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훌라춤은 몸으로 하는 '하와이 수화'..그 속엔 '알로하 정신'이 담겨있다

이우일·선현경 2018. 6. 2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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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선현경의 ‘잠시 멈춤’

일러스트 이우일

어린시절 꿈은 ‘댄서’였다. 소질은 없지만, 훌라댄스를 배우고 싶었다. 7대 째 댄스를 가르치는 할아버지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춤을 추기 전 하와이말을 가르쳤다. 문자가 없는 하와이에서 신화와 뿌리를 전해 주려고 만들어진 게 훌라댄스기 때문이란다. 거기서 만난 수다쟁이 아시아계 두 사람. 성향이 비슷해 마음이 간다. 일본인 쉐리는 수화 선생님인데, 영어 수화도 나라별로 다르다는 걸 알고 놀랐다. 이방인들로 구성된 하와이. 본토박이들도 한때 미국인에게 이방인 대접을 받았단다. 선생님은 ‘이방인으로의 태도’를 강조했다. 서로 존중하며 모두 받아들이는 것. 그게 알로하 정신이란다. 석달 쯤 되니 하와이 말이 들리기 시작하고 몸도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리바리. 선생님은 실수를 해야 고칠수 있다며 격려를 잊지 않는다. 언젠가 잘 추게 될 날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실수를 하고있다.

가끔씩 미래가 불투명해 초조해질 때가 있다. 여기서도 이것저것 일하지만 프리랜서의 삶이란 역시 항상 불안하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되뇌는 말이 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아무리 걱정하고 고민해 봐야 지금밖에 살 수 없다.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훌라 춤을 배우기로 했다.

춤은 내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진지한 궁서체’로 ‘댄서’였다. 학교무용반에서 처음 발레복을 입어 보던 날부터 그 옷을 계속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무용으로 예술중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엄마는 단호히 반대하셨다. 미술이라면 모를까 춤은 안된다고.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내 앞일에 이의를 제기했던 적은 나의 생애를 통틀어 딱 한번, 그때뿐이다. 학교도 전공과 선택도 결혼도, 네가 알아서 하라고 놔두시는 분이다. 내 문제는 어떤 것에도 반기를 드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춤은 아니었다. 그 당시 당신이 보기에도 딸은, 춤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판단하신 게 분명하다. 제대로 보셨다. 리듬을 잘 타는 몸이 아니다. 하지만 소질과 마음은 별개라 늘 춤이 추고 싶다. 4년 전 탭댄스도 그런 마음에 배우겠다고 신발까지 샀는데 결국 몇 달 배우다 관뒀다. 덕분에 ‘싱잉 인 더 레인’의 한 소절만 스텝을 밟을 줄 아는 애매한 춤꾼이 되어버렸다. 한 곡 정도의 춤은 정복해보자는 마음으로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 꾸준히 해보기로 결심했다.

처음 만난 훌라 선생님은 하와이 전통문양 문신을 팔에 새긴, 몸집이 크고 긴 머리카락을 가진 하와이 청년이었다. 디즈니 만화 <모아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의 젊은 남자였다. 선생님은 기본 스텝을 알려주더니, 훌라는 선생님마다 모두 다른 동작을 가르친다며 거리에서 보던 춤이 제각각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엄마가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훌라를 자신이 이어받아 가르치고 있다며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동작을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그 집안의 고유한 김치 레시피를 소개받는 기분이었다.

모두 제각각이라니 어떤 다른 반이 있나 구경하다 7대째 전통 훌라댄스를 가르치는 할아버지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춤을 추기 전 30분을 하와이안 전통 북인 이푸(ipu)를 두드리며 하와이어를 가르친다. 하와이는 자신의 말은 있지만 고유의 글자가 없다. 훌라 춤은 그들의 신화와 뿌리를 노래하고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훌라 춤은 노래만 알아듣는다면 이해가 쉬운 구체적인 동작들이다. ‘몸으로 하는 이야기’를 보고 듣는 셈이다.

훌라 치마 ‘파우’를 걸치고 앉아 둥둥 북소리에 맞춰 하와이어를 배우는 게 좋았다. 하와이어는 성조가 있어 그냥 말해도 노래 같다. 수업을 끝낸 뒤에는 다 같이 하와이말로 기도를 하는데, 춤을 추던 썰렁한 교실이 거대한 우주로 스르르 바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듣는 언어가 주는 신비감이 있었다.

그래서 석 달째 매주 토요일에 두 시간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하와이 할아버지의 훌라 수업을 듣고 있는데 실력이 나아지는 기미가 없다. 어렵다. 수화와 비슷한데 리듬까지 타야 하니 매우 난감하다.

