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스티븐 제이 굴드 (1941~2002년)

허연 2018. 5. 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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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해지는 것이다"
진화론에 대한 오해 바로잡은 진화생물학자
어설픈 사견이기는 하지만, 나는 다윈의 진화론을 '적자생존' 내지는 '승자독식'으로 오해하는 이들을 비판할 때 이런 사례를 들곤 한다.

18세기 중반 사진술이 발명되고 일반화되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 화가들은 '우리는 이제 망했다'고 한탄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결과는 어떤가. 사진은 사진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풍부하게 살아남았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세기 중반 가정용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긴장한 사람들은 미국의 영화산업 종사자들이었다.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영화관까지 찾아오겠느냐는 우려였다. 하지만 이 역시 기우였다. TV 수상기가 집집마다 자리를 잡았지만 영화는 영화대로 비약적 산업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가장 멋진 스토리텔링으로 정리한 사람은 스티븐 제이 굴드다. 세계적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굴드는 평생을 바쳐 '진화=진보'라는 잘못된 등식과 싸웠다. 그는 "다윈이 말한 진화(evolution)는 진보(progress)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못 박았다.

사실 진화론에 대한 오해는 허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가 퍼지면서 시작됐다. 이 말 때문에 사람들은 진화를 '1등만 살아남기' 정도로 오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개념이 부정적인 사회적 파장을 생산해 냈다는 데 있다.

적자생존 이론은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의 정점에 있는 1등 생명체로 등극시켰고, 더 나아가 같은 사피엔스 내에서도 '백인 우월' 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다윈도 진화론을 쓰면서 고등(higher)이나 하등(lower) 같은 단어는 쓰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는 사실이다. 그 역시 '진화론'이 가져올 잘못된 파장을 경계했던 것이다.

굴드는 자신의 책 '풀 하우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몹시 사랑하지만, 그들은 생명체 전체를 대표하는 생물도, 가장 상징적인 생물도 아니다. 또한 특수하거나 전형적인 생명체의 본보기도 아니다."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난 굴드는 안티오크대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고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2001년 작고할 때까지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과학자들의 전국 조직인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에 참여하면서 강단과학과 전쟁을 시작한다.

"사실상 우리 서양인들은 스스로를 지구와 생물을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이같이 오만하고 부정한 사상은 참된 다윈정신이 아니다."

굴드의 이론 중 야구에서 4할대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진화론으로 설명한 부분은 유명하다. 투수의 능력이 늘어나고 타자의 실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야구' 자체가 과학적으로 발전하고 풍부해지면서 특이 사례가 줄어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블플레이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실행되고 모든 투구와 타격이 기록되며 각 선수의 약점과 강점도 파악된다. 야구는 우아하고 정확한 게임으로 진화했고 이 때문에 극단적 성적(타율)은 사라졌다."

굴드의 말은 맞는다. 진화는 우월해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정해진 환경 속에서 더 풍부하고 다양해지려는 생명체들의 시도인 것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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