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권력의 용어 / 김하수

2017. 5. 2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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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 나름의 전문용어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비합법적인 영역에서조차도 전문용어 기능을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합법과 비합법 양쪽을 아우르는 용어나, 양쪽에 다리를 걸친 듯한 개념을 쓰기도 한다.

이 부분을 흐릿하게 처리하면 결국 정당하던 권력마저 무너지게 마련 아닌가? 국정농단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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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 나름의 전문용어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비합법적인 영역에서조차도 전문용어 기능을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을 흔히 ‘은어’라고 한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음지의 전문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영역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권력’이라는 영역이다.

권력은 합법 세계와 비합법 세계를 다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합법과 비합법 양쪽을 아우르는 용어나, 양쪽에 다리를 걸친 듯한 개념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정치자금’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불법인 듯, 합법인 듯, 어떻든 권력이 필요한 돈이었다. ‘고위층’이란 말도 그게 누구인지 알 듯 모를 듯하다. 누구인지 너무 관심 갖지 말라는 용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신기한 권력의 용어가 하나 발견되었다. 이름하여 ‘특수활동비’다. 공금이긴 한데 굳이 그 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신기한 돈이다. 언론이 이미 ‘쌈짓돈’ 혹은 ‘눈먼 돈’과 동의어라는 듯이 빈정대고 있으니 이미 그 정당성이 무너진 말이다. 또 ‘돈봉투’라는 말이 유의어처럼 쓰인다. ‘돈봉투’의 또다른 유의어는 ‘금일봉’이란 말이다. 대개 금일봉은 권력자가 은혜를 베풀듯이 주는 돈이고, 돈봉투는 힘없는 사람이 권력자에게 바치고 싶어하는 돈이거나 어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나누어 갖는 돈인 것 같다.

권력이 음지와 양지를 모두 들여다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활동의 정당성은 명백하게 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직에 있으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권력의 ‘사익’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흐릿하게 처리하면 결국 정당하던 권력마저 무너지게 마련 아닌가? 국정농단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권력의 사사로운 일상생활 바로 곁에 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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