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한해 2만6천명 혜택..세계 첫 정장대여 비영리기업 '열린옷장' 김소령 대표

이재철 2018. 3.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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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 빌리러 올때 기죽어 있던 취준생들 당당하게 펴진 어깨에 일 그만둘 수 없죠
"노숙인들 재기 도우려 근사한 옷과 '인생음식' 선물해요"
세상에서 가장 큰 옷장이 서울에 있다.

 이곳 옷장에는 2500여벌에 달하는 남녀 정장이 당신을 기다린다. 졸업, 취업면접 등을 앞두고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 옷장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이유는 2500여개의 '이야기' 때문이다. 모든 정장이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한 시민과 기업의 기부로 이뤄졌다. 이 옷을 입고 인생의 중요한 면접을 치르는 대여자들은 기증자들로부터 합격의 응원을 받는 셈이다.

 한 벌의 정장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비영리단체 '열린옷장' 김소령 대표를 매일경제가 만났다. 이곳은 공유경제에 기반해 2012년 세계 최초로 비영리 목적의 '정장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회에서 기증 받은 정장과 와이셔츠를 대여해주고 얻은 수익금은 대학생 식비, 소외 어린이 지원 등에 쓰인다. 기증과 대여, 수익분배가 모두 '나눔'을 중심으로 선순환한다.

 열린옷장에서 정장을 빌려 입고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나중에 '기증자'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혜택을 입었듯, 소중한 월급을 쪼개어 산 정장을 후배들을 사용해달라며 기부하는 것. 그래서 열린옷장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옷장이 됐다. '열린옷장'안에 담긴 2500여개의 인생 이야기를 만나러 가보자.

"생애 처음으로 산 정장을 기증합니다. 멋지게 입고 당당하게 합격하세요."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자리 잡은 비영리단체 '열린옷장'. 이곳 사무실에 가득한 정장 2500벌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멋진 '인생 스토리'가 가득하다. 졸업·면접을 앞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은 물론 퇴직 후 재취업을 준비 중인 장년층까지 다양한 계층이 이곳에서 정장을 빌린다. 기증된 정장 중에는 성인이 된 딸을 위한 첫 선물로 어머니가 사준 블라우스와 정장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한 남성이 기증한 수십 벌의 고가 정장도 있다. 사연은 다르지만 기증자들은 옷을 전달하며 같은 메시지를 남긴다. "나보다, 내 딸보다 더 멋지게 입어달라"고. 실제 대여정장으로 면접을 치른 취준생들은 "누군가 나를 응원해주는 느낌을 받았다"는 훈훈한 후기를 남긴다.

한국 사회에 '정장 대여'라는 새로운 공유경제 서비스를 도입한 '열린옷장'의 김소령 대표(48)를 만났다. 광고업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날리던 그녀는 2013년 회사를 그만뒀다. 앞만 보며 달려오다 지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제는 사회에 따뜻한 변화를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은 곳을 바라보는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그녀는 '정장 공유'라는 사회적 기업 모델을 생각해냈다. 컨설팅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 누가 남의 옷을 빌려 입겠느냐"고 만류했지만 김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화를 추진했다.

결과는 적중했다. 2012년 49명으로 시작한 대여자 수는 매년 급격히 늘어 지난해 2만6000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70여 명이 찾은 셈이다. 배고픈 취준생들에게 '착한 기업'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정장 기부자들도 덩달아 늘었다. 대여료 수입을 전액 대학생과 소외 청소년 지원 등에 쓰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라는 점도 대여자와 기부자 모두의 신뢰감을 키웠다. 전에 없던 새로운 공유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녀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말한다. 정성이 담긴 음식이 사람을 위로하듯, '열린옷장'에 걸린 감동의 옷으로 보다 많은 청년을 응원하겠다는 포부다.

―정장을 대여해주는 아이디어가 생소하고 특이하다. 어떻게 사업을 준비하게 된 것인가.

▷광고업계 일을 하면서 2011년 희망제작소의 '소셜디자이너스쿨'에 참여하게 됐다. 조별 작품으로 옷을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낸 게 일이 커졌다. 당시 취업이 너무 어려워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큰 건 못해 줘도 정장을 빌려줘 면접 비용을 줄여주는 방안을 생각했다. 2013년 비영리단체로 시작해 2015년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조별 작품을 낼 때까지만 해도 (이 일로) 회사를 그만둘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비영리기업으로 정장을 대여해주는 모델은 한국이 처음일 것 같다. '열린옷장'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도 궁금하다.

▷세계에서 우리가 처음인 것 같다. 미국의 경우 흑인 여성 취업을 돕는 단체에 비슷한 형태가 있지만 정장 위주로 공유를 하는 업체는 우리밖에 없다. 열린옷장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프랑스에서는 '연대를 위한 넥타이'라는 단체가 생겼다. 사명은 창업 멤버들이 함께 만들었다. 우리가 공유하는 옷장이 늘 열려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작명이 됐다.

