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카 원기회복 프로젝트①] 천덕꾸러기, 스타렉스 4WD

오래된 차를 한 대 소유하고 있다. ‘클래식 카’라고 부를 만한 명차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늘 집에서 “대체 언제 팔 거냐?”는 성화에 잔뜩 주눅 든 천덕꾸러기다. 주인공은 2002년형 현대 스타렉스 4WD(사륜구동) 클럽 7인승으로, 국산 크로스오버 자동차의 원조이자 융합의 아이콘이다. 승합차와 SUV의 사륜구동 시스템을 짝 지은 까닭이다.

모호하고 낯선 콘셉트 때문에 판매도 시원치 않았다. 심지어 아직도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주유소 들를 때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우와, 스타렉스를 제대로 개조하셨네!” 그럴 만도 하다. 뒷바퀴굴림 스타렉스보다 11㎝나 더 껑충하니까. 바퀴와 휠 아치 간격도 벽돌 두 장은 능히 삼킬 수준. 누가 봐도 비율이 어색하고 기이할 수밖에.

스타렉스 4WD는 2013년 중고차로 샀다. 해외출장 가서 시차적응에 실패해 침대에 누워 중고차 사이트 헤집다 우연히 발견했다. 사진으로는 상태도 퍽 좋아 보였다. 게다가 내가 선호하는 검정색. 귀국하자마자 냉큼 전화를 걸었다. 수도권 한 중고차 매매상이 보유하고 있는 차였다. 귀국 직후 신이 나서 매매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막상 마주하니 암담했다.

소위 ‘사진빨’의 힘이었다. 차 안팎엔 땟국이 줄줄 흘렀다. 듀얼 선루프는 마지막 기운을 짜내 간신히 열리더니 숨을 거뒀다. 크게 실망한 난 깐깐하게 단점을 들춰 가격을 깎았다. 그럼 뭐하나, 집에 도착해서야 머플러가 끊겨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으니. ‘헛똑똑이’의 비참한 최후였다. 이후 현대차 원효로 서비스센터의 단골이 됐다. 부품 주문에도 도가 텄다.

이 차를 사기 전 가족을 설득해야 했다. 궁리 끝에 앞세운 명분이 캠핑이었다. 스타렉스 4WD 7인승 클럽의 좌석은 총 3열로 9인승과 같다. 그런데 구성이 다르다. 9인승은 2열 귀퉁이에 접이식 간이 좌석을 단 3+3+3 구조. 반면 7인승은 3+2+2. 그래서 2~3열 너비가 우등버스 좌석 뺨치게 넉넉하다. 어지간한 고급 세단 뒷좌석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차를 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여행을 떠났다. 통영과 삼척, 태백을 거침없이 누볐다. 그렇게 스타렉스 4WD는 우리 가족과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업무가 바빠지면서 스타렉스 4WD 탈 기회도 뜸해졌다. 문득 생각나서 주차장에 내려가 보면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기 일쑤. 멈춰 있는 기계 깊숙한 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입양하자마자 20만 원 들여 업체에 실내 세차를 맡겼지만 세월에 녹슨 뼈마디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체취(?)’를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족들은 언젠가부터 스타렉스 4WD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늘어가는 소음과 진동, 냄새 때문에 멀미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점점 스타렉스 4WD는 우리 가족에게서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멀어져 갔다.

설상가상으로, 노후 경유차 도심 진입제한 소식이 들려왔다. 조용히 조기폐차를 알아보기도 했다. 아끼는 차를 떠나보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결국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난 실질적 기대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스타렉스 4WD에게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내 손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스타렉스 4WD를 앳된 시절의 컨디션으로 되돌려 보고 싶었다.

‘올드카 원기회복 프로젝트’는 이런 이유로 기획했다. 우선 프로젝트의 범위를 정했다. 녹슨 철판 잘라내고 부싱 바꾸는 외과수술은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케미컬 제품을 활용해 컨디션을 회복시키는 수준을 목표로 삼았다. 대부분 작업을 스스로 하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그래야 실제로 올드카 소유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이번 프로젝트의 파트너 선정은 싱겁게 끝났다. 외장과 내장은 물론 엔진까지 아우르는 관리 용품 만드는 업체는 불스원이 유일한 까닭이다. DIY 작업을 테마로 삼았지만 첫 단추만큼은 예외였다. 엔진 관리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정비소로 떠나는 날, 스타렉스 4WD의 앞 범퍼 흡기구가 왠지 함박웃음 짓는 거 같아 가슴이 찡했다.(다음 회에 계속)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김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