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그라운드의 모차르트' 토마시 로시츠키 - 107

이형주 기자 2018. 2. 12. 19: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마시 로시츠키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그라운드의 모차르트' 토마시 로시츠키 - <107>

지난 12월 20일 시대를 풍미한 한 스타가 은퇴를 선언했다. 그 스타는 스파르타 프라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 수 없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벵거볼'의 핵심이자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로 불린 그를 필드에서 좀 더 보고싶었던 팬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됐다. 

로시츠키는 1980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축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 덕에 로시츠키는 자연스럽게 축구와 친해졌다. 로시츠키가 축구를 좋아하는 만큼 재능도 따랐다. 로시츠키는 지역팀이자 체코 명문인 스파르타 프라하에 입단할 정도의 실력을 보였다. 프라하 입단 이후에도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했다. 로시츠키는 프라하의 리그 2연패의 공신이 됐다. 

2000년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동구권의 재능들을 발굴하고 영입하는 것에 열심히였다. 자연히 로시츠키도 레이더에 들어왔고 그는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 이적료로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을 입었다. 

로시츠키는 2001/02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멤버가 되는 등 도르트문트의 핵심으로 빠르게 자리했다. 또한 체코 국가대표팀에서 토마시 갈라섹, 파벨 네드베드, 카렐 포보르스키와 로시츠키는 황금 미드필더진을 구축하는데 이는 그의 명성을 상승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실 로시츠키는 어릴 때부터 아스널 FC를 동경해왔다. 아스널과 관련된 소설인 피버 피치를 재미있게 읽었으며 1997/98시즌 2관왕을 달성한 아스널의 축구에 매료됐다. 특히 로시츠키는 아스널의 공격수 데니스 베르캄프의 광팬이었다. 

2005년 무렵 로시츠키는 새로운 도전을 원하고 있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의 첼시, 마틴 욜의 토트넘, 제라드 울리에의 리버풀 등 2005년 전후로 많은 팀들이 그의 영입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로시츠키는 아스널을 원했다. 딱 1년만 기다려보자고 맘 먹었다. 

1년이 지난 2006년 로시츠키에 대한 아스널의 구체적인 관심이 없었다. 로시츠키도 더는 기다릴 수 없는 입장이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이 진행되고 있었다. 로시츠키는 영국 언론 <가디언>을 통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나는 상성이 맞지 않았지만 이적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때 아스널이 로시츠키 영입에 뛰어들었다. 당연히 그의 마음은 아스널 쪽으로 흘렀고 계약을 확정했다. 

로시츠키는 아스널 레전드 로베르 피레스의 등번호 7번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와 더불어 많은 기대도 받았다. 로시츠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에 곧바로 부응했다. 

로시츠키는 단번에 벵거볼의 중심으로 자리했다.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벵거에게 로시츠키는 안성맞춤인 선수였다. 로시츠키 역시 벵거의 전술을 완벽히 이해했다. 이로 인해 로시츠키는 상당한 영향력을 내기 시작했다.

로시츠키의 활약은 2007/08시즌까지 이어졌다. 당시 아스널은 로시츠키, 세스크 파브레가스, 마티유 플라미니, 알렉산드르 흘렙으로 이어지는 플랫형 미드필더진을 운용했다. 이 네 명의 미드필더는 환상적인 호흡을 보이며 명경기들을 양산했다. 1월 로시츠키가 FA컵에서 부상으로 아웃되고 에두아르두가 2월 시즌 아웃되지 않았다면 우승을 달성할 수도 있었을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2008/09시즌부터 앞으로 그를 괴롭히게 될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햄스트링 부상을 겪은 로시츠키는 해당 시즌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다. 이 뿐만 아니라 유로 2008에도 부상 여파로 나서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음에도 로시츠키에 대한 벵거의 신뢰는 대단했다. 아스널은 이를 따라 2010년 1월 그에게 재계약 제의를 했다. 로시츠키가 이를 받아들여 그는 더 오랜 시간 아스널에 머물게 됐다. 

2010/11시즌 점차 컨디션을 끌어올린 그는 2011/12시즌 들어 다시 한 번 만개했다. 로시츠키는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10월에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중앙 미드필더 위치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이며 팀을 끌고 갔다. 로빈 반 페르시와 로시츠키의 활약으로 아스널은 4위를 사수했다. 

이후 로시츠키의 커리어는 또 한 번 부상으로 얼룩졌다. 2012/13시즌에 유로 2012에서 당한 부상 여파로 들쑥날쑥한 출전 횟수를 보였다. 2013/14시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시즌 로시츠키에게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FA컵을 들어올리며 아스널에서의 오랜 무관을 끊었다는 것이다.

아스널서 첫 우승을 달성한 이후에도 로시츠키는 좀처럼 이전의 몸 상태를 회복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전력 외 판정을 받고, 또 복귀해 맹활약을 하고, 부상으로 다시 아웃되는 패턴이 계속됐다. 

결국 로시츠키의 아스널 마지막 시즌은 2015/16시즌이 됐다. 로시츠키는 이 시즌을 끝으로 청춘을 바쳤던 아스널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게 됐다. 곧바로 체코로 복귀한 그는 부상으로 고국에서도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2017년 12월 유니폼을 벗었다. 그라운드를 아름답게 수놓았던 선수의 아쉬운 퇴장이 됐다. 

◇EPL 최고의 순간

2013/14시즌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에서 토트넘 아스널이 맞붙었다. 북런던 더비라 불리는 양 팀의 대결은 그 치열함이 엄청나다. 이날 북런던 더비의 주인공이 로시츠키였다. 로시츠키는 전반 2분 오른쪽 측면에서 루즈볼을 벼락같은 슈팅 연결했다. 로시츠키의 슈팅은 골문 구석으로 가 꽂혔다. 아스널은 로시츠키의 골로 라이벌전서 1-0 귀중한 승리를 챙겼다. 

◇플레이 스타일

드리블로든 패스로든 팀의 속도를 살려줄 수 있는 미드필더였다. 그가 스쿼드에 포함되면 윤활류를 바른 듯 팀 공격이 원활해졌다. 미드필더가 갖춰야할 능력을 대부분 지녔으며 부상만 아니었다면 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선수였다. 벵거볼의 핵심이자,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프로필

이름 – 토마시 로시츠키

국적 - 체코

생년월일 - 1980년 10월 4일

신장 및 체중 - 179cm, 72kg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105경기 23골

◇참고 영상 및 자료

프리미어리그 2006/07시즌~2015/16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아스널 FC 2006/07시즌~2015/16시즌 공식 리뷰 비디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아스널 FC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마켓> - 선수 소개란

<인디펜던트> - Tomas Rosicky interview: I still owe so much to Arsenal

<가디언> - Rosicky relieved to put his heart into his work

<데일리 미러> - Tomas Rosicky sidelined until spring after playing just 18 minutes since making Sparta Prague return

사진=뉴시스/AP

total87910@stnsports.co.kr

▶[스포츠의 모든 것! 스포츠전문방송 STN스포츠]

▶[케이블 딜라이브 CH.156] [IPTV 올레KT CH.267]

▶[공식 인스타그램] [공식 페이스북]

Copyright © 에스티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