김소령 열린옷장 대표가 서울 광진구 사무실에서 꼼꼼하게 세부 사이즈가 적혀 있는 정장들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충우 기자]
―2012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분위기는.

▷(웃으며) 한 주를 통틀어 단 한 분만 온 적도 있었다. 그해 49명이 대여를 했는데 이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대여자들의 격려다. 면접 정장을 대여했던 한 취준생이 LG그룹 계열사에 합격했다며 감사 문자를 보내더라. 빌린 옷을 입고 당당하게 면접을 보고 합격에 이르는 과정을 상상하면서 전율을 느꼈다. 그분의 인생에 내가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기분도 들었다. 남들은 정장 대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직접 와서 보면 다르다. 대여하러 올 때는 기가 죽어 오지만 정장을 입으면 당당하게 어깨가 펴진다. 얼굴에는 자신감이 서린다. 이분들이 합격을 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서 방문하는 걸 계속 보게 되면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공유경제에 친숙한 젊은 세대라서 그런지 남의 옷을 빌려 입는 데 대한 선입견도 적은 것 같다.

▷사업을 시작할 때 컨설팅 전문가들은 "남의 옷을 입고 절대 중요한 자리에 가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을 했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확실히 세대가 다른 것 같다. 공유라는 문화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경제성도 체득하고 있는 것 같다. '잠깐 입을 옷인데 큰돈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운이 좋았다. 공유경제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시점에 사업을 시작해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 것 같다.

―상업화한 의류 대여업체들은 보증금과 대여료를 함께 받는데 이곳은 어떤가.

▷영리기업은 분실에 대한 부담 때문에 보증금을 받지만 우리는 초반부터 보증금을 고민하지 않았다. 오로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당장 10만원도 구하기 어려운 분들한테 분실과 반납 실패를 걱정해 보증금을 받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3박4일 동안 정장 한 벌을 빌리는 데 대여료 2만원만 내면 된다. 한 벌의 정장을 관리·보관하고 분실에 따른 손실 등을 계산하면 답이 안 나오는 숫자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대여하는 정장은 모두 기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기부가 많이 이뤄지나.

▷일반 시민과 기업의 참여로 남성 정장 1500벌, 여성 정장 1000벌 등 2500벌을 갖췄다. 2012년 사업을 시작할 때 언론에 소개되면서 참여가 잇따랐다. 코미디언 김준현, 양상구 님도 기증을 했다. 기업에서는 '더셔츠 스튜디오'가 매년 셔츠를 기증해주신다. 신기하게도 셔츠가 부족할 때가 되면 어떻게 아시는지 수백 장씩 기증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업체를 '산타클로스'라고 부른다. 부림광덕주식회사라는 곳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이곳 대표께서 미국에서 주로 사업을 하시는데 한국 청년들을 위해 시즌마다 정장을 지원해주신다.

―기증받은 옷을 보면 기증자의 인생이 보일 것 같다. 각별한 기억이 남는 개인 기증자가 있다면.

▷이민우 기증자가 각별하다. 원래 인천국제공항 VIP라운지를 관리하는 분이었는데 스노보드를 타다가 다쳐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자신이 양복을 입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며 20벌을 기증해주셨다. 처음에는 양복 20벌을 한꺼번에 받아서 신이 났는데 보낸 사연을 읽으면서 울컥했다. 사고가 나서 삶을 포기할 수도 있지만 우리 기증자분들은 나눔으로 고통을 이겨낸다. 소매 등이 많이 닳은 정장이 온 적도 있었다. 옷을 보낸 부인께서 "퇴직한 남편이 입던 양복인데 내 남편이 자랑할 것은 없어도 성실함만은 최고다. 이 성실함을 대여자가 전달받았으면 좋겠다"며 보내셨더라. 열린옷장을 채우는 2500벌의 정장은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여자들이 어떻게 이런 사연과 응원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인가.

▷대여 절차가 끝나고 응원 차원에서 기증자 사연을 문자로 보내드린다. 어떤 대여자는 면접을 보러 걸어가다 뒤늦게 문자를 열어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세상에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기증자분들에게는 이런 대여자 사연 1년치를 책자 형태로 보내드린다(열린옷장 홈페이지에는 기증자 사연 2540여 개, 대여자 사연 1만3960개가 빼곡히 올라 있다).

―청년층뿐 아니라 장년층에서도 정장을 대여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최고령 대여자 기록이 92세다. 열린옷장이 주로 청년 구직자가 이용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청년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분들은 모두 청년이다. 실제 퇴직 후 재취업 면접 때문에 오는 분이 많다.