훌라 교실에서 나이가 비슷한 또래 두 명과 친해졌다. 알고 보니 둘 다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미술선생님 미셀과 미국수화 선생님 쉐리. 쉐리에게 무심코 ‘영어’수화라고 했더니 반듯이 ‘미국’수화라며 정정해준다. 같은 영어를 써도 미국 수화와 영국 수화, 호주 수화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수화는 문화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보니, 비슷한 지역이나 같은 문화권끼리만 이해하는 동작을 하기 때문이란다. 참고로 우리나라 수화와 일본 수화는 70%가 같은 동작이라고 한다. 아, 일본은 새삼 가까운 나라였다.

우린 셋 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시아 사람인데, 모두 미국의 다른 주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친하게 되었다. 미셀은 시카고에서 15년 살다 온 필리핀인, 쉐리는 뉴욕에서 14년 살다 온 일본인, 나는 포틀랜드에서 2년 살다 온 한국인. 우리는 모두 전에 살던 지역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전화를 걸면 하와이가 아닌 다른 지역 이름이 뜨는 공통점이 있다. 셋 다 새롭게 바뀌는 걸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들이다.

우린 훌라 수업 쉬는 시간에 수다를 떨다 친해지게 되었는데, 우리만 떠드는 분위기라 따로 만나 놀다 더 친해졌다. 셋 다 수다쟁이에 잘 웃고 시끄러운 편이다.

이곳으로 온 이유 역시 너무 빡빡한 도시의 삶이 싫어 이곳 고등학교로 지원했다고 하니, 다들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셋 다 비슷한 삶의 취향을 가지고 사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헐렁함을 즐기는 여자 사람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 사람을 만나면 나와 완전하게 다른 사람은 안 만나게 되어 좋다. 시냇물에 모여 있는 비슷한 크기의 조약돌처럼 비슷한 성향과 처지의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친구가 된다.

하와이에 오니 포틀랜드에 비해 좋은 점이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다. 포틀랜드는 대부분 거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째서 포틀랜드냐?”는 말이었다. 근처의 마을로 놀러가거나, 작고 후미진 시골동네를 찾아가면 동양인에게 몰리는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태어나 한 번도 다른 도시에 가 본 적도,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이곳 하와이는 아니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이방인들이다. 아시아 인구가 절반이 넘는 이방인의 도시다. 하와이인들이 미국인들 때문에 이방인처럼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훌라 선생님은 어릴 적에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야 했는데, 쉬는 시간조차 영어로 놀아야 해 불편했다고 한다. 하와이어를 쓰면 손등을 맞았다고 했다. 하와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천시하던 시절이었다. 해변 호텔에 하와이 원주민들이 기웃대지 못하도록 커튼을 치거나 벽을 세워 하와이 사람들을 차단하던 시절이었다. 인종을 표시하라는 서류에 ‘백인’ ‘흑인’ 그리고 ‘다른 것들’ 세 칸으로만 분류되어있어, 펜을 들고 한참 울던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훌라 선생님은 이방인으로서의 태도를 늘 강조하신다. 여기는 미국이지만 하와이고, 많은 나라 사람들이 같이 사는 땅이니 함께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두라고 말이다. 한국인은 한국문화를, 일본인은 일본문화를, 중국인은 중국문화를 갖고 있으니 서로 존중하자고 말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하신다. 모두 열어두고 받아주는 마음. 그게 알로하 정신이라며 다 같이 존중하자고 말이다.

토요일마다 가는 훌라 수업. 벌써 석 달째 접어드니 아무리 들어도 헷갈리기만 했던 하와이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무슨 손동작을 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못 잡았다. 몸과 싸우지 말라는 선생님의 조언도 들었다.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며 움직일 수조차 없던 날들을 보내고 나니 이젠 하와이말 단어 몇 개쯤은 알아듣고 동작을 구사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리바리 갈팡질팡하다 실수를 하며 식은땀을 닦으니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실수를 하고 있잖아. 실수를 한다는 건 좋은 징조야. 네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거거든. 노력하니까 실수도 하는 거야. 실수를 하고 나면 틀린 걸 알게 되고, 그럼 고칠 수 있거든.”

<빨간 머리 앤>의 대사가 생각났다. 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에는 틀림없이 한계가 있을 거라고. 한번 했던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테니, 실수를 하고 나면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고.

빨간 머리 앤 같은 너그러운 선생님 덕에 제대로 쉬어가게 생겼다. 언젠가는 옆에 있는 댄서들과 같은 동작으로 훌라를 추게 될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혼자 새로운 실수를 하는 중이다.

▶이우일·선현경 부부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다. 이우일은 <콜렉터> <좋은 여행> <굿바이 알라딘> 등을 쓰고 그렸으며 <노빈손 시리즈>와 <용선생 한국사>의 그림 작가다. 선현경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가족 관찰기>를 쓰고 그렸으며 <이모의 결혼식> <엄마의 여행가방> 등 동화를 냈다. 지난 2년 동안 미국 포틀랜드에서 딸, 고양이와 함께 쓰고 그리며 살다가 최근 하와이 오아후섬으로 터전을 옮겼다.

<이우일·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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