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기자의 영화 속 로봇⑥] 거대로봇에 기댄 오락영화.. '퍼시픽 림'
※주의: 이 기사에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퍼시픽 림: 업라이징’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흙장난하다가도 저녁 시간만 되면 쪼르르 집으로 달려 들어가곤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TV에서 하는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제목은 그 이름도 유명한 ‘마징가Z’. 당시 방영할 시간이 되면 동네 골목길에서 놀던 꼬마들이 자취를 감출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마징가Z의 첫 방송은 1972년. 국내에는 1975년 처음 방영이 시작됐다고 기록돼 있지만 이후 상당히 여러 차례 재방영됐던 것으로 기억난다.
마징가 Z처럼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로봇 만화영화 중, 비교적 근래에 등장해 큰 인기를 얻은 캐릭터로는 20세기 후반 처음 소개됐던 ‘에반게리온’이 있다. 에반게리온은 1995년 첫 회가 연재된 이후, 극장판 등이 수차례 연이어 제작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강력하고 거대한 괴생명체 ‘사도’를 막기 위해 주인공이 거대한 유기로봇 ‘에바’를 타고 적과 싸운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세기말적 스토리와 선악을 무시한 설정으로 상당한 논란 역시 함께 낳았던 문제작이기도 하다.
뜬금없이 일본 만화영화의 계보를 되짚고 있는 까닭은, 일본 만화 속 거대로봇 문화는 미국의 거대로봇 영화 ‘퍼시픽 림’ 이야기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퍼시픽 림이 (설령 제작진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에반게리온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사실 만큼은 누가 보아도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설정은 기대하지 말자

퍼시픽 림은 2013년 첫 작품이 개봉됐는데, 2018년 3월, 그 후속편인 ‘퍼시픽 림: 업라이징’이 새롭게 개봉됐다. 25일 현재 극장 예매율 1위를 달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로봇을 타고 괴수와 싸운다’는 기본 설정은 그대로지만 많은 부분에서 1편보다 줄거리를 다채롭게 보이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퍼시픽 림에는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괴생명체 사도에 비견할 수 있는 ‘카이주’라는 정체불명의 괴수가 등장한다. 카이주는 마치 사도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돌연히 출연해 파괴행위를 벌인다. 주인공들은 ‘예거’라 불리는 거대로봇을 타고 카이주와 싸우며 지구를 지킨다는 점 등, 두 작품의 설정은 사실 거의 빼다 박았다.
더구나 사도, 혹은 카이주가 지구를 공격하는 이유조차 사실상 같다는 사실이 이번 퍼시픽 림: 업라이징을 통해 밝혀졌다. 에반게리온을 보면 지구를 공격하는 거대 괴생명체 ‘사도’가 도대체 어디서, 왜 지구를 공격하러 오는지 딱 부러지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야기의 뒤편으로 가면서 어느 정도는 해설이 나오는데, 사실 현학적인 설명만이 이어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억지로 말을 정리해 보자면, ‘태초에 다른 행성으로 가야 했던 인류의 또 다른 종(사도)이 실수로 지구에 떨어지게 되었고, 가사 상태에 빠져 있던 이들이 하나씩 깨어나 지구 환경을 새롭게 고치고 자신과 같은 종족들이 살기 좋은 상태로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하려 드는 것’ 정도로 여겨진다. 카이주 역시 테라포밍 (환경개조)라는 목적이다. 카이주의 피를 희토류 광물이 가득한 활화산, 즉 후지산에 흘려 넣어 대폭발을 일으키며 지구 환경에 큰 변화를 노린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다.
에반게리온을 보면 로봇 ‘에바’에 주인공의 정신과 접속시켜 조종하는 ‘싱크로’라는 과정이 나오고, 퍼시픽 림에서도 이를 그대로 채용한 ‘드리프트’라는 과정이 나온다. 정신을 예거와 연결해 직접 로봇 조종하는 과정인데, 이 방식은 연출상 다소 차이가 있다. 에반게리온에선 싱크로 된 상태에서 조종간을 움직여 에바를 제어하는데 비해, 퍼시픽 림에선 정밀하게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장비 속에 들어가 로봇을 조종한다. 파일럿은 정신이 예거와 연결된 상태에서 실제로 주먹을 휘두르며 홀로그램(입체영상)으로 표시된 적과 싸우는 것 정도가 차이라고 할까. 그리고 사람이 가진 신경계의 한계(?)가 있다며 복수의 조종사가 함께 예거를 조종하는 것도 차이점이다. 소형 예거의 경우 단독 조종도 가능하지만 예거의 크기가 커질수록 두 명, 혹은 세 명의 파일럿이 서로의 정신을 하나로 연결해 조종하는 다소 묘한 설정도 눈길을 끈다. 이 과정에서 파일럿 끼리 정신교감이 일어나는 것도 퍼시픽 림만의 볼거리다.

