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10년간 1000회 연재 인기웹툰 '생활의 참견' 김양수 작가
늘 '촉' 세우고 관찰..소소한 웃음소재 건져올리죠
"수려한 그림 못그려도..웹툰작가 꿈꾼다면 당장 도전하세요"

![김양수 작가가 서울 풍납동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는 김 작가가 매일경제 독자들에게 보낸 그림이다. 김 작가는 이 작업실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회사원처럼 근무하며 `생활의 참견`을 그렸다. 오른쪽 만화는 인기 에피소드 중 하나인 `아빠와 함께` 편. [한주형 기자]](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2/23/mk/20180223155700964nugg.jpg)
2008년 2월 네이버에 처음 연재된 이 작품이 지난해 9월 1000회를 돌파했다. 이전까지 700여 편 네이버 웹툰 중에 1000회를 채운 작품은 '가우스전자'(곽백수), '마음의 소리'(조석), '덴마'(양영순)뿐이었다. 1000회 동안 달린 댓글은 총 92만개. 1회당 평균 댓글은 920개다. 한 회 에피소드마다 920개 의견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독자들은 지난 10년간 이 웹툰을 보면서 "이거 내 얘기"라며 꾸준히 공감 버튼을 눌렀다. 개성 있는 그림체나 우주를 넘나드는 판타지적 세계관이 넘치는 웹툰계에서 라디오 사연 같은 일상적 소재를 다룬 이 작품은 얼핏 보면 심심해 보인다. 동글동글한 그림체는 "이 정도면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라고 독자들로부터 내면에 숨겨진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실제 '생활의 참견'을 그린 김양수 작가(45)는 프로 만화가의 작업실에 문하생으로 들어가 그림을 배우거나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만화가들의 '정식 코스'와는 궤적이 다른 삶을 살았다. 잡지 '페이퍼(PAPER)' 기자였던 김 작가는 기사가 펑크 난 자리에 평소 끄적였던 만화를 실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만화가 기사보다 더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에서 연재 제의가 쏟아지자 기자와 만화가 '투잡'을 뛰게 됐다. 그러던 중 2008년 네이버 제안을 받아 정식 연재를 시작했고 약 10년간 웹툰 1000회를 연재한 인기 작가가 됐다.
청소년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꼭 상위권에 '웹툰 작가'가 올라오는 '웹툰의 시대'가 왔다. 웹툰의 위상이 높아진 요즘, 평범한 글쟁이에서 인기 웹툰 작가로 변신한 그의 이력은 웹툰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부추긴다. 김 작가는 "잡지에 '땜빵'으로 만화를 그렸을 때만 해도 내가 만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면서 "웹툰을 그리고 싶다면 준비하지 말고 당장 시작해라. 배우는 것은 독자들과 교류하면서 해나가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림을 못 그린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김 작가는 "수려한 그림체가 아니어도 좋다"면서 "지금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이야기, 이를 전달할 표현력만 있다면 대중과 연결해줄 플랫폼은 많다. 누구나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휴재에 들어간 김 작가는 현재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생활의 참견'에 녹아 있는 잔잔한 재미와는 또 다른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극화가 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는 '생활의 참견'은 없는 것일까. 김 작가는 "지금도 얼마든지 소재는 쌓여 있다. 기다려달라는 말은 욕심이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셨으면 좋겠다. 시즌 2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다음은 김양수 작가와 일문일답.
―10년 가까이 1000회를 연재하면서 한 번도 펑크 내지 않았다. 비결은 무엇인가.
▷규칙적인 삶을 유지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했다.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작업실을 다녔다. 그중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료 작가들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생활의 참견'은 장르 특성상 주변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듣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작가들하고 만나서 모은 소재를 공유하고 얘기해보고 재미가 없으면 거르고 재밌는 소재는 좀 더 웃기기 위해 연출을 고민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일주일이 금방 갔다.

