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이 돋보이는 기아의 플래그십, 오피러스

예정에 없던 오피러스를 만났다. 지인이 구입했다기에 시승을 청해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 곧 후속 모델이 나올 차지만 더 늦으면 못타볼 차를 타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피러스는 기아차의 플래그십차다. 2003년 5월에 처음 출시했으니 이제 곧 6년을 넘긴다. 대형 세단 시장에서 기아차의 얼굴 마담 역할을 해온차종이다.

국내 대형 세단 시장은 과거와 달리 세분화되는 추세다. 그랜저 하나였던 시장이 준대형, 대형, 초대형 등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커진 것이다. 시장은 이렇게 커지고 세분됐지만 기아차는 오피러스 하나로 대형세단 시장에 대응해야 하는 처지다. 그랜저, 제네시스, 에쿠스로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현대와는 다르다. 대형 세단이 하나여서 메이커 입장에서는 오히려 속 편할 수 있다. 하나에 집중하면 되니까. GH330 프리미엄을 오늘의 시승차로 준비했다.

길이가 에누리없이 5미터다. 휠베이스는 2800mm다. V6 MPI엔진이 배기량은 3342cc, 최고출력은 247마력, 최대토크는 31.5kgm다. 자동5단 변속기가 올라가고 연비는 리터당 9.0km/l를 기록한다고 제원표에 써있다. 타이어는 235 55R17. 회전반경제어장치 VRS를 적용하면 최소회전반경이 5.5m에 불과하다.

점잖은 디자인이다. 앞으로 쏠리는 웨지 스타일을 버리고 노면과 수평을 유지하는 옆선이 조금은 보수적이다. 대신 안정적이다. 각 면의 끝부분은 라운드로 부드럽게 처리했다. 특히 C필러 이후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선이 매력적다. 대형세단이 주는 위압감을 덜어내고 보다 친근하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는 디자인 카피 논란이 많았던 부분. 재규어를 닮았다거나 벤츠 E클래스를 카피했다는 의혹들이 제기됐었다.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기아차의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없기 때문이다. 기아차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기아 만의 디자인 요소 들이 없어 불필요한 카피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불식 시키려면 기아차가 스스로의 디자인 정체성을 살리고 널리 알리는 방법 밖에 없다. 비싼 돈 주고 모셔온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인테리어는 적당히 고급스럽다. 최고급의 이미지는 아니다. 있을 건 다 있지만 그렇다고 초호화 옵션이 적용된 것은 아니란 말. 대시보드에 배치된 각종 버튼들의 질감도 좋다. 화려하게 번쩍이지 않고 손에 착착 감긴다.

공간은 여유있는 편이다. 뒷좌석도 마찬가지다. 뒷좌석에 앉아 시트에 몸을 파묻고 달리면 어느 고급차 부럽지 않다. 시승차에는 7.1채널 AV 시스템, 전후방 모니터링 시스템, 플랜지리스 타입의 17인치 크롬도금 알루미늄 휠, 통풍시트, 전동 및 수동 커튼, 전동조절식 페달 등이 적용됐다.

차는 조용했다. 여럿이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들 이 차의 조용함을 인정했다. 렉서스못지않을 정도의 정숙성이다. 물론 속도를 높이면 엔진소리도, 노면 소음도 실내로 파고들지만 불쾌한 소음이 아니다. 잘 걸러진 소리가 적당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들린다.

엔진 파워는 여유가 있다. 247마력의 힘은 1695kg의 무게를 거뜬히 끌고 달린다. 원하는 속도까지 거침없이 속도를 올린다. 시속 200km도 쉽게 도달한다.

차는 부드럽다.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라기 보다 승차감이 우선되는 조금 소프트한 럭셔리 세단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승차감이 조금 더 중요하게 세팅됐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과속방지턱이 조금 높다 싶은 곳을 지날 때 범퍼 아랫부분이 노면에 닿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하이오너용 대형세단이라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오너가 직접 운전을 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운전 기사에게 핸들을 맡기고 뒷좌석에 앉아가기에도 좋은 차라는 의미다. 뒷좌석도 중요한 차라는 것이다. 뒷좌석 중앙에 있는 암레스트에 다양한 편의장치를 조절할 수 있는 컨트롤 패널도 있다. 체질에 맞지는 않지만, 혹은 그럴 처지가 아니지만 시승을 위해 핸들을 맡기고 뒷좌석에 앉아서 달려봤다. 나름대로 안락한 승차감에 몸이 차에 녹아든다.

스티어링 휠은 조금 크다. 조향성능이 부드러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핸들이 크면 많이 돌려도 차는 조금 움직일 뿐이다. 실제로 그렇다. 와인딩 로드에서 스티어링휠을 돌리면 차의 반응이 조금 늦고 조향성능도 약한 언더스티어링을 보인다. 승차감을 먼저 고려하는 차의 특성과 잘 들어맞는 조향성능이다. 때문에 운전자는 부드럽게 차를 운전하는 게 좋다. 조금 오버하면 차는 견디지만 탑승객이 힘들어지고 그 과정을 넘으면 차도 통제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시속 100km에서 급제동을 했다. 조향성능을 잃지 않으면서 생각보다 일찍 차가 섰다. 일상주행속도에서는 확실한 제동성능을 기대해도 좋겠다. 하지만 자동차의 안전장치는 어디까지나 안전보조장치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을 100%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회전반경 제어장치는 재미있다. VRS라는 이 장치가 조향바퀴의 조향각을 더욱 넓게 해줘 훨씬 좁은 공간에서 차를 돌릴 수 있게 해준다. VRS가 작동하는 상태에서는 스티어링휠이 3.5회전에 조금 못미칠 정도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를 해제하면 3바퀴를 조금 더 돌아가는 데 그친다. 회전반경도 차이가 있다. 좁은 공간에서 회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형세단에서는 큰 잇점이 아닐 수 없다. GH330 프리미엄의 판매가격은 4800만원. 오피러스의 가격대는 3,608만원부터 5303만원까지다. 이 가격이면 수입차에서도 고를 만한 차들이 많다. 브랜드 이미지를 빼면 다른 수입차들과 견줄만한 것으로 보입니다. 계급장 떼고 일대일로 붙으면 꿇릴 게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놈의 계급장, 즉 브랜드가 문제다. 브랜드가 약점이라는 사실은 기아가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오피러스에 ‘기아’ 엠블램이 없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기아 엠블램이 붙어 있으면 차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아’를 뗐지만 사람들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속아주지는 않는 것 같다. 후속 모델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본다.

오종훈의 單刀直入식욕이 왕성하다. 메이커발표 연비는 9km/l지만 계기판에서 알려주는 평균 연비는 5.5 안팍으로 6km를 넘기지 못한다. 주위에서 이 차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부분도 연비인 것을 보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몸무게를 좀 더 줄이고 엔진 효율을 올려 연비를 조금 더 개선했으면 좋겠다.디자인은 좋다. 하지만 차에서 가장 중요한 헤드램프 주변을 포함하는 앞부분의 디자인은 짚어봐야 한다.자존심 버려가며 다른 차의 것을 ‘참고’한 것이 사실이라면 창피한 일이다. 자동차를 베낀다며 중국을 욕할 처지가 못된다는 얘기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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