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오두막서 로그오프.. "디지털 毒 빼드립니다"

보스턴/김신영 기자 2018. 6.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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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창 Now] '디지털 디톡스' 산업

'이제 컴퓨터를 끄고 여행에 나설 시간입니다. 이 이메일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인터넷을 멀리하십시오.'

숲속 작은 오두막 숙소를 운영하는 미국 숙박 스타트업 '겟어웨이 하우스(Getaway House)'에 예약했더니 체크인 당일 정오쯤 이런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 회사는 예약 홈페이지에 '매사추세츠주(州) 보스턴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라는 정보만 알려줄 뿐, 정확한 주소를 공개하지 않는다. 소셜네트워크에 오두막 사진을 찍어 올리려는 사람들이 찾아와 분위기를 망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로스쿨 출신이 모여 만든 겟어웨이는 스마트폰에 중독된 이들이 며칠만이라도 '플러그'를 뽑을 수 있는 아날로그 여행을 내세워 2015년 출범했다. 보스턴·뉴욕·워싱턴DC 근교의 숲 속 깊이 자리 잡은 오두막 촌에선 와이파이는커녕 휴대폰 신호도 잘 잡히지 않는다. 불편하기 짝이 없을 듯한 이 숙소엔 디지털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는 이들이 몰려 주말(뉴욕 토요일 기준)에 방을 잡으려면 11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째에 접어들면서 휴대폰과 소셜네트워크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미국에선 겟어웨이처럼 억지로라도 디지털 독(毒)을 빼 준다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산업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毒, 억지로라도 빼 드립니다"

지난달 찾은 겟어웨이 하우스의 20㎡(약 6평)짜리 오두막에 들어서자 '휴대폰 잠금함'이라고 쓴 작은 나무 상자가 가장 먼저 보였다. '스마트폰 없이 어찌 시간을 보내야 하나'며 불안해하는 이들을 위한 카드·주사위 놀이와 아날로그 라디오도 갖춰져 있다. 디지털 첨단 기술에 혈안이 된 미국 벤처시장에서 극단적인 반(反)디지털을 내세운 이 스타트업은 지난해 명품 재벌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계열 사모펀드인 L캐터턴으로부터 1500만달러(약 170억원)를 투자받아 오두막 촌을 다른 지역으로 더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휴대폰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미국에서는 억지로라도 디지털 독(毒)을 빼자는 ‘디지털 디톡스’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명상 스튜디오 ‘MNDFL’에서 사람들이 명상 수업을 듣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보스턴 인근 숲 속에 있는 오두막 숙소 ‘겟어웨이 하우스’의 모습. 이곳에선 와이파이와 휴대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MNDFL·베어워크


겟어웨이 창업자인 존 스태프는 "디지털 기기와 업무에 쉼 없이 연결된 현대인에게 와이파이, 스마트폰과 잠시라도 단절된, '숲 속에 나 홀로' 같은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겟어웨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겟어웨이와 비슷한 디지털 디톡스를 내세운 여행 상품이나 패키지는 미국에서 최근 잇달아 출시되고 있는데, 대부분이 빠르게 매진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블리스 아웃 캠프 아웃'은 여성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인데, 공용 숙소의 1박 비용이 400달러로 비싼 편이지만 매번 30개 티켓이 금세 팔려나간다. 이 캠프 주최 측은 참석자가 도착하는 대로 휴대폰을 수거해 자루에 넣고 잠가버린다는 점을 캠프의 특장점으로 내세운다.

휴대폰을 맡기고 들어가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디지털 웰니스' 스파, 휴대폰·태블릿PC 등 모든 디지털 기기를 직원에게 넘겨야 체크인 할 수 있는 피츠버그 르네상스 호텔의 '디지털 디톡스 패키지', 프런트 데스크 금고에 휴대폰을 맡겨야 하는 포틀랜드 킴프턴 호텔의 '로맨스 부활 패키지' 등 디지털 디톡스를 주제로 한 글로벌 호텔 체인의 패키지 상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잠시라도 디지털로부터 멀어지길 갈망하는 도시인들이 급증하자 도심의 럭셔리 호텔들이 간편한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을 계속 출시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지긋지긋한 스마트폰… '바보 폰'의 부활


디지털 중독의 진앙(震央) 격인 스마트폰을 포기하고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로 돌아가겠다는 극단적 '자가 처방'을 하는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해 통화, 문자 메시지 등 기본 기능만 갖춘 전화기를 뜻하는 이른바 '덤폰'(dumb phone·'멍청한 전화기'란 뜻으로 스마트폰의 반대말)을 만드는 스타트업들도 성업 중이다. 첨단 휴대폰에 밀려 고사(枯死)했다고 여겨진 노키아 브랜드를 인수해 쓰기 편하고 싼 피처 폰(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휴대폰)을 만들어 파는 핀란드 스타트업 HMD는 2017년에만 80개국에 휴대폰 7000만대를 팔았다고 지난 2월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 회사는 벤처 캐피털로부터 1억달러를 투자받았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덤폰' 스타트업 '라이트'도 지난 4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를 통해 목표했던 금액의 7배인 167만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디지털 디톡스 관련 산업의 성장은 디지털 기술, 특히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 심리학회(APA)는 지난해 연구 보고서 '소셜미디어와 스트레스'에서 지속적으로 이메일·소셜네트워크 등을 확인한다는 이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0% 정도 높다고 발표했다. 설문 참가자(3511명) 중 65%가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답해 디지털로부터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애플·구글도 "이젠 좀 덜 쓰시죠"

디지털 중독의 원흉으로 지목당할 위기에 몰린 스마트폰 개발사들은 사용 빈도 및 시간을 줄일 기술을 개발해 내놓으면서 디지털 디톡스에 앞장서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애플은 이달 초 열린 개발자 회의 때, 아이폰·아이패드 사용자가 하루에 휴대폰을 보는 횟수와 특정 앱(응용 프로그램) 사용 시간 등을 알려주고 다른 이들의 평균과 비교해 스스로 사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새 앱 '스크린타임'을 선보였다.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도 지난달 열린 개발자 회의 때 휴대폰 화면을 보는 시간을 분석하고 원하는 시간대에 화면을 (덜 자극적인) 흑백으로 바꾸는 식으로 디지털 중독을 줄이겠다는 '디지털 웰빙 이니셔티브'를 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디지털 중독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사용자를 위험한 중독에 빠뜨린 IT(정보 기술) 회사들에 윤리적인 기술 개발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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