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수익은 나게, 막돼먹은 건물은 막는 게 내 임무"

김미리 기자 2018. 6.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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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설계 건축가 김찬중
건축가 김찬중이 사무실에 둔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의 ‘스펀(Spun) 체어’에 앉았다. 팽이처럼 생겼지만 공학적인 계산에 따라 만든 의자가 외형만 보면 장난기 가득하지만 치밀한 구조 계산에서 탄생한 김찬중의 건축과 닮았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요즘 리조트 사진 하나가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촛대처럼 솟은 바위 병풍 삼고, 쪽빛 바다 품은 채 벼랑 끝에 자리 잡은 순백의 건물. 여름휴가 앞두고 틀에 박힌 휴가지에 신물 났던 이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지중해 어느 휴양지인가?' 호기심에 클릭해 본 이들, 또 한 번 놀랐다. 원시의 비경은 우리 땅 울릉도의 것이었고, 조각처럼 빚은 건축물은 국내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지난 4월 울릉군 북면 추산길 송곳산에 들어선 '코스모스 리조트'이다. 화제의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찬중(49·더시스템랩 대표). 한국 건축계의 허리를 받치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하나다. 가우디 건물을 닮아 화제를 모은 서울 한남동 현창빌딩, 강남구 신사동 폴 스미스 매장, 경남 양산 미래디자인센터 등을 설계했다.

25일 분당의 수퍼마켓 2층 창고를 개조해 만든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창고의 박공지붕을 고스란히 살려 만든 사무실엔 공모전 당선작과 낙선작 모형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울릉도가 건축물로 화제를 모은 건 처음입니다.

"건축주인 코오롱글로텍에서 버킷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며 찾아왔어요. 건물이 들어설 송곳산 옆 벼랑에 가보니 압도적인 풍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여기에 건물을 짓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었어요. 자연에 누를 끼치지 않는 공간을 만들자 맘먹었어요. 해·달·별 등 천체의 움직임을 추적해 각 방에서 서로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디자인했어요. 이름도 우주를 뜻하는 'cosmos'를 응용해 코스모스(KOSMOS)로 지었고요."

―울릉도까지 자재를 어떻게 날랐나요.

"외벽을 초고강도 콘크리트(UHPC)로 했는데 도저히 뭍에서 만들어 나를 수가 없었어요. 현장에 작은 공장을 하나 지었어요. 뭍에서 만든 거푸집을 현장에서 조립하고 콘크리트를 부어 외장을 만들었어요. 공사 기간 15개월 동안 저는 배 타고 12번 오갔어요."

―앞 동은 돌돌 말린 암모나이트 화석처럼 생겼어요. 뒷동은 구불구불한 옷 프릴(주름) 같기도 하고 하얀 파도 같기도 하고요.

"소용돌이 같다는 사람도 있고, 백 허그 하는 연인 같다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제 건물엔 늘 '… 같다'는 수식이 따라요. 최근 서울 삼성동에 리모델링한 KEB 하나은행 'PLACE 1'은 예술 작품을 걸 수 있는 원형 디스크 174개를 외벽에 달았더니 문어 빨판 같다, 멍게 같다고 해요. 폴 스미스 매장은 마시멜로 같다 했지요."

―그런 반응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딱 봐도 이 건물은 집이고, 이 건물은 사무실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건축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용도를 한눈에 가늠할 수 없고 생각을 던지는 건물을 지으려 해요. 사람들이 아는 사물을 떠올리면서 별명 지으며 건축에 관심 갖는 자체가 의미 있지요."

김찬중은 "뒷짐 지고 '에헴' 하며 거대 담론 얘기할 시간에 발품 하나 더 팔자"는 현장주의자다. 몇 해 전 설계를 맡긴 한 기업 회장이 그에게 서울 광화문에 갓 들어선 건물의 내부 공간을 봐줄 수 없겠냐고 했다. 외부인 통제가 엄격한 빌딩이라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고심 끝에 묘안이 떠올랐다. 건물 앞 구두닦이 아저씨에게 일당을 주고 연장통을 빌려 구두를 수거하는 척하면서 건물에 들어갔다.

―연장통까지 빌려 들어갔어야 했나요?

"사실 안 가면 그만이었어요. 그런데 나를 (프로젝트에) 고용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기도 생겼고."

―건축은 건물 짓는 일이지만 결국 사람 간의 신뢰에서 출발한다는 얘기 같네요.

"건축주는 자신의 인생에서 황금기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돈이 없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경제적으론 여유로운데 외로운 사람이 참 많아요. 오른팔·왼팔 노릇 하는 복심도 믿지 못하는 기업 오너가 프로젝트 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사를 말하기도 해요. 그런 신뢰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와, 이게 한국이야?’ 탄성 절로 나오는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덕분에 처음으로 울릉도가 건축으로 조명받게 됐다./건축사진가 김용관

―건축가의 역할이 뭔가요.

"건축가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예술가는 자기 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지요. 건축가는 남의 돈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겁니다. 건축을 잘 모르는 이에게 나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전문가입니다. 엄밀히 내가 설계한 건물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죠. 수익은 나되 막돼먹지 않은 건물을 만드는 게 제 임무입니다."

그가 예술가의 생리를 허투루 아는 건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국내 첫 여류 누드화가 강명순(78) 화백이다. 제약회사 전문경영인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돈이 되는 예술하라. 점잖은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려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그건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다"며 누드화를 고집했다. "돈과 예술의 마찰을 지켜봤기에 현실적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그는 "일하는 만큼 버는 사람이 '프로'이고 일하는 것보다 더 받는 사람은 사기꾼, 일하는 것보다 덜 받는 사람은 바보다. 나는 프로이고 싶다"고 했다.

―건축주에 맞추다가 흉물을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건축주에겐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있고 건축가에겐 예술적인 욕심이 있습니다. 건축가는 건축주와 샅바질을 잘해 건축주의 욕망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가치로 바꿔야 합니다."

―내 집 짓기를 꿈꾸는 평범한 이들이 늘고 있어요.

"상류층보다 이들이 중요해요. 상류층은 소유한 건물이 여러 채지만, 평범한 이들에겐 내 집 한 채 짓기가 일생의 꿈이거든요."

―이들에게 조언하자면.

"'3~5년 뒤 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라고 하고 싶어요. 실제로 다시 못 짓더라도요. 올인하지 말라는 거죠. 이 집은 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집 짓기가 굴레, 감옥이 됩니다."

―건축가를 찾아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집을 원하느냐고 하면 이구동성 '모던하고 깔끔하고…'로 시작해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헷갈립니다. 자기가 원하는 집을 그리는 게 힘들다면 좋아하는 건물 이미지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내 집을 짓는다면?

"세상의 흐름과는 달리 돌아가는 작은 집과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건물을 짓다 보니 공동체가 무너져 사회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서요." 김찬중표 마을은 또 어떤 별명을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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