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차를 그저 람보르기니의 옛날 차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만화 이니셜D에 나왔던 토요타 86처럼 '서킷 울프'라는 유명 만화에 영감을 줬던 역사적인 차다. 게다가 세상에 단 1대만 존재한다.
이름은 '미우라 SVR'. 페라리 SP38처럼 어느 주머니 두둑한 이가 처음부터 람보르기니에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차는 아니다. 1968년 11월 30일 미우라S로 팔린 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전시됐고 8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이 차를 소유했던 '하인즈 스트라버'라는 한 람보르기니 애호가는 이 차를 손에 넣은 후 이탈리아 상아가타에 있는 람보르기니 공장에 찾아갔다. 왜?
1970년, 람보르기니는 세계자동차협회 FIA의 레이싱 규정 J(Appendix J)에 부합하는 차를 만들기 위해 레이싱 버전 '미우라 이오타(Miura Jota, 이탈리아에서는 IOTA로 표기)'를 딱 한 대 만들었다.

스포츠카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우라는 이오타로 인해 더 화제가 됐다. 가장 강력한 미우라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애호가가 거금을 주고 이 차를 사 갔으나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인해 소실되고 말았다. 당시 이 차의 차대번호는 #5084.
하인즈 스트라버는 미우라 이오타보다 더 강력한 차를 원했다. 18개월에 걸친 업그레이드 과정을 통해 지붕 위에 커다란 리어윙이 달린 만화 같은 미우라가 탄생했다. 스트라버가 부러워했던 이오타는 무게가 1톤이 채 되지 않았고, 4리터 V12 엔진이 최고출력 440마력, 최대토크 41kg.m를 발휘했다. 미우라 SVR의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우라 SVR은 속눈썹이 있던 기존 헤드램프가 사라진 대신 보조등이 추가 됐고, 공기역학적 성능을 높일 수 있도록 프런트립과 보닛 위 공기 배출구가 새로 마련됐다. 뒷펜더는 기존 미우라보다 훨씬 커졌고 휠하우스 내부를 거대한 타이어가 완전히 채웠다. 지붕 위에 달린 리어윙이 가장 큰 특징.
1976년, 미우라 SVR은 일본에 살던 히로미츠 이토에게 팔렸다. 당시 인기 있었던 서킷 울프(The Circuit Wolf)라는 유명 자동차 만화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실제로 이 차는 만화 속에 '미우라 이오타 SVR'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일본 교쇼사가 만든 장난감 자동차로도 판매됐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미우라 SVR은 람보르기니 복원 전담부서 '폴로 스토리코(Polo Storico)'의 품에 안겼다. 이들은 약 19개월 간, 기존 복원 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미우라 SVR을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켰다. 바뀐 것은 4점식 안전벨트와 좀 더 편한 시트, 탈착식 롤바가 장착된 것 뿐.
이 차의 차대 번호는 #3781, 엔진 번호는 2511이며, 383번째로 생산된 미우라다. 정확하게는 미우라 S에 기반을 둔다. 미우라 S의 정식 명칭은 P400S, 4리터 V12 엔진이 최고출력 370마력, 최고출력 39kg.m을 뿜었다.


비록 최신 기술을 담은 차는 아니지만, 자동차 애호가가 브랜드에 원오프 모델을 의뢰할 수 있고, 그 차가 문화예술에 영감을 주며, 브랜드와 팬들이 위대한 유산으로 여기는 이런 자동차 문화가 부럽다.
신동빈 everybody-comeon@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