―장년층 대여자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60대 아버님이 딸 결혼식이 토요일이라며 금요일 오후에 오셨다. 어쩌다 준비를 못 하셨냐고 물으니 스물한 살 된 딸아이가 갑자기 결혼을 결정해 본인도 옷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시더라. 사연을 듣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코디를 해드렸다. 며칠 뒤 반납하러 와서 "가족이 없어 외로운 결혼식이었는데 가족처럼 챙겨줘 고맙다"고 하셨다. 방산시장 근처에서 도배일을 한다며 "도배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가 달려가서 도와주겠다"고 하시더라.

―수익금은 전액 사회에 환원되는 구조이던데.

▷수익금 전액은 열린옷장의 지속가능한 운영과 서비스 개선, 도움이 필요한 이웃 등에게 쓰인다. 식권을 지원하는 대학생 단체에 매달 100만원씩 기부한다.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을 비롯해 국립재활원의 리마인드 웨딩에 웨딩정장과 부케 등을 후원한다. 취준생들을 위해 '열린사진관' 사업도 함께하고 있다. 취업용 사진을 찍으려면 남성들은 3만~5만원, 여성들은 10만원 안팎의 돈이 들더라. 홍대 '바라봄사진관'과 손잡고 5000원에 프로필 사진을 제공한다. 매주 목요일에 '열린사진관'을 운영하는데 열린옷장 못지않게 호응이 뜨겁다.

김소령 열린옷장 대표가 사무실 내 대여실에서 고객을 기다리고 있는 정장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열린옷장이 시민과 기업 기부자에게 기증받은 정장은 남성복 1500벌, 여성복 1000벌 등 2500벌에 이른다. 열린옷장은 옷 기증 스토리와 응원 메시지를 대여자에게 문자로 보내 격려한다. [이충우 기자]
―방대한 의류 관리를 어떻게 하나. 급하면 세탁, 다림질, 바느질 등을 직원들이 직접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세탁은 하남시에 있는 '인수네세탁소' 배동석 사장이 재능기부 형태로 도와주셨다. 언론 기사를 보고 부인이 "우리가 큰 도움은 못 줘도 세탁 하나는 도와주고 싶다"고 해서 지금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 열린옷장 사무실에 다림질 기계 등을 설치할 때도 배 사장이 와서 도와주셨다. 셔츠 오염 제거 등 어려운 작업이 있으면 우리가 솔로 직접 작업을 하고 세탁, 다림질까지 한다. 셔츠는 기계로 세탁하면 우리가 기대한 만큼 깨끗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손목이 병뚜껑도 못 딸 정도로 늘 시큰거린다. 다림질을 많이 해서 그런 건데(웃음). 그래도 초반에 5분 넘게 걸리던 셔츠 다림질을 지금은 1분 만에 처리할 수 있다.

―다림질은 '생활의 달인'으로 불러도 되겠다.

▷내가 꿈꾸는 게 '생활의 달인'이다. 모든 면에서 달인이 되고 싶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모든 직무에서 달인이 돼달라"고 강조한다. 정장을 기증 받고 공유하는 모든 일이 그렇다. 대여자에게 잘 맞는 옷을 추천하고 반납된 옷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일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즐거움을 느끼려면 발전해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 열린옷장 같은 곳이 새로 생기면 언제든지 한 직원이 그곳에서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할 정도의 능력을 가졌으면 한다.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일을 하면 재미가 없지 않나.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고된 업무에 사실상 '열정페이'로 일할 것 같은데.

▷정말 최고의 급여를 받아야 마땅한 분들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주중에 일하는 '옷장지기'가 12명인데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급여도 적고 초반에는 그야말로 '열정페이'였다. 하지만 하나의 전문직업으로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역할이고, 최고의 실력가들이다. 최근에도 두 명을 채용했는데 25장의 이력서가 들어오더라. 처음 도전해서 떨어지고 재도전해 채용된 분도 있다. 이 일에 도전하는 분들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일에 대한 몰입과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가 뚜렷한 분들이다.

―카피라이터 경험을 살려 열린옷장의 옷들을 표현한다면.

▷'누구나 멋질 권리가 있다'가 열린옷장의 캐치프레이즈다. 옷은 나를 '나답게' 표현하는 가장 쉽고 중요한 수단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전성기'라는 게 있다. 그 전성기를 떠올리는 매개체 중 하나가 옷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세대는 성공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내일을 사는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데 요즘 청년 세대는 그런 기억과 전성기를 갖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그래서 정장을 차려입고 면접을 보는 한순간만이라도 그분들에게 인생의 멋진 한 페이지를 선사하고 싶다. 기증한 분들은 자신이 성공했을 때 입었던 기억을 후배 세대에게 전하니 열린옷장의 옷을 입는 건 사회적 응원을 입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나가던 광고 업계 커리어우먼에서 비영리단체 사업가로 진로를 바꿨을 때 부모님 걱정이 컸을 것 같다.

