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헷갈리는 정전협정과 휴전협정..어쨌든 평화협정 체결이 답이다

정원식 기자 2018. 4. 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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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19일 언론사 사장단 오찬간담회에서 “65년 동안 끌어온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의 체결로 나아가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을 밝혔습니다. 정전이 뭔지, 정전은 휴전과 뭐가 다른지,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 정리했습니다.

■ 정전협정인가 휴전협정인가

남북한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정을 두고 휴전협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전’은 휴전의 전제로서 짧은 기간의 적대 행위 중단을 의미한다. 반면 ‘휴전’은 전쟁의 중단을 의미하지만 전쟁원인의 해결에 합의하지 않은 채 전쟁을 종료한다는 점에서 ‘평화조약’과는 구분된다.” 엄밀히 따지면 다른 개념이지만 협정문 원문은 ‘Armistice’, 즉 휴전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반면 한국어 번역본에는 ‘정전’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반도에서 1950년 시작해 1953년 중단된 전쟁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정전과 휴전의 구분이 무의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평화협정 왜 필요한가

1950년 6월25일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을 통해 중단됐습니다. 정전협정 4조60항은 “3개월 내 정치회의를 소집해 한국으로부터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고 규정했지만, 이를 위한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뒤 휴전선과 서해상에서의 일시적 충돌을 제외하고 남북한의 정규군 사이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고, 일상에 바쁜 시민들이 ‘전쟁 위협’을 실감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사자들은 65년 전 ‘휴전’을 선언하고 잠시 쉬고 있을 뿐, 문서상으로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한반도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시적인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NLL(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논란과 휴전선 및 서해상에서의 남북한 충돌, 연평도 포격 사건 등과 같은 북한의 무력 시위 등이 이를 실증합니다. 북한 핵개발의 최대 명분 중 하나가 ‘미국과의 적대 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위수단 확보’입니다. 남한에서는 지난 군사정권과 보수세력이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반인권적·반민주적 통치를 정당화했습니다. 양쪽 모두 정전체제를 유지하느라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온 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꿈으로써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겁니다.

관련기사: [정전협정 60주년 평화로 가는 길] 미완의 평화논의

■ 한국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었다

정전협정문

정전협정문을 보면 협정문에 서명한 사람은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마크 웨인 클라크,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입니다. 정전협정 조인식 현장에는 유엔군 총사령관을 대신해 윌리엄 해리슨 미군 중장이, 북한·중국군을 대표해 남일 북한 대장이 참석했습니다. 정전협정문의 정식 명칭도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협정에 관한 협정’입니다. 전쟁을 잠시 중단하는 정전협정이었기 때문에 군사령관들이 서명자가 된 것인데, 서명에 미국·중국·북한은 보이는 반면 ‘한국’은 안 보입니다. 이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상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이 자신의 ‘북진 통일’ 주장과도 배치되는 데다 정전협정 체결 시 미국이 한반도 방위를 보장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정전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남한이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는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습니다.

관련기사: [정전협정 60주년 평화로 가는 길] 53년 정전협정 체결 때 한국은 당사자로서 서명 못해

■ 주한미군 철수가 평화협정 전제 조건?

일부에서는 북한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 조건으로 주한민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1961년 5·16쿠데타 이후 한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1974년에는 미국에 미북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등 평화협정 체결을 선제적으로 요구해왔는데, 1980년대 말까지는 주한미군 철수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주한미군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합니다. 1992년 북한은 김용순 노동당 비서를 미국으로 보내 당시 아놀드 캔터 미 국무차관에게 “우리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과 수교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북한은 2000년 10월 김정일 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의 만남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철수 문제에 대해 이전보다 더욱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밝힌 것은 북한의 이 같은 태도를 확인한 것입니다.

관련기사:문 대통령 "북, 비핵화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 요구 안 해"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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