▷2005년에 첫 단행본을 준비하면서 책의 맨 뒤 페이지에 당시 유명 작가 분들의 평과 축사를 싣기로 했다. 그런데 많은 작가 분들이 내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활'이라는 말을 써주셨다. 당시만 해도 '생활툰'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어서 '생활'이라는 키워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에 영화 '생활의 발견'이 이미 발표되었기에 나 역시 제목을 미지수를 넣어 '생활의 ××'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도하 선배님에게 그 고민을 얘기했더니 '생활의 참견'이라고 하면 되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10년간 소재를 찾다 보면 지칠 때도 있을 것 같다. 슬럼프는 없었나.
▷연재하고 2~3년쯤 됐을 때였다. 계속 연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소재를 아꼈다. 재미있는 소재 3개가 있으면 일부러 아껴서 나눠 썼다. 그때 열심히 안 했다는 게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런 상태가 한 몇 개월 지속됐는데 그러다 보니 순위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자고 일어나면 확 떨어지는데 너무 놀라고 긴장됐다. 웹툰은 올라가기 쉬워도 한번 내려가면 잡기 힘들다. 재미없다고 떠난 독자는 쉽게 안 돌아온다.
―그래서 어떻게 변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재가 있으면 다 쏟아부어서라도 제일 웃긴 것, 제일 재밌는 것을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뒤로는 마감이 오후 3시면 작업이 2시간 전에 끝났어도 최종 원고를 보낼 때까지 어떻게든 붙잡고 있다.
―잡지 기자를 하다가 만화가가 됐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만화가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릴 적 꿈이었기도 하고, 만화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해 학창 시절에도 학보 등에 만화를 그려 싣곤 했었다. 기자가 된 후 용기를 내어 직접 그린 만화를 편집장님과 편집인님께 보여드렸는데, 처음엔 워낙 아마추어적이라 지면에 싣기 곤란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려당하던 와중에 어느 달 마감 직전에 지면 하나가 펑크 나는 일이 벌어졌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다시 한번 원고를 들이밀었고, 실험적으로 한번 시도해본다는 느낌으로 잡지에 내 만화를 실어주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자엽서(당시에는 유일한 독자 피드백 창구가 애독자 엽서였다)의 '이달에 가장 좋았던 기사' 같은 질문 항목에 많은 분이 내 만화를 적어주셨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페이퍼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우 조악한 그림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호의적으로 만화를 읽어주셔서 정말 기뻤고, 그 후 다른 몇몇 매체에서도 연재 제안이 오면서 자연스럽게 만화 일을 기자 생활과 병행하게 되었다.
―기자 생활과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지나다 보니 초반의 기쁨에 비해 무명에 다름없는 만화가로서의 내 위치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결국 이쯤에서 만화를 접고 기자 생활에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제안이 왔다. 그게 2008년이 되던 겨울이었다. 그때만 해도 웹툰이라는 게 이처럼 큰 파급효과를 내는 매체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김양수 작가는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점이 생활툰의 매력"이라면서 "언젠가 `생활의 참견` 시즌2를 꼭 연재하겠다"고 말했다. [한주형 기자]](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2/23/mk/20180223155701696zyal.jpg)
▷인쇄매체, 잡지시장이 매우 힘든 시기였다. 불황과 함께 인터넷이 생기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긴 현상이었다. 주변의 수많은 잡지들이 폐간되고 있었고 기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이 그러하다 보니 우리 역시 힘든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의 첫 직장이자 유일한 직장이며 늘 나를 보호해주었던 울타리였던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1년 가까이를 고민했던 것 같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 자신이 웹툰작가로 전업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는 장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잘 선택한 일이었지만, 막상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역시나 오랫동안 고민했을 것 같다.
―생활툰 작가는 관찰력이 뛰어날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우스운 장면을 잘 캐치해 내는가.
