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에릭손의 황태자' 엘라누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에릭손의 황태자' 엘라누 <24>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축구계의 동향처럼, 세계 각 팀의 감독들이 바뀌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특정한 팀에 새 감독이 오게 되면 감독의 스타일대로 팀이 변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의 철학을 경기장 내에서 잘 수행하는 선수가 나오고, 그러면 이 선수를 새로운 감독의 황태자라 부른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어떤 감독의 황태자였던 선수가 있었다.
엘라누 블루메르는 2001년 남미의 명문 클럽인 산토스 FC에서 프로데뷔를 했다. 엘라누는 당시 산토스에서 호비뉴, 디에구와 같이 뛰었다. 세 선수는 경기장 내에서도 호흡이 좋았고, 밖에서도 친밀했다. 이에 2011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등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5년 엘라누는 우크라이나의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발을 내딛게 됐다. 엘라누의 실력은 여전했으나, 추운 날씨 등 축구 외적인 조건이 열악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때 탁신 친나왓 前 태국 총리가 팀을 인수한 뒤 폭풍 영입을 하고 있던 맨체스터 시티가 엘라누를 유혹했고, 그는 프리미어리그 행을 택했다.
프리미어리그 입성 초기부터 엘라누의 활약이 빼어났다. 엘라누는 첫 경기였던 1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 롤란도 비앙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맨체스터 더비로 치러진 3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도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남미 선수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잉글랜드 북부 지역 맨체스터의 우충충한 기후도 우크라이나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엘라누의 "이 도시는 아름답고 나에게 꼭 맞는다"며 행복함을 드러냈다.
득점 행진이 시작되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엘라누는 8R 뉴캐슬 유나이티드 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렸다. 8일 후 9R 미들즈브러 FC전에서는 멀티골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10R 버밍엄 시티전에도 상대팀의 골망을 흔들었다.
엘라누는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32R 버밍엄전 득점, 34R 선덜랜드 AFC전 득점 등 시즌 막판까지 꾸준했다. 35R 포츠머스 FC전에서는 풀백 위치까지 소화하며 승리를 견인하는 등 그야말로 팀의 복덩이였다.
엘라누는 2007/08시즌 리그에서만 8골, 모든 대회 통틀어 10골을 기록했다. 리그, 그리고 모든 대회 합쳐서도 팀내 최다골에 해당했다. 시즌 초 도착한 선수가 팀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엘라누의 이러한 활약은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의 극찬을 받기에 충분했다. 에릭손 감독은 "팬들을 기쁘게 해주는 선수다. 엘라누는 진정한 재능"이라며 그를 극찬했다. 에릭손 감독의 황태자라 불릴 만했다.
꽃길만이 계속 될 것 같았던 엘라누의 맨시티 생활에 암운이 드리우게 됐다. 그의 은사 에릭센 감독이 2007/08시즌이 끝난 뒤 경질됐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끼던 에릭손 감독의 공백이 엄청날 것임을 엘라누는 그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 했다.
그나마 엘라누에게 호재가 있었는데, 맨시티가 호비뉴를 영입한 것이었다. 맨시티는 구단주 탁신 총리의 자금이 동결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08년 8월 만수르 구단주가 팀을 인수하면서, 다시 자금 운용이 여유로워졌다. 이에 맨시티는 충격적인 호비뉴 영입을 성공시키는데, 슈퍼스타였고 절친한 친구였기에 엘라누에겐 호재였다.
2008/09시즌 초반 엘라누는 지난 시즌과 동일한 활약을 보였다. 패했지만 1R 아스톤 빌라전부터 득점포를 가동했다. 2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는 멀티골을 폭발시키며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하지만 이후 엘라누의 상황이 꼬였다. 경쟁자였던 팀의 미래였던 스티븐 아일랜드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더구나 마크 휴즈 감독과의 관계가 좋지 못 했던 엘라누는 점차 입지를 잃어갔다.
게다가 파벌 문제까지 불거졌다. 호비뉴가 거액을 받고 맨시티로 왔기에 휴즈 감독을 비롯해 맨시티 수뇌부는 그를 애지중지했다. 당시 호비뉴는 조, 엘라누 등 브라질 선수들과 파벌을 만들었다. 여기서 멈췄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브라질 선수들은 함부르크 SV와의 UEFA컵 8강 1차전 전후로 팀복을 입지 않는 등 구단과 마찰을 일으켰다. 당연히 휴즈 감독의 눈 밖에 났다.
그러나 엘라누는 경기장 위에서는 시즌 막판까지 잡음을 내지 않았다. 33R 웨스트브롬위치 알비온전에서 귀중한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35R 블랙번 로버스 전에서도 득점하는 등 경기에 나서기만 하면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시즌 후 엘라누는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하며 2시즌 간의 짧았던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갈라타사라이 이적 후 엘라누는 "브라질 대표팀 감독인 둥가가 지속적인 출전이 없으면 월드컵 출전이 어려울 것이라 말했습니다. 내 꿈은 월드컵에서 뛰는 것이기 때문에 이적을 선택했습니다"라고 팀을 옮긴 이유를 밝혔다. 엘라누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2016년 은퇴했다.
◇EPL 최고의 순간
2007년 9월 프리미어리그 9R에서 맨시티와 뉴캐슬이 맞붙었다. 경기전까지 엘라누는 5어시스트로 프리미어리그 어시스트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아직 득점은 없는 상황이었다. 2-1로 살얼음판 리드를 이어가던 후반 42분, 엘라누는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신고했다. 이 덕에 맨시티도 3-1 승리를 챙겼다.
◇플레이 스타일
정확한 패스로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어내는 선수였다. 시야가 넓어 동료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킥 능력도 훌륭해서 프리킥, 페널티킥 득점도 자주 만들어냈다. 중거리슛이나 문전으로의 침투 역시 준수했다.
◇프로필
이름 - 엘라누 블루메르
국적 - 브라질
생년월일 - 1979년 2월 21일
신장 및 체중 - 174cm, 65kg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50경기 9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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