에반게리온과 그 실사영화로 꼽히는 퍼시픽 림. 두 작품 모두 거대로봇과 각종 첨단 장비가 자주 등장하니 짐짓 과학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설정단계부터 제대로 과학적인 고증을 거친 것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카이주의 경우 지구로 들어오는 통로를 별도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브리치’라고 부르는 차원 이동 통로로, 주로 지구의 바다 깊숙한 곳에 생긴다. 외계종족은 지구인 박사 한 명을 정신 조종해 자동형 예거 ‘드론’의 제어권을 탈취하고, 이를 통해 몇 개나 되는 브리치를 동시에 열고 몇 마리의 카이주를 지구에 잠입시키는데 성공하는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애초에 ‘차원의 문’이라는 개념은 영화나 만화 속 소재일 뿐, 현실 세계에선 이론적으로라도 상정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차원이란 개념은 아인슈타인이 현실 세계 (3차원 입체 공간)가 시간의 영향을 받으면서 4차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 내어놓으면서 알려진 것이다. 그 이상인 5차원이나 6차원 세계는 물리적으로 규명된 바도 없고, 그 같은 개념이 설혹 존재한다고 해도 외계 생명체의 등장과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인다.
퍼시픽 림은 철저하게 공상의 스토리를 로봇과 함께 그럴듯하게 버무려 영상물로 만들어낸 오락영화다. 로봇과 관련된 작가의 주관과 철학을 심오하게 고민했던 다양한 로봇 영화들과는 접근 방식부터 큰 차이가 있다는 점만큼은 이해하고 영화를 보는 편이 좋다.
●빌딩만한 거대로봇, 만들 수 있을까

사람이 탈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탑승형 로봇’을 만드는 일은 현실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크기의 두발 로봇은 키 4m 정도. 국내 로봇기업 ‘한국미래기술’이라는 회사가 개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퍼시픽 림처럼 빌딩만한 크기의 거대로봇은 커녕, 하다못해 키 십수 미터만 넘는 대형 두 발 로봇을 만드는 일도 현실에서는 현대 공학기술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그만한 로봇을 제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발목이나 관절 부분에 걸리는 부하를 견딜만한 구동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실용성 면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 전쟁상황이 되면 표적이 커질 뿐, 불안정하고 동작도 굼뜬 초대형 로봇은 활용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거대로봇’을 꿈꿔왔다. 거대로봇 캐릭터의 원조 격으로 1950년대 등장한 ‘철인 28호’를 꼽는 경우가 많다. 이 로봇은 인간이 직접 탑승하지 않고 무선조종으로 움직인다. 마징가Z는 ‘탑승형 거대로봇의 원조 격으로 꼽힌다. 일본 작가 ‘나가이 고’가 처음 만들어냈다. 인간이 집채보다 큰 로봇을 인간이 직접 조종해 악당들과 싸운다는 ‘탑승형 거대로봇’ 캐릭터를 처음 고안한 것이 나가이 고로 알려져 있다. 마징가 Z와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한 로봇만화 ‘이스트로 강가 (한국명 짱가)에 등장하는 로봇은 자의식이 있는 거대한 외계생명체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마징가Z의 등장 이후 이런 탑승형 거대로봇 시리즈가 연이어 제작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랜다이저’는 1975년, 메칸더V는 1977년, 거대로봇 시리즈의 대명사가 된 ‘건담’ 시리즈는 1979년 처음 등장했고, 지금도 후속편이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거대로봇에 대한 남자들의 로망은 유치원생부터 중년까지 시대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촬영상의 문제인지 영화에서는 거대로봇을 많이 찾아보기 어렵다. 퍼시픽 림이나 트랜스포머 정도다. 다행히(?) 두 작품 모두 일단 개봉하면 여러 가지 악평에 시달리면서도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유치하다고 욕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만큼 지갑을 여는 사람 역시 많다는 이야기다.
2013년 퍼시픽 림 1편이 개봉되면서 ‘거대로봇의 동작을 참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로봇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진동, 다소 굼뜬 듯하면서도 미려하게 움직이는 동작이 로봇보다는 두 발로 걷는 거대한 중장비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이런 점이 도리어 현실감을 크게 높여 적잖은 볼거리가 됐다. 최근 개봉한 2편에선 이런 느낌이 크게 줄고, 날렵하고 운동성 좋게 움직이는 모습을 더욱 강조했다. 화려한 맛은 커졌지만, 거대로봇 특유의 육중한 느낌이 사라져 아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어린시절 마징가Z를 보기 위해 TV 앞으로 몰려들었던 수많은 아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거대로봇에는 남자만의 특별한 감성이 숨어 있다. 이제는 거대로봇을 주제로 한, 작품성까지 겸비한 영화가 더 많이, 더 자주 개봉하길 기대해 본다. 비록 쓸모없어도 좋다. 영화 속에서 호쾌하고 육중한 동작으로 힘과 정의를 지키는 거대로봇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니 말이다.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 편집자주.
영화와 과학기술은 서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영화 속 미래기술이 현실의 과학기술자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과학자들의 첨단 연구결과가 새로운 영화 탄생에 모티브가 되기도 하지요. 영화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는 일은 과학의 발전에도 분명 큰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이런 의미에서 가까운 미래에 가장 큰 조명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로봇기술에 대해 고정 코너를 통해 연재합니다. 수많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이 과학기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점은 비현실적인 그저 공상(空想)의 설정인지를 짚어주는 ‘영화 속 로봇 이야기’를 월 2회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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