▷생활툰은 끝이 없는 관찰이다. 24시간 촉을 세우고 계속 나, 그리고 주변을 관찰하고 생각해야 한다. 살다 보면 어제 생각해보면 안 웃긴데 다시 생각해보면 웃긴 일도 많다. 그런 것들을 계속 관찰하고 캐치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늘 재미있고 우스운 일을 마주한다. 단지 그때 웃고 기억을 못할 뿐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달리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모습이 있으면 바로바로 메모하고 만화로 어떻게 연출이 될지를 고민한다. 얼마 전에 여덟 살 둘째 딸 시영이가 큐브 퍼즐을 갖고 싶다고 하더라. 큐브를 사갖고 와서 '자, 이제 해봐' 하고 흩뜨려서 주니까 막 울더라. 시영이는 완성된 큐브가 갖고 싶었던 거였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다른 입장, 다른 시각에서 웃음이 유발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10년간 생활툰을 연재하다 보면 독자들이 반응하는 웃음 포인트가 달라진 것을 느낄 것 같다.
▷진짜다. 웃음의 기조가 바뀐다. 초반에는 말장난 개그가 잘 먹혔는데 요즘은 말장난보다 행동이나 특정 상황이 어처구니없는 개그가 인기다. 세월이 가도 똥, 방귀 등 원초적인 소재는 항상 터진다.
―'생참'은 웹툰계 '컬투쇼'로 불린다. 전국에서 재미있는 사연이 쏟아질 텐데, 고르는 기준이 있나.
▷내가 봤을 때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그렇게 선택한 후에도 철저하게 검증한다. 메모장에 사연이나 아이디어를 기록한 소재가 수천 개가 넘는다. 이 중에서 1차로 거르고, 시기 등을 감안해서 2차, 3차까지 거른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3년 전 사연이 소재가 돼서 뒤늦게 독자들이 '이제서야 나갔다'며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생활툰 특성을 고려해서 소재를 안배하기 때문이다.
―탈모처럼 스스로를 '희생'해서 웃음이 유발되는 에피소드도 많다.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은 안 되나.
▷생활툰은 결국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나 자신을 미화하는 것보다는 넘어지고 다치고 실수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유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나 자신의 약점 같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 만화를 보고 웃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의 참견'은 자극적이지 않은 웃음, 담백한 웃음을 준다는 평이다.
▷억지로 웃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사실상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과장되게 에피소드를 그린 적이 있었다. 그때 독자들이 '생활의 억지'라고 해서 상처를 받았다. 100회 때마다 에피소드에 등장한 실존 인물 사진을 보여주는 이유다. 짠 개그가 아니라 실화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또한 아무리 재미있어도 너무 짠 개그처럼 나오면 한 번 더 고민한다. 독자 입장에서 의심할 만한 만화는 안 그리고 싶다. 예를 들어, 동료 김선권 작가가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빙글빙글 돌아 딱 병원 앞까지 갔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가 운전자를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딱 들으면 엄청 재미있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독자들이 '이걸 믿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재미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지 않았다.
―생활툰은 우리 일상을 얘기해서 가장 쉬워보이지만 작가들은 어려운 장르라고 토로한다.
▷일상생활과 밀접하기 때문에 독자는 만화적 표현도 실제, 혹은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사회이슈나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코믹적 요소의 경우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활툰 작가는 한 컷을 그리더라도 많이 생각해보고, 이것이 불특정 대다수의 독자들이 봤을 때 누군가에게라도 상처를 줄 수는 있지 않을까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생활툰을 연재하려면 바르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진짜로 생활툰 덕분에 변했다. '생활의 참견'에 가족 에피소드가 많이 나온다. 독자들은 '좋은 아빠, 자상한 남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하면서 변한 거다.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가족이랑 추억을 많이 쌓았다. 산책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등 이 작품 덕분에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 작품이 내가 철이 들게 한 은인이다. 사실 나는 실수도 많고,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기도 하는 평범한 남자다. 하지만 이 작품 덕에 '자상한 남편의 아이콘'이 돼버려서 조금 부담스럽다.

