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올바른 식당 사용법..손님도 주인도 웃는 '외식 문화'를 만들자
[경향신문]

‘집밥’보다는 ‘셰프의 스페셜’이 인기 있는 시대다. 이제 요리는 집안일이 아니라 구경거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블로그에 흘러 넘치는 음식 사진, 맛집 정보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요리 안 하는 나라’다. 2015년 독일의 시장조사업체 GfK가 22개국 15세 이상 2만7000명을 대상으로 요리 시간을 비교·분석한 결과, 한국인이 일주일에 요리하는 시간은 3.7시간에 그쳐 조사 국가 중에서 가장 짧았다. 국가별 평균 요리 시간은 6.5시간이었다. GfK는 외식산업의 발달, 가공식품 보급, 음식물을 판매하는 대형 슈퍼마켓 등이 요리 시간 단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1인 가구의 증가 역시 국내 외식산업 발달의 강력한 동력이다. 2010년 4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인 시대에 접어들었다.
2016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은 한 달 평균 15회 외식을 한다. 나은경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2015년 ‘사회과학연구’에서 “요리하지 않고 먹는 것이 어느 때보다 쉬워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고 했다. 그러나 외식문화는 활발하지만, 외식문화에 대한 만족도는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고객은 식당을 욕하고, 식당은 고객을 원망한다. 맛집이라고 해서 찾았는데 ‘주인이 손님을 짐짝 취급했다’든가, 식당 종업원에게 ‘진상’을 부리는 손님에 대한 불만이 세상에 가득하다. 온라인에 음식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중 믿을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한 셰프는 “포털사이트 맛집 블로그 포스팅 중 80%는 광고”라고 공언했다. “식당을 개업하면 업자가 찾아와요. 업자와 계약을 마치면 블로거들이 와서 사진 찍고 공짜 식사를 하고 간 뒤, 일주일쯤 지나면 이모티콘을 섞은 글을 올립니다. 셰프에게 음식에 관해 질문 한마디 안 해요. 그래도 블로그에는 이런저런 글과 함께 식당 찾아오는 길까지 올렸더라고요. 이제 블로그에서 맛있다고 하는 집은 믿지 않습니다.”
미국 음식 온라인 매체 ‘이터’ 등에 글을 쓰는 매티 김은 “(한국은) 전문적인 음식 평론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탓에 소비자도 레스토랑도 블로그 리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점이 안타깝다”며 “블로그를 통해 완전히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씨 역시 “우리나라는 유독 맛집 담론이 사업화돼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외식 공화국’…손님과 식당의 신뢰를 먹고 자란다
“소문 듣고 갔더니 맛도 없고 짐짝 취급”
“노쇼에 진상 손님에 죽을 맛”
■ 사업화된 맛집 담론

식당문화의 변화는 ‘젊은 미식가 그룹’의 등장과 맞물린다. 밀레니엄 서울힐튼 식음료부 이병철 디렉터는 “과거 미식 문화를 주도하던 소비층이 50~60대였다면, 지금은 젊어진 40대를 포함한 20~30대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외식비 지출금액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30대로 소비지출의 약 18%를 외식비에 사용하고 있었다. 젊은 미식가는 음식문화의 빠른 유행을 선도한다. 치즈등갈비가 유행하나 싶더니, 육회집이 뜨고, 그 자리를 연어무한리필집이 채운다. 유행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외식업계는 프랜차이즈 격전장이기도 하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해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기형적이라 할 만큼 많은 편에 속한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외식업의 비중이 71%에 가깝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2017년 외식업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인스타그래머블’을 꼽았다. 인스타그램과 ‘할 수 있는’이라는 뜻의 영어 ‘able’을 합친 신조어로 사진 및 동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이 때문에 화려한 플레이팅, 남다른 인테리어가 식당의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 됐다.
이 디렉터는 “젊은층의 성향 덕분에 요즘 부각된 음식군이 디저트”라고 지목했다. 앙증맞고 예쁜 케이크와 같은 디저트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올리기에 제격이다. 뷔페식당에서도 디저트 코너를 강화하고,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디저트 메뉴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보기’ 좋은 음식이라고 먹기 좋은 건 아니다. 주인의 불친절이나 식당 이면의 불결함은 인스타그램에 담기지 않는다.
