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비차의 캘리툰-누구나 보고 있지만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

2018. 3. 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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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툰의 작가들은 여럿이 알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을 사유해 작품에 담는다. 그래서 나에게 일상툰은 때때로 ‘상냥한 그림으로 엄청난 이야기를 하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상툰은 ‘웹툰’ 시대를 특징 짓는 장르이다. 칼럼니스트 위근우씨는 인터뷰집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남해의봄날)에서 “기존 출판 만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다분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사건들과 정서를 소재 삼는 일상툰은 웹툰을 기존 만화와 구분하는 중요한 단층”이라고 말한다.

비차 작가의 만화 <비차의 캘리툰> 중 한 장면. | 비차 제공

이 ‘개인적이고 사소한 사건과 정서’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모바일 기기의 성장이 큰 몫을 했다. 물론 웹툰 자체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일상툰은 모바일로 소비하기에 적합한 장르이다. 최근에는 웹툰 플랫폼뿐만 아니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서도 일상툰은 우리의 삶 속에 더욱 밀착하고 있다.

그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만이 일상툰이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일상툰이 재미있는 것은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상툰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를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공감’일 것이다. 일상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우리가 겪어내는 매일의 삶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자 확인. 사실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우리(나)의 삶을 인식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일상툰의 매력이자 힘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싱글 여성 ‘비차’

일상을 소재로 삼기에 일상툰을 소개하는 글에는 평범함, 소소함 같은 단어들이 주된 수식어로 등장한다. 그래서 마치 ‘그리기 쉬운’ 장르처럼 오해하거나 폄하해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러한 수식어들이 일상툰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상은 평범함과 소소함을 품고 있지만, 그것이 일상의 전부는 아니다. 언뜻 무해하고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단어지만, 일상이 정말 그러한가.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치열한 현실의 문제들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장 아닌가.

일상툰의 작가들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한순간 뚝 따다가 그저 그대로 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경험한 일 중에서 어떠한 지점을 ‘포착’해낸다. 그 발견 자체가 특별한 일일 때가 있다. 누구나 보고 있는 풍경 속에서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 혹은 여럿이 알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유해 작품에 담는다. 그래서 나에게 일상툰은 때때로 ‘상냥한 그림으로 엄청난 이야기를 하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페이스북에서 연재되는 〈비차의 캘리툰〉을 보았을 때도 그러했다. ‘비차’는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싱글 여성이다. 가끔 우울함과 좌절에도 빠지지만, 친구들과 위로와 우정을 나누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오직 ‘작은 사치’만이 허용되는 ‘헬조선’의 ‘평범한’ 청년 여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상을 그리는 그녀의 만화 속에는 사건보다 질문이 등장할 때가 많다. 그녀에게는 질문 자체가 ‘사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당연한 것들이 비차에게는 당연하게 읽히지 않는다.

최근 에피소드 중 내가 주목한 비차의 질문 중 하나는 “왜 못 먹는 것을 먹이려고 할까?”이다. 비차는 어린 시절 못 먹는 슬라이스 치즈를 억지로 먹였던 엄마, 급식을 억지로 먹인 선생님, 먹지도 못하는 술과 매운 음식을 먹이는 ‘사회인’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비차는 묻는다. “선택지를 주거나, 조리법을 바꿀 수 있는데” 왜 그런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느냐고. “안 먹으면 혼날 줄 알아. 토해도 먹고 토해”라고 다그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상처를 남기는 경험이 아니냐고.

왜 못 먹는 것을 먹이려고 할까?

술을 억지로 먹이는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익숙하다(얼마나 변했는가는 별개로).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 억지로 먹이는 문화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말하기 더 어려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선택권을 말하는 것은 ‘반찬투정’이라는 말로 쉽게 대체된다. 준비한 음식을 군소리 없이 다 먹기 바라는 건 건강에 대한 염려도, 사랑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화’에 가깝다. ‘왜 안 먹겠다는 건데? 좀 따라주면 좋겠는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라는 마음이 그 뒤에 있다. 아기를 키우면서 내가 음식을 주는 ‘어른’ 입장에 서보니 더 뚜렷이 보인다.

이 에피소드는 “취향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에피소드의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취향은 선택권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화다. 어린 비차가 무엇을 입을지는 부모님, 특히 엄마가 좌지우지했다. 게다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교복을 입어야 했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서 무엇을 입을지 결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비차는 한동안 좌충우돌했다. 그녀는 여전히 “취향을 찾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10대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비차가 성인이 되어 다시 꺼내 입어본 교복은 비차에게 더 이상 학창시절의 추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작고 불편해 여학생의 행동을 제한하는 통제규범 그 자체로 다가온 교복을 발견하고 그녀는 “교복을 왜 입어야 해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작고 불편한 교복’은 여성이 화자이기 때문에 제기되는 문제다. 남학생용 교복은 몸에 꼭 맞게 디자인되지 않는다.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프리사이즈’ 옷을 샀다가 맞지 않아 당황하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외할버지의 ‘장례식날’ 조문을 온 친척에게 “여자 애가 살찐 것 좀 봐라. 관리 안하면 훅 간다”는 말을 듣는다. 그녀가 표준 체중을 크게 넘어선 몸이 아니었지만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남성은 여성의 외모에 대해 당연히 말할 권리를 갖게 된다는 인식이 무서운 것이다. 독자는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그녀가 여성으로서 일상에서 겪는 경험들이 하나의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연결되는 경험임을 느낀다. 그 ‘여성의 일상적 경험’ 속에는 지하철 몰래카메라와 같이 성폭력도 빠지지 않는다.

최근 이어지는 ‘미투’ 운동은 성폭력을 용인하고 지속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여성들이 말하기에 나선 것이다. 워낙 ‘큰’ 사건들이 연이어 공론화되니까 그 사람들에 비해 자기는 별것도 아니더라(?)며 합리화하는 남성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큰’ 폭력과 ‘작은’ 폭력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그러한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식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인식체계를 균열시킬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일상툰이 가진 힘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일상툰은 오늘날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가장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매체 중 하나이다.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하는 일상툰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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