▷독자에게 빨리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작가 입장에서는 여러 광고와 협업할 수 있는 개방성이다. 극화는 캐릭터가 분명하기 때문에 제한이 있다. 예를 들어 무섭고 강렬한 캐릭터는 가정용품 광고에는 어울리지 않는 식이다. 하지만 생활툰 캐릭터는 잘 잡아놓으면 대중에게 친근하게 어필하기 때문에 다양한 내용의 광고 작업을 할 수 있다.
―웹툰 작가는 억대 연봉을 번다는 뉴스가 있다. 웹툰 작가의 수입이 궁금하다.
▷저보다 워낙 잘 버시는 분도 많고, 제가 그렇게 잘 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만화에 따라서 광고 등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장될 여지가 커서 그런 측면에서는 수입에 도움이 된다. 내 경우는 광고를 꾸준히 한 편이다. 현재까지 의약품, 전자 등 다양한 품목에서 광고 수십 편이 들어온 것 같다. (웹툰 작가들은 원고료·광고료·캐릭터 및 영상 등 저작권·단행본 수입·광고 등으로 수익을 얻는다. 만화 업계에 따르면 스타 웹툰 작가 수십 명이 억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웹툰 작가 이말년 등 스타 작가들은 스스로 방송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4년 네이버는 자사 웹툰 작가 중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최고 수입을 올린 사람은 월 7800만원을 벌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잡지사 기자를 하다가 웹툰 작가가 됐다. 회사원 중에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준비하지 말고 빨리 하라고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아직 배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룬다. 그러나 실제 그려보고 독자들하고 교감하면서 성장하면 된다. 요즘은 연재할 곳도 많다. 옛날에는 만화 잡지 몇 곳에 한정돼 있었지만 요즘은 네이버, 다음 등 웹툰 플랫폼이 많고 아마추어 작가들을 뽑는 창구가 다양하다.
―웹툰 작가가 각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늘 말하지만 웹툰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성실함이다. 중간에 연재작의 인기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끝까지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 약속을 안 지키면 독자는 떠나간다. 몇 달 정도 하다가 하기 싫다고 중단해버리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 또 매주 다른 작품과 순위 경쟁을 하며 성적표를 대중에게 공개하기에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하지만 정말 좋아서 성실하게 임한다면 1등이 아니어도 언젠가 보답이 올 거라고 본다.
―'생활의 참견'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다리가 불편해 보철 보조물을 찬 첫째 형의 이야기가 나갔을 때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격려와 감동 메시지를 받았다. 독자들이 댓글에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가족 이야기인데 독자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며 각자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결국 우리는 사는 게 비슷하구나, 그래서 웃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직업의 특성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의 참견' 때문에 포기했다. 타국 생활은 새롭겠지만, 내가 타지에서 국내 독자들이 공감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일단은 직접 그리려고 한다. 이전에 '한잔의 맛'이라는 술 관련 작품을 했지만 에피소드 형식이었고, 극화로서는 '아이소포스'라는 작품을 했지만 스토리만 맡았고 그림은 다른 작가분이 그리셨으므로, 극화 만화를 직접 쓰고 그리는 건 어떤 의미에서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 외에는 아직 더 공개하기는 힘들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하는 중이다.
―그럼 '생활의 참견'은 영원히 못 보는 것인가. 휴재인지 종결인지 궁금해하는 독자가 많다.
▷나조차도 영원히 연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생활의 참견'을 1000회로 마무리하면서 여러 복잡한 마음에 휩싸였고, 현재도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마지막회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작가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생활의 참견'은 분명 언젠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기다려달라는 말은 욕심이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셨으면 좋겠다.
■ 김양수 작가는…
1973년에 태어나 대학교 3학년 때 월간 문화잡지 '페이퍼' 음악 관련 필자로 일했다. 그 인연으로 1997년부터 정식 기자로 입사해 음악과 영화 등에 대한 글을 썼다. 평소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1998년 우연한 기회에 만화 '김양수의 카툰판타지'를 잡지 페이퍼에 연재하게 되면서 인기 웹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8년 네이버에 '생활의 참견' 연재를 시작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서울 풍납동 작업실에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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