▷항상 나를 믿어주시는 스타일이라 괜찮다. 다행히 사업 초반에 언론에 노출되다 보니 부모님은 "내 딸이 잘나가나 보네"라고 생각하시더라(웃음). 물론 당시 내 수입이 아예 없었던 사실을 전혀 모르셨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했을 당시 대표적 작품은 무엇인가.

▷아웃도어 브랜드의 경우 업계에서는 늘 산악인을 모델로 썼다.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맡으면서 파격적으로 공효진 씨를 모델로 썼다. 아웃도어 제품을 일상생활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명한 카피를 많이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내 장점은 맡은 브랜드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마치 해당 브랜드의 대표이사가 된 것처럼 몰입한다. 한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를 맡았을 때는 있는 대로 그 회사 제품을 써봤다. 평소에 화장을 안 하던 피부가 다 뒤집힐 정도로 고생했지만 즐거운 기억이다.

―광고 업계에서 맺은 인연이 기부로 연결된 사례도 있나.

▷배상면주가가 그런 케이스다. 술을 못 마시는데 배상면주가를 맡으면서 술집을 돌아다니며 많은 술을 먹었다. 몰입해서 일을 하고 좋은 인상이 남았는지 이 업체에서 열린옷장에 많은 옷을 기증해주셨다. LG전자는 아무 인연이 없는데 B2B 영업 담당자의 관심으로 큰 선물을 받았다. 정장 관리를 위해 2년 전 트롬 스타일러 3대를 구매했다. 그런데 나중에 영업 담당자가 이곳을 찾았다. 인터넷 쇼핑몰 업체 정도로 생각했는데 사업 취지를 듣고 놀라시더라. 며칠 뒤 전화로 "내일 스타일러 7대가 갈 것"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회사에 보고하고 무상기증을 하게 된 것이다. 3대에 의존해 밤새 정장을 돌리다 10대로 늘어나니 직원들의 야근 부담이 크게 낮아졌다.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에도 공헌활동을 하던데 어떤 식으로 응원하는지 궁금하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이분들이 말끔한 정장을 입고 '인생음식'을 먹는다는 개념이다. 하루만큼은 멋지게 옷을 입고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먹으며 재활 의지를 북돋는 것이다. 노숙인이 되기 전 사업했던 분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거울을 볼 때 표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다. 여기에 사진을 찍어 액자를 함께 드린다. 잊고 있었던 기억을 살려 내면의 자신감을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옷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인 것 같다.

―앞으로 다른 공유경제 사업모델을 준비할 것인지 궁금하다.

▷정장공유 하나만으로도 잘 못하는 게 많다. 좀 더 가야 할 단계도 있다. 우리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단지 옷을 공유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청년 세대가 제대로 응원받고 있는지에 대해 열린옷장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특히 우리의 큰 자산은 7만5000명의 사이즈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여자의 키와 체중 등을 입력하면 최적의 사이즈를 파악할 수 있다. 정장만 2500벌에 이르는데 이 중에서 가장 적합한 옷을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영리업체와 비교했을 때 훨씬 나은 서비스가 돼야 한다. 남이 입던 옷이라는 것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이곳에 왔다가 너무 좋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만큼 더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

―10년 후 김 대표의 모습은 어떨 것 같나.

▷내 나쁜 면 중 하나가 미래를 기획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를 열심히 살면 항상 미래에 살고 싶은 내 모습과 가깝게 가는 것 같다. 10년 후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생각을 해보면 정말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해서(웃음).

―3월부터 상반기 공채 시장이 열린다. 더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열린옷장을 찾을 것 같은데 후배 세대에게 조언한다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관점'을 한 번 바꿔보면 어떨지 싶다. 훨씬 다양한 선택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대기업·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분들이다. 그런데 내 인생을 돌아봐도 결국 일이라는 것은 내 인생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인지와 닿아 있다. 또 하나 걱정되는 게 요즘 친구들은 행복하려고 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 행복이 아닌 생존에 초점을 맞추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이 있지만 인생은 한 번 사는 거다. 이 역시 관점을 달리해서 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뛰는 세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렇게 빌리세요
대여는 열린옷장 사이트에서 사전 예약을 하고 매장을 찾으면 된다. 현장에서 대여자의 몸에 맞는 옷을 코디해준다.

김소령 대표는…

1970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 예일여고·한림대(중국학과)를 졸업했다. 여러 광고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했다. 인지도가 쌓이자 프리랜서가 돼 삼성전자 등 이름 있는 기업 고객을 상대했다. 모아놓은 돈으로 '열린옷장' 사업을 시작했다. 대여서비스 개시 첫해인 2012년 49명이었던 대여자가 지난해 2만6000명으로 급증했다. 아직 미혼인 김 대표는 지금도 직접 다리미를 들고 기증받은 와이셔츠와 블라우스를 다린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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