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케트와 비행기의 시대에 느끼는 열차게임의 매력

이경혁 2018. 4. 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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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80] KTX, 고속철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한국의 특급 열차는 새마을호였다. 새마을이라는 이름도 낡은 시대의 무언가로 접어드는 것과 함께 새마을호는 4월 말부로 퇴역의 길로 접어든다. 마지막 열차의 예매가 이미 끝날 정도로 한 열차의 퇴역은 누군가에겐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의 무언가로 남는다.

때로는 신시대의 선진문물로, 때로는 오랜 추억과 향수의 소재로. 열차는 근대적 삶을 만들어 낸 가장 거대한 변화라는 사회적, 경제적 의미와 함께 개인에게 여행과 추억이라는 의미로도 남는 독특한 존재다. 이러한 다면적인 열차의 이야기는 여러 게임에서도 각각의 의미로 드러나곤 한다.

◆철도와 열차 자체를 다룬 게임들

철로만 깔려 있다면 엄청난 가성비로 막대한 수송량을 빠르게 소화해 내는 철도 시스템의 묘미를 다루는 경영 시뮬레이션게임들은 철도와 게임을 이야기할 때 아무래도 가장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레일로드 타이쿤' 'A열차로 가자' 등을 대표작으로 하는 이들 게임은 철도가 없는 땅에 새롭게 철도와 역을 건설하고, 화물과 사람을 수송해 수익을 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철도경영 자체를 게임의 중심에 놓는다.

단순히 역을 세우고 역과 역 사이에 열차를 배치하는 단순한 구조는 실제 철도가 역사 속에서 걸어온 길처럼 점점 복잡한 체계로 거듭난다. 급행과 완행의 구분, 방대한 수송량 구간을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인 배차, 적정운임의 산정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추가 노선을 건설하거나 개선된 차량을 도입하는 등 철도의 운영이라는 측면을 게임은 재미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실제 시뮬레이션이 아닌 게임으로서의 접근이기에 복잡하고 골 아픈 요소들도 대체로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돼 철도나 건설에 흥미를 가진 이들이라면 적지 않은 시간을 쓰게 만드는 게임들이다.

철도건설 시뮬레이션게임 `시드마이어의 레일로드!` 는 철로를 깔고 역과 역 사이를 잇는 전통적 철도 경영 시뮬레이션이다.

철도 자체를 게임으로 다루는 경우는 비단 건설과 운영에만 그치지 않는다. '트레인 시뮬레이터'나 '전차로 GO'와 같은 게임들은 철도 조종사의 시점에서 실제 철도를 운전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다룬다. 깔려 있는 철도를 달리는 게 무슨 조종의 의미인가 싶겠지만, 실제 조종간을 잡아보면 의외로 철도 운전은 일반상식 이상의 주의를 요한다.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철도 운행 매뉴얼 안에서 최대한 기준에 맞춘 운행을 수행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대체로 외국의 철도들이 외산 게임에 의해 다뤄지지만, 모바일로 출시된 'HMMSIM' 시리즈는 한국의 지하철 운행을 경험해볼 수 있어 꽤나 흥미를 끄는 편이다. 운행 중 들려오는 다음 역 안내문구는 마치 실제 지하철을 타고 있는 듯한 경험도 제공한다.

◆산업과 제도로서의 철도를 다루는 게임들

철도가 메인 주제는 아닐지라도 철도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게임들도 적지 않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그 게임, '문명'에서 철도의 의미는 남다르게 드러나는데, 시리즈마다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실제 사회적 의미로서의 철도가 갖는 위치는 게임의 전후반부를 바꿀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고전적인 기술 개발이 마무리되고 테크트리가 근대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철도는 대체로 과학적 방법론, 증기기관, 물리학 등의 선행 트리를 거친 뒤 선택할 수 있다. 철도 연구가 완료되면 플레이어는 영토 안에 설치돼 있던 도로들을 철도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데, 철도가 완공되면 철도로 연결된 도시들의 생산성이 한 번 더 향상됨과 동시에 철도를 따라 이동하는 유닛들의 이동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여러 곳에 고정배치되던 군사 유닛들은 철도의 등장과 함께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높은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공격·방어의 선택권을 넓히게 된다.

