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sumer >法 몰라서.. 잠시 빚 못 갚아서.. 선의의 피해자 年2만명 유치장行

민병기 기자 2018. 2. 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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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정훈 기자 kimjh@

- 악덕 아닌 영세채무자 잡는 ‘재산명시 불이행 감치’

빚 안갚으면 재산공개하는 제도

거부땐 2개월 범위내 인신구속

생계위해 집떠나 우편 못받거나

法몰라서 우물쭈물하다 잡혀가

금융社, 채무자 심리적압박위해

소송보다 재산명시 더쉽게 선택

구속 탓 경제활동 못해 악순환

“채권·채무관계 넘은 인권침해”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모(여·56) 씨는 이혼한 남편이 진 빚에 허덕이며 살고 있었다. 지하방 살림에 압류 딱지가 붙는 것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딸과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법원에서 우편물을 받았으나 ‘재산명시’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방치했다. 몇 달 뒤 ‘감치 명령’이라는 우편물을 받고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부랴부랴 도움을 줄 기관을 찾아 추심은 당분간 중지시켰다. 그러나 결국 10개월 후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법에 대한 무지’나 ‘가난’이 자칫 사실상 ‘인신구속’으로 이어지는 민사집행법상 채무자 감치 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고 인권 침해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빚을 갚을 여력이 있는 데도 갚지 않고 있는 악성 채무자는 걸러내되, 선의의 피해자를 막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악성채무자 때문에 도입된 감치 제도 = 재산명시의무 위반자에 대한 감치 제도는 민사집행법을 제정하며 민사소송법에서 형사처벌 대상이던 것을 민사적 제재로 전환하며 도입됐다. 과거 민사소송법 524조의8 제1항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명시 기일에 출석하지 않거나 재산 목록의 제출을 거부하는 등의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었지만 2002년 1월 민사집행법을 제청하며 채무자가 거짓의 재산 목록을 낸 때에만 형사처벌하고 나머지 경우에는 감치에 처하도록 했다. 정확히 재산명시의무가 있는 채무자가 명시기일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나 재산목록의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 또는 선서를 거부하는 경우 2개월의 범위 내에서 법원이 채무자를 감치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민사집행 절차에 감치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재산명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재산명시 제도는 지급 명령을 받은 채무자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채무자 스스로 법정에 나와 본인의 재산 목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채권자는 법원에 지급 명령 신청을 하면 법원은 채무자의 이의가 없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를 승인한다. 그러면 채권자는 곧바로 채무자의 재산명시 신청을 내게 되고 채무자는 법원에 나와 자신의 재산목록을 제출하고 선서를 하면 감치를 면하게 되는 식이다. 이에 따라 돈을 갚지 않아도 재산 상황을 설명하고 선서만 하면 감치를 피할 수 있는데 이마저 ‘무시’하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고 일각에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2002년 제도 도입 때부터 감치 제도는 충분히 돈을 갚을 능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변제를 하지 않는 채무자를 대상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남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당시 법무부도 “현실적으로 영세한 소액 채권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영세한 소액 채무자가 많은 것이 현실인데 영세한 채무자에 대해 강력한 제재 수단을 가할 경우 사법 정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도입을 반대했다.

◇5년간 매년 2만 명 이상 감치 = 1일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사법연감 등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재산명시 불이행 감치 결정은 2012년 1만8916건에서 2013년 2만2599건, 2014년 2만1503건, 2015년 2만4896건, 2016년 2만7261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재산명시 불이행에 따른 감치 대상은 전체 감치 결정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16년에 감치 결정을 받은 2만7505명 중 재산명시 불이행자가 절대다수인 99.1%였다. 법정질서유지(법원조직법), 가사소송사건의 각종 명령(가사소송법) 등에도 감치 제도가 규정돼 있지만 매년 실제 집행되는 것은 수십 명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에 비하면 재산명시 불이행 감치 결정이 지나치게 남용되는 셈이다.

특히 이 같은 감치 대상은 대부분 영세 채무자인 경우가 많다.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영세채무자의 경우 생계를 위하여 주소지와는 별개의 장소에서 지내다가 법원의 송달장을 받지 못하거나 설사 받더라도 법률적 조언을 구할 곳이 없거나 아예 법원의 명령을 두려워해서 회피하다 감치에 처해 지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경기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의 2017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채무 관련 상담자 중 저소득층이 35.8%, 기초생활수급권자가 22.6%, 차상위계층이 7.4%로 저소득층이 3분의 2에 달했고, 직업별로도 무직(41.2%), 단순노무직(19.6%)이 60%가량이었다.

재산명시와 감치 제도가 악성 채무자를 견디다 못한 ‘선의의’ 채권자가 이 제도를 이용해 채무자가 고의로 은닉한 재산을 명시하도록 강제하는 등 자신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보다는 금융회사 등에서 쉽게 소액의 채권 회수를 위해 주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현장과 법조계 일각에서 나온다. 김미선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장은 “재산명시까지 가기 전에 금융회사에서 자신의 정보 취합 능력과 권한을 이용해 실행하거나 이행할 수 있는 수많은 소송과 집행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않고 재산명시 신청을 하고 있다”며 “당장 받을 수 있는 돈이 없는 대신 ‘벌’을 주고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감치를 통해 채권자에게 실질적인 효용을 주기보다는 법원의 명령에 불응한 ‘괘씸죄’가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감치 제도가 채무자의 인권 침해와 채무 변제 능력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감치 집행이 법정 구속과 같은 강제력으로 이뤄지는 만큼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 영세한 채무자들이 최장 20일 감치되며 오히려 경제적 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해 결과적으로 채무 변제가 더 늦어지거나 어려워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선의의 피해자 막는 제도개선책 마련돼야”= 헌법재판소는 2014년 민사집행법상 감치 제도는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신체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지 않으며, 적법절차원칙에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역기능을 최소화해 선의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독일,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중 채무자에 대해 구금 제도를 두는 곳은 독일 정도뿐이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감치 제도가 도입된 지 16년가량 지나며 채무자의 재산 상황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대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중원 변호사는 “감치 제도는 법원의 업무편의를 위하여 채무자의 인신을 구속함으로써 채무변제를 사실상 강요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제 의원은 지난해 11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기소액채권에 대해서는 감치결정을 면제하도록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채무자에게만 가혹한 형벌을 부여하는 것은 채권채무 관계가 사적인 계약이라는 점을 넘어선 인권 침해”라고 밝혔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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