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다저스의 결혼들..저스틴 터너와 아내 이야기

                                                                                   저스틴 터너 SNS

2016년 켄리 잰슨의 결혼식

2016년 12월 중순이었다. 결혼을 일주일 앞둔 다저스 마무리 투수에게 점심 약속이 생겼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구단 관계자들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마주앉은 상대는 GM(단장)인 마이크 리조와 구단주였다. “리조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식사 내내 흐뭇한 기분이었죠.” 물론 그들이 내민 조건도 흡족했다. 5년, 8500만 달러였다. 원 소속팀보다 500만 달러나 많았다. “그 때 이미 마음은 기울었죠. 사인만 하지 않았을 뿐이었어요.”

일주일 뒤. 신랑의 고향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카리브해 남쪽의 퀴라소라는 작은 섬이었다. LA에서 5,600㎞나 떨어진 곳이다. 하물며 바로 가는 항공편도 없다. 뉴욕이나 보스턴을 거쳐 10시간 이상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야시엘 푸이그, 스캇 반 슬라이크, 키케 에르난데스 같은 팀 메이트들이 불원천리 찾아갔다.

결혼식 당일, 호텔 스위트 룸에 이발사가 초대됐다. 머리 손질이 필요한 신랑의 들러리 때문이었다. 붉은 머리가 삐쭉삐쭉한 저스틴 터너였다. 이발하는 동안 옆에 있던 신랑과 얘기가 계속됐다. “팀을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더라구요. 감독이나 코치가 달라지고, 클럽 하우스 분위기가 바뀌고 하는 부분들이었죠.”

신랑은 줄곧 다저스에서만 있었다. 반면 들러리는 4개팀을 전전하던 저니맨이었다. 때문에 생생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굳이 붙잡으려는 건 아니었어요. 다만, 내 경험을 얘기해줬죠. 그리고 지금 우리 팀이 얼마나 괜찮은 지에 대해서 말해줬어요.”

그날 밤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파티가 열렸다. 신랑, 신부가 첫번째 댄스를 막 끝낸 순간이었다. 빨간 머리 들러리가 중간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리곤 신랑을 포옹했다. 축하의 귓속말이 이어졌다. “이봐, 난 LA로 돌아가면 사인할 거야. 그냥 다저스에 남기로 했어. 너도 그랬으면 좋을텐데….” 그 역시 FA였다. 세인트루이스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뿌리쳤다. 돈을 약간 손해봤지만 잔류를 택한 것이다.

다음 날. 들러리와 일행들은 퀴라소 옆에 있는 아루바 섬으로 떠났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선탠을 즐기고 있었다. 옆에 있던 빨간머리의 여자 친구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오 마이 갓. 켄리가 다저스에 그냥 남기로 했다는데?”

그 결혼식은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의 중대한 분기점이 됐다. 윈터미팅에서도 결론내지 못했던 대형 FA 2명의 행선지가 전격적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그랜드 캐년에서의 청혼

그로부터 1년 뒤. 이번에는 멕시코의 카보라는 도시였다. 눈 앞에 태평양이 펼쳐진 곳이다. 이번에는 빨간 머리가 주인공이었다. 수많은 하객들이 참석했다. 네드 콜레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단장시절 그를 다저스로 데려왔던 인물이었다.

“세상에나. 정말 놀랐어요. 그렇게 많은 선수들이 모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꽤 먼 곳(LA에서 약 1,700㎞ㆍ비행기 2시간 반)인데도 다들 찾아왔어요. 정말 같은 팀 동료라는 의식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주례는 오렐 허샤이저가 맡았다.

결혼식의 화제는 프러포즈였다. 지난 3월이니까, 스프링캠프 때였다. 그랜드캐년에서 이뤄진 멋진 세리머니에 대해서 모두가 감탄했다. 무릎을 꿇은 채 청혼 반지를 건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옆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저기서 반지 떨어트리면 영영 못 찾는 거야.”

                                                                                                                   저스틴 터너 SNS

’그랜드캐년은 우리에게 절대 잊혀지지 않는 곳입니다. 내 남은 인생을 이 놀라운 여성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프러포즈 당시 그가 올렸던 트윗이다.

3루수의 아내가 됐다. 그녀의 이름은 커트니 엘리자베스다. 남편(34)보다 2살 아래다. 5.5피트(167.6㎝)의 키에 금발이다. 인디애나 체스터톤 출신으로 10대 시절 ‘미스 틴(Teen) 인디애나’로 선발되기도 했다. TV 쇼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그녀는 NHL(프로아이스하키) LA 킹스의 치어리더로 활약하기도 했다.