■ 노매너, 노쇼, 가성비의 지옥
신촌, 대학로 등에 지점을 운영하는 베트남쌀국수 전문점 미분당의 자리에는 독특한 문구가 써 있다. “미분당은 누구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주인의 뜻에 따라 탄생하였습니다. 고객께서는 이 점 이해하시어 옆 사람에게 말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조금만 크게 웃고 이야기하면 금세 직원이 다가와 “조용히 식사 부탁드린다”는 당부를 건넨다. 그래도 대기줄은 길다. 대기 손님은 식당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 역시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식사하는 환경을 위해서다. 식당에서 동행인과 즐겁게 이야기하길 원하는 이들에겐 불편할 수 있는 분위기지만, 이처럼 고객에게 식당주인의 태도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는 전통적인 캠페인 때문에 ‘진상’ 고객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했다는 건 마케팅계의 오랜 자성이다. 어느 카페에는 “영상 및 음악 청취는 이어폰 사용” “반말로 주문하시면 반말로 주문 받습니다” 같은 문구가 써 있다. 어느 식당 직원의 유니폼에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1인당 1메뉴 주문을 당부하는 업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권 침해 논란까지 부른 ‘노키즈존’은 그 극단적 사례다. 음식칼럼니스트 정동현씨는 “식당들이 정하는 규칙은 결국 기본적인 예의의 범주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는 이용자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배금광 동의대 외식산업경영학과 교수는 2015년 불량고객의 행동유형과 대처행동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106명의 서비스 관련 업종 종사자가 꼽은 불량 행동은 성희롱, 언어적 폭력, 육체적 폭력, 결제 거부 순으로 나타났다. 2015년 ‘호텔관광연구’는 조리사, 바텐더, 패스트푸드, 웨이터 및 접객원과 같은 외식서비스 종사자가 감정노동을 가장 많이 수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2017년 고용노동통계에 따르면 숙박 및 음식점 종사자들의 이직률(7.9%)은 건설업(14.3%) 다음으로 높았다. 불량고객에 대한 대처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다. 인터넷 리뷰 의존도가 큰 외식업계에서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고객의 엄포는 지옥으로부터 온 소환 통보나 다름없다.
예약문화의 부재도 아쉽다. 이병철 디렉터는 “예약을 하면 좌석 배치는 물론이고 좀 더 세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반 식당 예약률은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업계의 대표적인 폐단은 예약부도, 이른바 노쇼(no-show)다. 규모가 있는 식당의 경우 그나마 예약 관리가 수월하지만, 작은 식당은 대책이 없다. 크리스마스 같은 계절 이벤트가 낀 ‘대목’은 비상이다. 소위 잘나가는 식당에 겹치기 예약을 해두었다가 한 군데만 가는 얌체 행태가 여전하다. 심지어 같은 호텔 레스토랑 세 군데에 같은 시간으로 예약한 사례도 있다. 노쇼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개정해 외식업에서의 예약 취소 기준을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외식업 사업자가 소비자로부터 예약 접수 시 예약보증금을 받은 뒤, 소비자가 예약시간으로부터 1시간 이내에 갑자기 예약 취소를 통보할 경우 예약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장준우씨는 “손님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식당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내려는 데에서 비극은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언젠가부터 식당에서 기대하는 행복감의 기준이 ‘가성비’로 변했습니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경제활동으로 볼 수 있지만, 식당 입장에서는 버티기 힘든 환경입니다.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가성비의 벽에 부딪혀 가격을 올리지 못하다보니 좋은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수익이 악화되는 구조가 됩니다.”
■ 동네 식당과 상생하는 미식 문화로
식당 이용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데 대해서는 다수의 전문가가 공감했다. 이병철 디렉터는 “맛있는 음식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능동적인 자세보다는 ‘뭔가’를 더 받아야 즐거운 식사가 될 거라는 기대감이 좋은 식사를 하고도 만족감은 덜하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16년 aT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외식 메뉴나 업체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맛이었다. 응답자의 77%(복수응답)가 선택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 외 가격·접근성·신속성 등의 답이 나왔다. 하지만 식당을 고르는 중요한 이유로 식재료를 고른 사람은 14%에 불과했다. 이 디렉터는 “한때 (요리에 과학을 접목시킨) 분자요리를 하는 스페인의 레스토랑 엘불리가 세계 최고로 손꼽혔으나, 지금은 덴마크의 노마가 각광받고 있듯이 결국 기본에 충실한 맛, 음식, 식당이 사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마는 신선한 토착(북유럽) 식재료를 단순한 조리법으로 내놓는 레스토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동현씨는 “외식에 대한 경험치가 적다보니 한번 외식하는 거 제대로 누리고 싶은 마음에 과도한 기대를 갖고, 이왕이면 TV에 나오는 식당을 찾으려는 가성비 소비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일부 미식가 그룹이나 미식 관련 유명 인사의 권위에 기댈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맛집을 찾아 방랑하는 뜨내기손님이 되기보다는 음식점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미식’의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2018년의 외식 트렌드로 ‘가심비’를 뽑았다. ‘가격대비성능’을 따지던 시대에서 가격대비 마음의 만족감을 따지는 시대라는 것이다.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경향에 따라 “비윤리적인 기업을 피하거나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업체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도 가심비 소비”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준우씨는 “동네 기반의 작은 식당과 주민들의 상생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일부러 맛집을 찾아 멀리 가서 줄을 설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앞 동네 식당을 이용하자”는 것. 최근 골목상권의 소박한 식당이나 동네 작은 빵집이 주목받기 시작한 데에는 맛집 탐색의 피로감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매티 김의 조언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식당 업주들도 대중매체나 온라인 리뷰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직접 운영하는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레스토랑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려는 노력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서비스’를 요구하기 위한 허울이 아니라 미식의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단골’에 있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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