미국 남북전쟁을 다루는 고전게임 '노스 앤 사우스' 는 아예 게임 안에서의 생산력을 온전히 철도로만 표현한다. 총 5개의 역 중 이어지는 2개를 보유하면 철도가 운행을 시작하고, 운행이 완료될 때 군사 유닛을 만들 수 있는 금이 확보되는 식이다. 실제 역사에서 남북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데 철도가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일종의 고증으로도 작용하는 부분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게임들에 등장하는 철도는 대체로 철도가 갖는 사회적, 기술적 의미들의 재현을 게임 안에서 구현하는 편이다. 더욱 빨라진 세계, 그로 인해 가속하는 산업과 경제의 모습들이 게임 속에 드러나며, 특히 게임 안에서 나름의 규칙에 의해 동작하는 철도의 움직이는 모습이 다뤄지기 때문에 다른 매체에 비해 철도의 의미는 그 본래적인 작동방식의 측면을 좀 더 수월하게 드러내곤 한다.

◆여행과 추억의 의미로 남는 게임 속 철도

거시적 조망 바깥에서 철도가 등장하는 게임들은 좀 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의미를 담아낸다. 이동수단으로서의 철도가 갖는 의미는 개별 플레이어들에게 좀 더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동수단으로 등장하는 철도들은 일상을 벗어나는 시작점이라는 의미에서 모험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자주 출현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판타지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지만, 곳곳에 스팀펑크와 같은 요소들이 섞여 있다. 세계를 양분하는 두 진영인 호드와 얼라이언스는 각각 장거리 이동수단으로 비행선과 지하철을 가지고 있는데, 얼라이언스의 경우 두 개의 주요 수도인 스톰윈드와 아이언포지를 잇는 '깊은굴 지하철'이라는 이름의 지하 철도를 가지고 있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긴 로딩과 플레이어의 지루함을 줄이기 위한 설계이겠지만, 깊은굴 지하철은 실제 지하 플랫폼에서 열차를 탑승하고 내려야만 이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다.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로딩화면 등으로 생략되는데, 이는 게임 안에서 이동의 과정보다는 출발과 도착이라는 철도의 목적론적 용도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탑승 후의 이동과정 자체는 생략돼 있다는 것은 완전히 이를 배제했다기보다는 당장의 모험에서 열차 이동의 과정은 후순위라는 의미일 것이다. 추후 패치 등을 통해 지하철 안의 던전 이야기 등이 업데이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과 끝으로서 철도는 게임에 자주 등장한다. 최근 출시된 모바일 MMORPG '야생의 땅 듀랑고' 는 게임의 인트로와 튜토리얼을 기차 안에서 펼친다. 고속철도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알 수 없는 사고로 인해 이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과정은 열차 안이라는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여행자로서의 플레이어를 좀 더 뚜렷하게 각인하는 효과를 갖는다.

`야생의 땅 듀랑고` 에서는 기차 안을 튜토리얼과 인트로의 장소로 활용한다.

고전 어드벤처게임 '사이베리아' 는 아날로그 기계장치들을 중심으로 한 스팀펑크 느낌의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다루는데, 각 챕터의 시작과 끝에는 기차 여행이 등장하곤 한다. 탑승권을 구해 열차에 타고, 이동 후 도착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모험의 구조 안에서 열차는 각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자리한다. 한 챕터가 끝나고 기차 좌석에 앉는 순간의 안도감은 마치 실제 열차 좌석에 앉아 다음 장소까지를 기다리는 여행자의 느낌을 살려내는 듯하다.

희뿌연 증기와 육중한 기계덩어리의 이미지로 시작된 근대 철도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면서 세계를 뒤덮는 광대한 철도망으로, 또 보다 날렵하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함께 고속으로 장거리를 주파하는 이미지로 변화해 왔다. 거대 산업의 대표 이미지로, 혹은 그 고속이동이 이제는 일상이 된 사람들의 추억으로 철도는 곳곳에서 나름의 의미를 새기며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게임 속 철도 또한 현실에서 보여줬던 다채로운 이미지들을 다양한 게임의 장르 속에서 각각의 의미로 펼쳐간다. 새마을호가 이제 추억의 영역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보노라면, 어느새 추억의 철도가 된 '사이베리아'의 그 아련하고 몽환적인 철도역의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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