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스타 감독의 선수 시절 ③ 안토니오 콘테
[포포투= Alison Ratcliffe]
위대한 감독은 선수 때도 천재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반반’이다. 요한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 제자였던 과르디올라는 선수 때부터 천재였지만, 리버풀을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끈 클롭의 선수 시절은 보잘 것 없었다. 이들의 선수 시절을 비교해보는 건 지금의 축구 철학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프리미어리그 최고 감독 3인의 선수 시절을 되돌아 본다. <편집자 주>

눈부신 경력을 요약하는 방법으로는 좀 특이했다. 안토니오 콘테는 2004년 유벤투스에서 현역 은퇴하면서 199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잠시 언급하고 내로라하는 클럽 몇 개를 나열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패했던 결승전과 부상, 이탈리아 대표팀의 실망감을 되짚고 팀 주치의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며 마무리했다.
1990년대 로베르토 바조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안루카 비알리, 지네딘 지단 등을 자랑했던 화려한 유벤투스의 든든한 받침대로 콘테를 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의 유벤투스 13시즌은 피가 낭자하는 공포영화에 가까웠다. 모친인 아다는 2000년 “아들은 축구선수로 살면서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했다. 일간지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콘테를 기적으로 유명한 성인 산안토니오에 비유했다.
콘테는 고향 클럽 레체에서 뛰던 17살에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22세였던 1991년 11월 유벤투스에 입단했다. 1992년 코파 이탈리아 결승 2차전 막판에 레드카드를 받으며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파르마를 상대로 합산스코어에서 한 골 뒤진 상태였다. 콘테의 반응은 모친을 자랑스럽게 한 것은 물론 이후 콘테를 대부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을 만족시켰다.
체력과 집중력을 앞세워 콘테는 차츰 주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콘테가 “유연하고 영리했다. 수비와 공격에서 모두 타고난 힘을 발휘했다”라고 회상했다. 유벤투스가 UEFA컵을 안은 시즌이었지만, 콘테는 처음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채 씁쓸함을 삼켰다. 1993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합산스코어 6-1 대승을 거둔 결승 2차전에 징계 결장해야 했다. 스타디오 델레 알피에서 콘테는 팬들과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없는 위안의 원천을 발견했다. 비안코네리 팬들을 향한 애정이었다.
1994년 여름 그는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콘테의 축구 열정과 전술 능력에 홀딱 반한 아리고 사키 감독은 그를 팀의 중심으로 삼았다. 정작 콘테는 본인의 테크닉이 한두 단계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탈리아가 우울하게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콘테는 스페인과 8강전에 선발 출전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 습도 90%라는 환경에서 히스테리 증세를 보여 66분 만에 교체되었다.
1994년 유벤투스는 콘테의 열렬한 팬인 트라파토니 대신 마르첼로 리피를 감독직에 앉혔다. 이어진 시즌에 유벤투스는 UEFA컵 결승전에서 패했지만, 콘테는 첫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 정상을 밟았다. 운명의 여신은 그에게 작은 위안을 허락했다. 수면 아래에서는 불운을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다.
콘테는 선수 경력의 정점조차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아약스와 격돌한 1996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하프타임 직전에 에드가 다비즈의 골반이 콘테의 허벅지에 꽂혔다. 혈관이 파열되어 근육으로 피가 몰렸다. 타박인 줄 알았던 콘테는 벤치에 머물렀다. 경기 종료 휘슬을 듣고 기쁘게 뛰어올랐다가 지독한 통증에 나뒹굴었다. 경험하지 못했던 통증이었다.
선수단 전용기가 토리노 공항으로 돌아왔던 밤, 동료들은 모두 파티장으로 향했다. 콘테는 자신이 어느 병원으로 실려 갔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과다 출혈로 피를 흡입기로 뽑아내야 했다. 며칠간 병상 신세였다. 하루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다가 상처가 다시 벌어져서 복귀 시점이 미뤄졌다.

콘테는 간신히 제 자리로 돌아왔다. 프리시즌에 지네딘 지단이 합류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몇 가지 증상을 안고서도 콘테는 즐겁게 뛰었다. 10월 FIFA월드컵 예선 2경기에 출전했다. 페루자에서 열린 약체 조지아전 도중 왼쪽 다리가 이상하게 꺾였다. 이번에는 전방 십자인대 부상을 극복해야 했다. 한 달간의 물리치료가 실패로 돌아간 후 재건 수술을 받았으나 의료사고에 가까운 바이러스 감염이 그를 덮쳤다.
스쿠데토와 UEFA슈퍼컵과 인터콘티넨털컵 우승,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로 차고 넘쳤던 유벤투스의 1996-97시즌이 콘테를 비껴갔다. 막 물려받았던 주장 완장을 포기해야 했다. 본래 자리인 중앙을 내준 채 측면에서 경력의 말년을 보내야 했다.
콘테를 재시험하는 불운이 연료 역할을 했다. 1997년 9월 레체전에서 골을 터트렸다. 고향 팀을 상대로 하는 셀러브레이션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망각한 채 기뻐 날뛰었다. 레체 팬들은 지금도 콘테를 용서하지 못한다. 브레시아전에서는 바이시클킥으로 골을 터트려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에게 “판 바스턴 같은 골”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시즌 후반기가 되자 기세가 떨어졌다. 유벤투스가 세리에A 정상으로 진군하는 동안 점차 콘테의 선발 출전이 줄었다.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패배(vs레알 마드리드)를 벤치에서 지켜봤다. 7월까지 미들즈브러, 마르세유, 블랙번 등의 이적설이 나왔다.
콘테는 유벤투스에 남았다. 팀에 유용한 새로운 습관도 생겼다. 결정적 골을 터트리는 습관이었다. 올림피아코스전 골로 UEFA챔피언스리그 탈락을 막자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콘테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라며 칭찬했다. 일간지 <라 가제타>는 콘테를 영화 ‘펄프픽션’의 해결사 캐릭터인 ‘윈스턴 울프’와 비교했다. 축구에서 콘테의 소울메이트였던 안첼로티는 1999년 2월 리피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신임 감독은 콘테가 “중앙, 좌측, 우측 어디에서 뛰든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장애물은 끊이지 않았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해냈던 UEFA챔피언스 준결승 역전극의 희생양이 되었다. 다음 시즌에는 페루자와 폐막전에서 결정적 실점의 빌미를 허용하며 스쿠데토를 놓쳤다. 유로2000 이탈리아 대표팀에 합류해서 터키와 개막전에서 오버헤드킥으로 골망을 흔들었지만, 8강전에서 게오르게 하지와 발목으로 충돌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안토니오는 축구화를 벗기 전까지 코파이탈리아 결승전에서 두 번 더 패했다.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황금 같은 기회를 날리며 무릎을 꿇었다. 2002년에는 이탈리아의 월드컵 대표팀에 들지 못했고, 평생을 바쳤던 유벤투스와 사이가 틀어진 채 작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으로 유벤투스에 돌아온 2011년 5월, 콘테는 자신이 현역 시절 패배의 공포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고백했다. “누군가 내가 얼마나 많이 승리했는지를 기억한다고 말하면 늘 ‘나는 너무 많이 졌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4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로 이어집니다)
사진=포포투 DB,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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