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가면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부터 맛보세요

정영선 2018. 1. 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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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트래블-8] "아빠, 파리에서는 뭘 먹어요?" "파리에선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먹지." 아이들은 달팽이 요리를 먹는다는 아빠의 말에 기겁을 한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이 부부로 나오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대사다. 두 주연배우의 이름만 듣고 '타이타닉' 같은 달콤함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이 영화 속 부부는 살벌하다.

반복되는 일상과 권태에 지친 부부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기로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남편에겐 승진의 기회가 찾아오고 안정적인 삶의 기회를 얻은 그는 떠나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아내는 계획대로 떠나기를 원하면서 둘의 갈등은 시작된다. 결국 팽팽하게 맞서던 그들은 서로에게 회복되지 않을 상처를 입히고 (여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더하자면) 안타깝게도 에스카르고를 먹을 기회 역시 갖지 못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달팽이를 먹는다는 얘기에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난 생각했다. 달팽이 요리가 그렇게 놀랄 음식인가? 하긴 나도 어릴 적 번데기가 어떤 생명체인지 알았다면 쉽게 먹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미국에서 프랑스로 이민 계획을 세우는 가족이 먼저 떠올렸을 정도로 에스카르고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다. 하지만 난 이 요리에 대한 호기심은 적은 편이어서 프랑스에 가면 동물 학대 음식의 대명사 격인 '푸아그라(Foie gras)'는 맛보고 싶었어도 '에스카르고(Escargot)'는 떠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에서 에스카르고와의 만남은 푸아그라보다 먼저 이뤄졌다.

디종의 기욤문
디종의 부엉이 표시
난 파리에서의 일정을 소화한 뒤 하루 일정으로 디종을 방문했다.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디종은 과거 500여 년 동안 부르고뉴(Bourgogne) 공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아직까지 고풍스러운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도시의 상징인 기욤문을 통과하자 중세풍의 수많은 깃발들이 펄럭이며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관광은 어렵지 않았다. 보도블록에 부엉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 부엉이만 따라가면 시내 주요 관광지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중앙우체국은 너무 멋스러워서 내가 이 근처에 산다면 매일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러 우체국에 갈 것만 같았고 13세기 부르고뉴 건축의 걸작이라는 노트르담 교회와 보존이 잘 된 목조건물들은 디종이라는 소도시의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디종의 브라세리
디종 시내를 한참 구경하고 있을 때 작은 골목에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한 브라세리 앞이었는데 그들의 식사하는 모습은 조용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틀림없이 맛있을 거야!' 나는 주저 않고 들어갔다. 심플한 메뉴판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메뉴인 에스카르고가 에피타이저로 준비되어 있었다.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
달팽이가 식용으로 사용된 건 기원전부터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가 길다. 특히 포도잎을 갉아먹는 달팽이를 농민들이 잡아먹으면서 와인 산지를 중심으로 식용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먹는 방법도 찜, 조림, 스튜, 튀김 등으로 다양한데, 가장 유명한 건 버터와 다진 마늘, 파슬리, 후추를 넣어 먹는 부르고뉴 식이다. 이 방법은 19세기 앙토냉 카렘이라는 셰프가 만들어 냈는데 이후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됐다고 한다(앙토냉 카렘은 프랑스 요리 역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니 이름을 기억해두면 좋다). 달팽이 요리라고 해서 아무 달팽이나 먹어도 되는 건 아니다. 식용 달팽이가 따로 있고,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안전하게 섭취가 가능하다.
에스카르고를 먹기 위한 집게와 포크
주문한 에스카르고가 나왔다. 먼저 달팽이용 집게와 포크가 나오고 동그랗게 홈이 파인 그릇에 담긴 달팽이 요리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먹을 땐 집게로 달팽이를 집은 뒤, 포크로 가운데 있는 달팽이 살을 잡아 돌돌 빼 먹으면 된다. 쫄깃하고 고소한 맛에 짭조름한 소스 역시 입에 착착 붙는 게 맛있어서 감칠맛 내는 애피타이저로 딱이었다. 프랑스에 와서 안 먹고 갔으면 너무 아쉬울 뻔했다.

에스카르고를 모든 프랑스인이 즐겨 먹는 건 아니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도 에스카르고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미국인 주인공(다이안 레인)은 정말 요리를 잘한다는 레스토랑에 초대를 받아 에스카르고를 대접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달팽이를 산 채로 요리한다는 말에 차마 씹지 못하고 냅킨에 슬쩍 뱉어서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런데 그 레스토랑을 뛰어다니던 한 꼬마 녀석이 바닥에 떨어진 달팽이를 보고 '앗! 에스카르고다!' 하고 맛있게 주워 먹는다. 흠, 역시 요리는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미트볼, 키쉬, 채소 이뤄진 소박한 식사
디종 프랑수와 뤼드 광장
에스카르고를 먹고 나니 오늘의 메뉴인 미트볼과 키슈, 채소가 곁들어진 접시가 나왔다. 소박하고 맛있는 한 끼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다시 도시를 걷다 보니 디종 출신의 조각가 이름을 본떠서 만든 프랑수아 뤼드 광장을 만날 수 있었다. 광장 가운데 있는 동상을 유심히 보면 포도를 밟아 으깨며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상마저도 이곳이 포도와 와인의 산지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부르고뉴 와인은 보르도(Bordeaux) 와인과 더불어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난 떠나기 전에 부르고뉴 피노누아와 소테른 와인을 한 병씩 구입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빼놓으면 아쉬운 향신료 가득한 빵 '팽데피스(Pain d'epices)'까지 구입했다.
향신료가 가득한 빵, 뺑데피스
아, 그런데 얘기를 끝내려고 보니 하나 빠진 게 있다. 내가 파리에서 하루 일정으로 디종에 온 이유다. 그건 바로 '디종 머스터드'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조금 길어질 그 얘긴 다음 기회로 미루자. 어차피 나의 디종 여행은 '디종 머스터드' 찾으러 갔다가 '에스카르고'를 만나고 온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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