빨간 머리 변천사

외모만으로 그녀를 평가하는 건 대단한 실례다. 명문 UCLA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자신의 이름이 걸린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물론 그녀가 만든 최고의 스타일 메이킹은 따로 있다. ‘빨간 머리’다.

얼마전 <스포츠 일러스트레티드>가 올린 GIF 파일 하나가 화제가 됐다. 새 신랑 3루수의 스타일 변천사였다. 기사는 이렇게 묘사했다. ‘MLB 선수 중 이렇게 극심한 변화를 겪은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다. 2009년 오리올스에서 삭발 스타일(buzz cut)로 시작해 지금은 불타는 오렌지색 장발로 변모했다. 이유는 순전히 피앙세(당시는 약혼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빨간 색이다, 오렌지 색이다. 그의 머리 색깔을 놓고는 이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스스로 빨간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각종 SNS 아이디도 ‘redturn’으로 활동 중이다. 이를테면 ‘붉은 터너’ 쯤일 것이다.

                                                                          <Sports Illustrated> 캡처

2013년 : 여자의 기억, 남자의 기억

여자의 기억 - 2013년 2월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67세로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니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태어나서 가장 크게 슬프고, 절망했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매년 아버지 날(6월 셋째주 일요일)이면 SNS에 그리움이 가득한 멘션을 올리곤 한다. 5년 전 온몸이 떨리는 순간에도 어깨에 따뜻한 손을 올려준 사람이 있었다. ‘빨간 머리’였다.

남자의 기억 - 남자는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2013년 같은 해였다. 정확하게 12월 2일이었다. 지긋지긋한 뉴욕의 추위를 뒤로 하고 따뜻한 LA에서 오프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고향이자, 대학까지 자란 곳이다.

쾌적한 날씨였다. 느긋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선수 노조 행사에 가던 길이었다. 언제나 짜증나게 막히는 5번 프리웨이는 그날 따라 술술 풀렸다.

여유로움이 가득할 무렵, 휴대폰이 울었다. 발신자는 (당시 소속팀 뉴욕 메츠의) 앨더슨 단장이었다. 특유의 느릿한 어조였다. 간단한 안부에 이어 본론이 나왔다. “저스틴, 이거 참 유감스럽게 됐네. 우린 로스터 한 자리를 비워야 할 상황이 됐네. 아마 자네 정도면 괜찮은 팀이 나타날 거야.” 방출 통보였다.

나쁘지 않은 시즌이었다. 타율 .280을 기록했다. 홈런(2개)이 부족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다고 여겼다. 내야 유틸리티였으니 재계약은 걱정없다고 안심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연봉 50만 달러짜리에게 푸근한 겨울은 언감생심이었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정신이 멍~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 때였다. 옆좌석의 조용한 손길이 다가왔다.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다.

이제 곧 30이 되는 저니맨을 반길 팀은 없었다. 간신히 연줄이 닿은 곳이 미네소타였다. “거의 갈 뻔했어요.” 사인을 앞두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모교 캘 스테이트 풀러튼에서 졸업생들 행사가 열렸다. 거기서 대학 선배인 팀 월락을 마주쳤다. 그는 다저스의 벤치 코치였다. 월락은 네드 콜레티 단장에게 구직자의 이력서를 전해줬다. 마침 보험용 내야수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콜레티 단장은 조건을 제시했다.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자격이었다. 메이저 승격시 100만 달러, 아니면 12만 달러를 받는 스플릿 계약이었다. ‘됐다’ 싶었다. 멀리 미네소타로 가면서 고무신 걱정할 이유가 사라졌다.

                                                                              저스틴 터너 SNS

아직 2016년 퀴라소의 결혼식을 잊지 마시라. 처음엔 빨간 머리도 생각이 많았다. 그 때는 잘 나가는 FA였다. 오라는 데도 많았다. 자고 나면 계약액이 몇 백만 달러씩 뛰었다. 우왕좌왕하던 그를 잡아준 게 그녀였다.

“처음이었어요. 둘이서 그렇게 야구와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진지했던 건 말이죠. 그녀가 얘기하더군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곳을 선택하라구요. 돈은 그 다음이라면서….’ 그제야 정신이 들었죠. 그 말을 켄리(잰슨)에게도 해줬어요.” (상기하시라. 그녀는 UCLA 심리학 전공자다.)

물론 우리에게도 한 명 있다. 푸른 빛깔 새 신랑이. 그와 그의 신부도, 그럴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은 부디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팬들은 그렇게 믿는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