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운전면허시험 아직도 '물면허'다
운전면허시험이 강화된 지 갓 50일이 지났다. 벌써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온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운전면허를 '불면허'라고 칭하고, 이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종전 면허시험만큼이나 가볍고 나태하다.
새로운 운전면허시험을 살펴보면, 학과시험은 최근 개정된 법령과 교통법규 등을 추가해 문제은행 문항수가 730개에서 1000개로 증가했다. 장내기능시험은 T자 코스와 경사로 코스가 부활해 평가항목이 기존 2개에서 7개로 늘어났다. 도로주행시험 채점항목은 87개에서 57개로 줄었다. 차량 성능 향상에 따라 불필요한 항목을 제외하고 안전운전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리했다. 의무교육의 경우 학과 3시간, 장내기능 4시간, 도로주행 6시간 등 총 13시간이다.
주된 불만 대상은 강화된 장내기능시험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89.6%에 이르던 장내기능시험 합격률이 시험 개편 후 32.2%까지 떨어졌다. 장내기능시험의 주요 감점 요인은 T자 코스(30%)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2011년 시험 간소화 이전 면허취득자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요했고 엄격한 검증을 받았다. 과거 장내기능시험 평가항목은 15개로,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다. T자 코스의 도로 폭이 이전보다 50cm 줄었지만, 굴절 코스나 곡선 코스, 평행주차 등이 빠져있다. 여기에 당시 의무교육도 학과 25시간, 장내기능 20시간, 도로주행 15시간 등 총 60시간에 달했다. 간소화 이전 면허취득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물면허'이다.
대한교통학회에 따르면, 2011년 6월 운전면허시험 간소화 이후 1년간 초보운전 사고는 8250여건으로, 전년동기대비 22.9%나 증가했다. 2011년까지 꾸준히 감소하던 초보운전자 사망사고율(10만명당)도 2011년 1.81명에서 2013년 2.13명으로 2년 새 17.7%나 늘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경찰과 교통 전문가들은 면허시험 간소화에 따른 폐해로 분석한다.
이어 신규 면허를 '불면허'라 부르는 이들은 운전교육학원비가 올라 가계 부담이 높아졌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면허시험 기준 강화로 학원만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1월 전국 자동차학원비 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33.2%나 올랐다. 장내기능시험 강화에 따른 관련 시설 및 교육 인원 확충으로 평균 30만원 중반대의 학원비가 50만원 후반대까지 상승했다(2종 보통, 수도권 기준).
하지만 이 또한 해외 교통안전 선진국과 비교해 저렴한 수준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운전면허 취득시 국내보다 4~5배 이상의 비용이 발생했다. 유럽 일부 국가의 경우 면허 취득에 기본 6개월 이상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국내 차량 안전 기준이나 도로 주행 환경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OECD 32개국 중 29위에 머물러 있다(2014년 기준, 2017년 1월 국토교통부 발표). 첨단 안전사양 장착이 의무화되고 도로 안전 여건 개선에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결국 운전대를 잡고 차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면허시험 강화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전 미숙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을 줄일 수 있다.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없는 인명 피해까지 포함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면허 취득 비용보다 훨씬 더 저렴하다.
완전한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기 전까지 운전면허시험은 더욱더 까다로워져야 한다. 운전대를 잡는 본인은 물론,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불어 면허 갱신시 학과시험을 시행해 새롭게 바뀐 주요 법령 및 법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고령 운전자는 면허 갱신시 최소한의 신체검사가 필요하겠다. 면허 취소 처분을 받은 운전자가 재취득에 나선다면, 응당 합격선을 한 단계 더 올려야겠다. 면허시험이 쉽다고 해서 운전을 가볍게 해서는 결코 안된다.
신승영기자 sy.shin@motorgraph.com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www.motorgrap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