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새해특집] "어릴 땐 몰랐던 외환위기.. 국난 극복한 부모세대 존경"



◆“늘 집에 계시던 아버지” … “도둑맞은 돌반지”
“아버지는 어디 가시지 않고 항상 집에 계셨어요. 전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고요.”
전남 순천에서 자란 문수민(20·여)씨는 외환위기 사태 직후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같이 떠올렸다. 문씨가 4살 때 아버지는 한창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로 계획이 어그러졌다. 아버지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가장의 실직은 살림살이에 큰 타격이었다. 문씨네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친척들이 모여 사는 시골집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항상 집에 머물렀다. 아버지가 다시 출근길에 오른 건 2년이 지나고서다.
문씨는 “다른 집은 아침마다 아버지가 어딘가 나가는데 나는 아버지랑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며 “동생이 막 태어날 무렵이기도 해 온 가족이 함께 모여있던 적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다. 문씨는 “수능 공부를 하며 다양한 사회지표를 봤는데 외환위기 직후 취업률이 뚝 떨어졌더라”며 “아버지가 일이 없어서 놀았다고는 어렸을 때 한번도 생각 못 했고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돌반지를 도둑맞은 고호정(20·여)씨는 외환위기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다. 살림이 어려워지자 부모는 고씨의 돌반지를 금은방에 팔았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돌반지 10개를 차마 모두 처분할 수 없었던 부모는 단 1개를 남겨 장롱에 간직해왔다. 하지만 고씨가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집에 도둑이 들어 그것마저 잃었다. 고씨는 “아버지 어머니가 당시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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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북구 국민대학교에서 만난 ‘IMF둥이’ 6명이 활기찬 표정으로 뛰어오르며 2018 무술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나라, 문수민, 고호정, 박종훈, 정다운, 안소현씨. 이재문 기자 |
“아버지는 집이 어려워도 교육을 위해 꼭 서울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안소현(20·여)씨는 10살 무렵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그는 “아버지는 ‘교육 여건을 고려할 때 반드시 목동으로 가야만 한다’는 소신이 강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 사정상 서울 외곽지역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다. 그 시절 아버지의 목표는 목동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안씨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가서도 힘들게 살 텐데 왜 굳이 목동으로 가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2008년엔 미국 월가에서 비롯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한 번 살림이 빠듯해졌다. 고심하는 부모의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안씨는 “힘든 시기를 과거에 겪어서 그런지 이번엔 힘들다는 게 크게 느껴지진 않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결국 그해 12월 목동으로 다시 이사해 줄곧 살고 있다는 그는 “지나고 나니 부모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알 것 같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정다운(20·여)씨의 어머니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칼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정씨의 어머니가 다니던 외국계 회사가 인수 합병되면서 고용승계 여부가 불확실했다. 정씨는 “어머니가 ‘어차피 더 있어 봐야 정리해고될 것 같다’며 그만두셨다”고 기억했다. 어머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똥 ‘취업난’… 격려도 해주셨으면
대학생 박종훈(20)씨는 학군단(ROTC)을 지원할 생각이다.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일종의 ‘보험’이 필요하다고 느껴서다. 그는 “학군단에 들어가면 대학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할 수 있다”며 “실업자가 될 것에 대비한 ‘플랜B’로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황나라(20·여)씨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씨는 “과연 내 적성에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요즘 같은 불경기에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면서 “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인지 IMF둥이들은 외환위기라는 ‘국난’을 극복해 낸 기성세대에 대한 존경심이 앞선다고 입을 모은다.
서범석(20)씨는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던 일인데 알고 보니 나라가 망할 뻔한 사건이더라”며 “어른들이 이겨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는 건 우리 세대의 몫”이라고 말했다.
고씨도 “외환위기 시절 엄마 친구의 아이들이 친척 집에 맡겨지는 걸 볼 때마다 그들이 마치 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기 잘 돌봐주신 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거들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의 고충도 이해해주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황씨는 “사회적 위기를 극복한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내가 말이야, 예전에는 더 힘들었는데’ 식의 태도를 보이는 건 오히려 세대 간 화합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년층과 기성세대 모두 서로에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할 때 조금만 배려한다면 예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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