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서 시작된 소수자인권과 다인종주의 중시 '이젠 게임으로'
[게임의 법칙-78] ◆디즈니의 환골탈태가 가리키는 것들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주 비판의 도마에 오르곤 했다. 철저한 서구 백인 중심의 작품 경향, 이따금씩 다루는 비서구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오리엔탈리즘과 인종 차별, 가부장제와 같은 이슈에서 디즈니는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정말 같은 회사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디즈니의 기조는 크게 바뀌었다. '모아나' 나 '겨울왕국' 등의 애니메이션에서 인종이나 성별을 다루는 방식은 물론이고, 이제는 디즈니의 관할하에 놓인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드러나는 경향성도 과거의 디즈니로부터 사뭇 독립되어 바라봐야 할 수준이다.
한국의 케이블TV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되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최근 방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의사가 꿈인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꼬마의사 맥스터핀스'의 주인공은 흑인 여자아이가 맡고 있다. 과거라면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을 캐릭터는 이제 주인공이 되어 극을 이끌어간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는 제목만 보면전형적인 구 디즈니 공주물일 것 같지만, 이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서 해피 엔딩을 향하지 않고 에피소드마다 자신이 직접 위기와 역경을 헤쳐나가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핵심으로 하는 기업이 어떤 윤리적 관점에서 콘텐츠를 만든다고 주장하려면 적지 않은 거짓말이 필요하다. 물론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좀 더 이윤을 위해 움직인다는 기업의 본질적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세계는 갈수록 연결되며 좁아지고, 디즈니의 시장은 북미와 서구를 넘어 좀더 시장을 넓히지 않으면 성장이 불가능하다. 인권을 의식하는 전 세계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고, 기업은 이에 대응해야 할 전략적 필요를 갖는다.
디즈니의 행보 또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1차적으로 기업전략에 반영되었다기보다는 2차적 영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 대중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서구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장이 원하는 것, 그리고 기존의 서구가 범세계로 확장되면서 필요로 여겨지기 시작한 폭넓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의 반영이 지금 디즈니의 변화다.
윤리적 가치마저도 상품화와 이윤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체제에 대한 호오를 잠시 접어두고 현실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드러내는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인도해 내는 것은 '시장에서의 요구'라는 근원이 있다. 시장에서의 요구는 그러나 자연스럽게 반영되기보다는 이를 이용하려는 기업의 의도에 의해 콘텐츠화된다.
◆대중문화 콘텐츠로서의 게임이 가는 방향
게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블리자드의 FPS게임 '오버워치'다. '오버워치'는 전 세계 다양한 국가 출신들을 주요 캐릭터로 삼되, 우스꽝스러운 스테레오타입을 먹이지 않는다. 게임은 다양한 연령대의 다국적 인물들을 성별에 무관하게 등장시킨다. 심지어는 2016년 겨울에는 별도 코믹스를 통해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트레이서'가 양성애자임을 공식 선언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매우 선언적인 이벤트였는데, 게임 콘텐츠가 이제는 대중문화 콘텐츠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블리자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벤트였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블리자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딱 1년 전 발매된 '호라이즌 제로 던' 은 붕괴된 미래 사회를 구원하는 주인공으로 활 쏘는 여성 캐릭터, 에일로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구 세계의 구원을 이룩하려던 이도, 신 세계의 멸망을 막으려는 이도 모두 여성인 '호라이즌 제로 던'의 세계관은 게임 내에서 고정관념 속의 성역할을 뒤집어내는 장면을 숱하게 연출하면서 성평등 시대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제안했다. 늘상 섹시 캐릭터로만 알려지던 액션 어드벤처 게임 '툼 레이더'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는 2013년 리부트 이후 섹시 콘셉트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캐릭터 리뉴얼을 통해 더욱 일신한 모습을 선보인 바 있었다.

이러한 게임콘텐츠 제작사들의 시도는 애니메이션, 영화와는 또다른 의미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이는 게임이 더 이상 서브컬처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의 반영이자 게임사의 선언이기도 하다. 게임의 제작비는 하늘을 모르고 치솟고, 시장은 계속 비서구 비백인 지역으로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게이머층을 벗어나 더 넓은 시장을 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게임사들은 자신들의 콘텐츠가 일부 특정 계층에 의해서만 플레이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인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제작사들은 대중문화콘텐츠 생산자로서 매체윤리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확대와 동시에 자신들의 콘텐츠가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손색없음을 입증하려 한다. 윤리적 문제와 상업적 이슈를 결합하여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더디지만, 반 발짝씩, 천천히.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갖는 편견의 문제는 절대 하루아침에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1862년 미국에서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을 발표했지만, 1950년대까지도 남부의 버스들은 흑인과 백인의 좌석을 분리하고 있었다. 리틀록 센트럴 하이스쿨에 입학한 아홉 명의 흑인 학생들이 미 연방군의 보호를 받으며 등교한 것이 1957년이었고, 모든 제도가 고쳐졌다고 믿어졌던 1990년에도 흑백 차별로 인한 LA 폭동이 일어났다. 게임콘텐츠를 둘러싼 여러 인권부문의 이슈들 또한 적지 않은 암초들을 만나 삐걱이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비록 더디긴 할지라도 이 변화의 흐름이 멈출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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