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올림픽 무대는 수천명의 패션쇼 실루엣·컬러로 승부"
올림픽 개·폐회식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총출동한다. 단지 대회 시작과 끝을 알리는 행사가 아니라 개최국의 전통과 문화적 저력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중 의상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폐회식에선 의상 감독 4명이 이 역할을 맡았다. 진태옥(84)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한국에서 열린 두 번의 올림픽을 모두 거친 디자이너로 기록됐다. 이영희(82)는 한복을 세계에 알린 대표적 한복 디자이너로서 전통 의상을 담당했다. 홍익대 금기숙(66) 교수는 브랜드를 운영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에선 가장 대중적인 디자이너다. 현행 경찰복, 법복(공동 작업)을 비롯해 다양한 유니폼을 디자인했고 평창에서도 태극기 기수, 선수단 입장 행렬 선두의 피켓 요원 등이 공식 행사에서 입는 옷을 만들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현대 의상을 책임진 여성복 디자이너 송자인(46)이었다. 2004년 데뷔해 작년까지 매 시즌 빠지지 않고 컬렉션을 열면서 세련되면서도 전위적이지 않은 디자인으로 호평받았다. 개회식을 연출한 양정웅 감독은 "후보로 검토한 여러 디자이너의 컬렉션 중에서 (송자인의) 단아하고 격조 있는 디자인이 돋보였다"고 했다.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책임감을 들며 적극 추천한 선배 디자이너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 서울 한남동 매장에서 만난 송자인은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할 줄 모르고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어마어마하기에.
"개·폐회식은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공연이다. 출연자가 수천 명이고 한 장면에 여러 팀이 복합적으로 나온다. 하다못해 옷 컬러 하나를 정해도 그 장면에 등장하는 다른 팀 의상과 어울리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걸 다 회의를 해서 정한다. 공연 내용도 계속 달라졌다. 작년 추석이 지나서야 최종 결정된 장면도 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이 회의를 했다."
―패션쇼와는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무대 의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패션쇼를 열 번쯤 하는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규모도 그렇지만 무대 의상은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신경 써야 했다."
―무대 의상이 어떤 점에서 다른가.
"창피해서 평소에는 입고 다닐 수가 없다는 점(웃음)? 공연 의상은 심플해야 한다. 디자이너이다 보니 자꾸 디테일에 집착하게 된다. 무대에선 그보다는 실루엣이나 컬러로 큼직큼직한 선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더라. 날씨도 변수였다. 준비하는 동안 춥단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출연자들은 계속 몸을 움직이니 괜찮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 추위와 완전 다르다고 하더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옷 하나하나 솜을 누벼 넣거나 패딩으로 만들어야 했다."
―공연 의상 경험이 없는데도 올림픽이라는 대형 행사를 맡았다.
"올림픽은 크리에이터로서 욕심 나는 무대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폐회식을 보며 콘텐츠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제안을 받았다."
―국가적인 행사를 덜컥 맡기가 부담되진 않았나.
"내가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동안 한국에서 올림픽이 또 열릴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양정웅 감독님 쪽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땐 무슨 일로 만나자는 것인지도 얘길 안 해줬다. 보안 유지 각서에 사인부터 해야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유니폼 디자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미팅에 나갔는데 공연 현대 의상을 맡아달라고 했다."
평창 개회식에서 '인면조'와 함께 나왔던 무용총 벽화 여인들, 문(門) 모양 구조물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한국의 IT 기술을 군무로 표현했던 '미디어 퍼포머'들, 성화가 점화된 뒤 불춤을 추던 도깨비들이 송자인의 의상을 입었다. 폐회식에 등장한 색색의 '꼭두'와 겨울 평창의 기억을 전 세계인에게 선물했던 다섯 어린이의 의상도 송자인의 작품이다.
―무용총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이 독특했다.
"한복처럼 보였다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한복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한복을 고증하려고 하진 않았다. 이집트 벽화처럼 고구려 무용총도 특유의 평면적인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치맛단을 사선으로 디자인하고 어느 방향에서도 삼각형으로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 인면조가 너무 강렬해서 다 묻혀버렸다(웃음)."
―아닌 게 아니라 한복이나 피켓 요원들이 입었던 '눈꽃 요정' 의상에 비해 송자인의 현대 의상은 덜 부각됐다는 반응도 있다.
"'의상은 거들 뿐'이다. 내 의상이 돋보이는 것보다 공연의 주제가 제대로 표현되는 게 중요하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컬렉션에서 하면 된다."
―폐회식에는 꼭두가 등장했다. 원래는 상여에 붙는 나무 인형인데. (꼭두는 '기억의 여정' 장면에 등장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시작된 무대로, 올림픽에 함께하지 못한 이들을 추모하는 순서다.)
"죽음을 강조한다기보다는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의미를 담았다. 꼭두의 의상도 위트를 표현하고 싶었다. 컬러가 아주 화려하다. 나무로 된 꼭두 인형의 빛바랜 색깔을 그대로 따서 쓰기도 했다. 아코디언 주름을 넣어서 실루엣도 부풀렸다."
송자인은 모녀(母女)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김동순 울티모'의 김동순 디자이너가 어머니다. 어머니는 이화여대 조소과 선배이기도 하다.
―대학에서는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
"사실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각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근데 그러려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걸 대학 졸업할 때쯤 깨달았다."
―그때 진로를 디자인으로 바꿨나.
"막막했던 시기에 엄마의 권유로 디자인 유학을 떠났다. 디자이너가 된 데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이 엄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나만 몰랐지 주변에서는 다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더라. 보고 자란 게 그거여서였는지 어릴 때부터 옷과 멋 내기를 좋아했으니까."
―어머니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탄탄한 발판을 딛고 시작한 것 아닌가.
"아무도 날 모르는 신인 시절에 '누구의 딸'이라는 건 가장 빠르고 자연스럽고 확실한 정체성이었다. 그게 신경 쓰였다. 회사에서도 엄마가 조금이라도 엄마 티를 내면 질색을 했다. 도망갈 생각도 많이 했었다. 내 컬렉션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디자인에 마음을 붙일 수 있었다."
송자인은 2004년 4월 SFAA(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 컬렉션으로 데뷔해 작년 10월 2018 봄·여름 시즌 서울패션위크까지 빠지지 않고 컬렉션을 열었다. 다음 달 열리는 서울패션위크는 처음으로 '결석'하기로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도저히 병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4월쯤 다시 단독 컬렉션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 준비하는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평창에 갔다. 매번 직접 운전하고 다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 끝났다는 실감이 이제 조금씩 든다."
■송자인 1972 서울 출생
1996 이화여대 조소과 졸업
1998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 졸업
2004 SFAA 컬렉션 시작, 브랜드 ‘제인 바이 제인송’ 런칭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의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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