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00)요즘 남자들 막 들이대지 않는 거 아세요?

2018. 6. 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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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자신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땐 잘나갔는데, 그땐 인기가 많았는데, 그땐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그때의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의 초라하고 쪼그라진 모습만 남은 것 같아 서글퍼 한다.

“이거 얼마만이야. 근데 설마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국수잔치한 건 아니지?”

제주도 대정읍의 한 벤치에 앉아 있는 30대 커플의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김창길 기자

“웬걸요. 국수가 불어 터질 판이에요. 저 연애상담 좀 해주세요. 하하.” 그녀가 쑥스럽게 웃으며 내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유 간사는 여전히 활기차고 예뻤다.

“안한 거야? 튕긴 거야? 아님 결심한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궁금했다.

“한 장만 더 쓰시죠? 하하.”

“그럼 밀당 중?” 그녀와의 대화는 늘 나도 모르게 내 안의 활기를 끌어내게 한다.

“선생님, 혹시 요즘 30∼40대 미혼 남자들을 좀 아세요?” 조용히 찻잔을 손으로만 마시던 그녀가 흥미로운 질문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제가 만난 사람들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그들 마음을 통 알 수가 없어요.”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토록 자신감 넘치는 그녀가 모르겠다는 말을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그녀는 서너 달 전 어떤 남성을 소개받아 교제 중이었다. 중간에 소개시켜준 사람의 평판도 좋았고, 소개팅 자리에서 보인 인상이나 말투도 건실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단다. 오랜만에 소개팅다운 소개팅을 받았고, 상대도 그녀만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둘은 쭉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첫눈에 훅 반한 건 아니지만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 첫눈에 반하는 게 어디 있겠나,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연락을 주고받았단다. 그러나 서너 달이 지나도록 정식으로 교제하자는 말은커녕 말도 편하게 터놓지 않고 있단다. 슬슬 조바심이 나고, 한 번씩 화도 나면서 전화하다가 공연히 짜증내는 일도 늘었단다. 그러다가 행여나 이 남자가 짜증내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자신의 여성적인 매력만 보여주려니 마냥 느긋한 남자의 태도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적도 몇 번 있었단다.

“남자 마음 통 알 수 없어 답답해요”

“요즘 남자들은 예전같이 막 들이대지 않는 거 아세요? 오히려 반대죠. 다들 간만 보고, 막상 중요한 얘기나 결정을 해야 될 때가 오면 회피해요. 그러니까 답답한 여자 입에서 먼저 ‘우리 관계 뭐냐’고 말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듯 자연스럽게 일반화시키는 것을 보니 그런 경우가 그녀 주변에서도 종종 있나보다. 그녀는 무엇보다 후회감이 크단다. 자신만 조바심 나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하고, 남자가 당황하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시원하긴커녕 자신이 이 관계를 리드하는 것 같은, 표현하기 힘든 불쾌감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단다. ‘그냥 없었던 것으로 할까’ 여러 번 생각했단다.

“정말 속상한 것은요, 예전의 저는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이라면 미련 없이 끊었거든요. ‘무슨 남자가 이래’ 하면서요. 그런데 지금은 순간순간 타협하고 참게 되는 거예요. 이 정도의 남자를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불안함이 올라오면서요. 그렇다고 꼭 제 스타일인 것도 아닌데 말예요. 왠지 놓치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러다 정말 혼자 살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초라하고 짜증나게 하는 건 이런 상황에서조차 지금 제가 무척 외롭다는 것,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기분 나쁜 생각들이 밀려온다는 거예요.” 낭랑했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겨우 이야기를 마친 그녀의 눈에 눈물이 돈다. 자신이 스스로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특히 이성 앞에서 그런 마음이 든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같은 여성으로서 막 부어오른 마음의 생채기가 느껴져서 내 마음도 아팠다. 특히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 아닌가.

“아, 정말 지금 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그냥 짜증나요! 그 사람이 완전히 제 스타일인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제가 왜 이렇게 못나게 구는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흐르는 눈물을 확 밀쳐버린다.

“예전 남친들이 절 보면 놀랄 거예요”

어디 이게 연애뿐이겠는가. 완전히 마음에 쏙 드는 정도가 아닌데도 불안함에 내 판단을 흔들어놓는 것이. 그저 그런 직장, 몇 년째 불투명한 부부관계, 오히려 만나고 나오면 힘 빠지는 지인들 모임. 모두 혼자가 될까봐 생기는 불안함 때문에 현재의 나를 ‘왕년의 쿨한 나’답게 하지 못하는 경우 아닐까.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껴지면 불편한 이질감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유 간사는 자신이 현재 외롭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잖아. 놀라워.”

“네, 저도 쉽지 않았어요. 인정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질 것 같고, 제 자신이 정말 못난 것 같고. 점점 저다운 것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처음엔 부인했었어요.”

“자신감 있고, 관계 속에서 주도적이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이 정말 힘들겠다.”

“네.” 그녀는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짜증낼 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거 알아? 유 간사는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이랑 변함없어. ‘현실과 타협하려니까 힘들다’는 말 역시 ‘내가 현재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이뤄서 잘 살려고 애쓴다’는 말로 들려 여전히 당당하게 보여. 어때?”

“그저 연애를 구차하게 원하는 거겠죠?” 웃으면서 그녀가 대답한다.

“좋아. ‘지금 나는 연애를 절실히 원해.’ 이렇게 느끼고 있잖아. 그럼 유 간사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예전에 남자친구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당당하게 요구했던 때처럼, 지금도 매우 자기답게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보이는데?”

“이렇게 굴욕적이고 타협적인 데도요?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이에요. 예전 남친들이 지금의 절 보면 놀랄 거예요.”

“예전 시각으로 지금을 보면 그럴 거야. 속상하지. 그러나 유 간사가 원하는 것이 그때와는 달라졌잖아. 그때는 관계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이 나의 욕구였다면, 지금은 관계를 유지하고 더 깊은 관계로 가고자 하는 성숙한 욕구가 있잖아. 욕구가 달라졌으니 그 욕구를 채우는 방법도 달라져야 되지 않나. 나는 세월이 지난 지금의 유 간사 모습이 예전의 모습이나 마찬가지로 자기답다고 여겨지는데 혹시 이 말이 어떻게 들려?”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조용하지만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옆의 화초에 고정된 그녀의 시선 역시 그랬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20대와 30대, 어쩌면 10대까지 넘나들며 바쁘게 시간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의 자신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땐 잘나갔는데, 그땐 인기가 많았는데, 그땐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그때의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의 초라하고 쪼그라진 모습만 남은 것 같아 서글퍼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세월에 맞게 자신은 그곳에 그대로 있다. 여전히 자기답게 행동하고 결정하는 모습이 마치 무대감독처럼 자신 안에 살아있다. 연극의 무대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부인할 수 없는 게 있네요. 예전에도 문제가 생기면 저는 얼른 해결하고 싶어했어요. 실제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의지하는 편이었죠. 그런 능력이 직장생활하면서 많이 흐려졌어요. 직장에서는 자꾸 나서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상담소를 찾아와서 연애상담을 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법을 찾던 제 원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네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마음이 편해져요. 저 어디 안 갔네요.”

유 간사 표정이 밝아진다. 자신을 조우했으니 이젠 자기답게 원하고, 관계하고, 표현할 일만 남았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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