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페루 1호 프리미어리거' 놀베르토 솔라노 - 25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페루 1호 프리미어리거' 놀베르토 솔라노 <25>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적인 리그답게 많은 국적의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몇몇 국가 사람들에겐 자국의 1호 프리미어리거는 특별한 의미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헨릭 미키타리안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박지성이 그러하다. 그리고 페루 사람들에겐 이 선수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솔라노는 어릴 때부터 촉망받던 선수였다. 만 17세의 나이에 페루 리그 스포르팅 크리스탈에서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페루 리그 내에서 팀을 옮겨 다녔는데, 리그 우승을 3회나 기록할만큼 수상운도 있는 편이었다.
1997년 솔라노는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하며 좀 더 큰 물에 발을 담근다.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와도 함께 뛰며 많은 활약을 했지만, 보다 넓은 무대로 나가야한다는 야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던 199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이적 제의를 했고, 솔라노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페루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솔라노의 데뷔전은 1998/99시즌 프리미어리그 2R 첼시 FC전이었다. 그는 박수 갈채를 받으며 안드레아스 안데르센을 대신하여 경기장 안에 들어섰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뉴캐슬 팬들은 솔라노를 소중히 생각하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 했다.
하지만 솔라노가 그러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솔라노는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였다. 박스 안으로 날리는 크로스는 일품이었고, 날카로운 데드볼 역시 상대팀을 위협했다. 솔라노는 프리미어리그 데뷔 30경기 만에 1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뉴캐슬 팬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솔라노의 활약은 계속해서 꾸준했다. 1998/99시즌 팀이 FA컵 결승까지 오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2001/02시즌 인터토토컵 4강 1차전에서도 멋진 득점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당연히 팀도 2001년 6월 5년 연장 계약을 제의했고 솔라노가 이를 받아들였다.
솔라노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좌측의 로랑 로베르와 위력적인 윙어 라인을 구성했다. 좌 로베르, 우 솔라노 라인의 파괴력은 프리미어리그 수비진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뉴캐슬은 이로 인해 호성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행복만이 이어질 것 같았던 뉴캐슬 생활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2004년 1월 뉴캐슬은 솔라노의 아스톤 빌라 이적을 전격 발표했다. 이적 원인은 당시 뉴캐슬 감독 보비 롭슨과의 불화에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엔 괜찮았다. 하지만 점차 갈등이 올라왔고 결국 폭발했다. 롭슨 감독은 솔라노를 대체할 수 있는 리 보이어를 영입하며 그에 대해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솔라노는 "롭슨 감독과의 관계는 불편하다"며 둘 사이의 균열을 숨기지 않았다.
이적은 했지만 실력이 어디 갈리 없었다. 솔라노는 빌라 데뷔전이었던 프리미어리그 23R 레스터 시티전에서 5-0 대승에 기여하며 인상을 남겼다. 이후 성공적으로 빌라에 안착했다.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4/05시즌에 솔라노는 8골을 득점했는데 이로 인해 빌라의 해당 시즌 최다 득점자가 됐다.
빼어난 활약으로 인해 상복도 따랐다. 2004/05시즌 팬들이 뽑은 아스톤 빌라 올해의 선수, 동료들이 뽑은 아스톤 빌라 올해의 선수, 언론이 봅은 빌라 올해의 선수 모두 솔라노였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전개가 펼쳐진다.
2005/06시즌을 앞두고 솔라노가 뉴캐슬 복귀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솔라노의 활약이 대단했고, 빌라가 당시 스몰 마켓 팀이었기에 그의 이적은 확실시됐다. 문제는 이적할 팀이었다. 여러 팀들이 솔라노를 노렸으나 그는 뉴캐슬 복귀를 택했다.
그가 충격적인 복귀를 결정한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보비 롭슨 감독이 팀을 떠난 것, 뉴캐슬 팬들의 응원에 대한 그리움 등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요인도 중요했으나, 솔라노는 팀 동료들의 존재도 이적 결정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솔라노는 "팀 동료들의 존재도 복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뉴캐슬엔 절친한 친구 키에런 다이어가 있고, 팀의 지주 앨런 시어러도 있죠. 특히 시어러는 재키 밀번의 득점 기록 경신을 위해 노력 중인데, 제가 그를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적료는 한화 약 30억이었다. 여기에 제임스 밀너의 빌라 임대 옵션도 더해졌다.
복귀 후 활약이 훌륭했다. 솔라노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던 뉴캐슬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열심히 뛰고 공격수들에게 득점 기회를 창출해줬다.
2006/07시즌 솔라노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시 글랜 로더 감독 하의 뉴캐슬은 주전 라이트백 스티븐 카를 비롯 여러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했다. 라이트백으로 쓸 수 있는 선수가 없자 솔라노가 글렌 로더 감독에 의해 라이트백으로 출전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하지만 라이트백 역할도 잘 수행해냈다. 프리미어리그 라이트백 위치에서 레전드로 불리는 게리 네빌조차 "솔라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의 맞대결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패스 역시 인상적이었다"며 칭찬을 건낼 정도였다.
하지만 뉴캐슬과의 두 번째 이별이 찾아왔다. 그 과정이 좋진 않았다. 솔라노는 가족과 좀 더 가까운 런던으로 팀을 옮기고 싶어했다. 결국 2007년 여름 이적 시장에 런던에 있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둥지를 틀게 됐다.
솔라노는 2007년 10월 프리미어리그 10R 선덜랜드 AFC전에서 웨스트햄 데뷔를 했다. 그는 자책골로 선언되기는 했지만, 팀의 두 번째 골을 만드는 슈팅으로 팬들의 함성을 불러일으켰다.
솔라노는 12R 더비 카운티전 득점부터 38R 아스톤 빌라전 득점 등 제 몫을 해줬지만, 시즌 종료 후 웨스트햄과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계약 만료로 FA가 된 솔라노는 이후 여러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12년 하틀풀 유나이티드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EPL 최고의 순간
2004년 11월 22일 빌라가 프리미어리그 14R에서 토트넘 핫스퍼와 맞대결을 펼쳤다.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12분 빌라가 오른쪽 측면에서 코너킥을 얻었다. 토마스 히출스페르거가 올려준 공이 가빈 맥칸의 머리를 맞고 굴절되어 골문 앞으로 갔다.
상대 문전에 있던 솔라노는 두 번의 터치를 가져간 뒤 바이시클 킥을 찼다. 이 것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빌라는 솔라노의 이 유려한 골을 지켜내어 1-0 짜릿한 승리를 가져갔다.
◇플레이 스타일
날카로운 킥이 주무기인 선수였다. 문전으로 배달되는 칼날같은 크로스는 손쉽게 팀 동료들의 득점을 불러왔다. 이 남다른 킥 능력은 프리킥 상황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직접 득점, 어시스트 모두 가능했다. 수비력도 준수해 라이트백까지 커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프로필
이름 - 놀베르토 솔라노
국적 - 페루
생년월일 - 1974년 12월 12일
신장 및 체중 - 175cm, 69kg
포지션 - 라이트윙
국가대표 경력 - 95경기 20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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