해당 게시물에 감 선수가 직접 인증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홍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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