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다양한 명소 중 어디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될 때 '여기다!'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그중 싱가포르에 위치한 나이트사파리는 여행자를 이끄는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동물원이었다. 이곳은 세계 최초 야간 동물원으로 1994년 개장한 이래 20년 넘게 싱가포르 최고의 관광상품으로 수차례 수상했던 곳이다. 저녁 7시가 넘어야 개장하지만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이곳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밤에만 오픈하다니, 어떤 특이한 동물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기대되네."
어둠에서 파랗게 빛나는 맹수의 눈을 그린 로고가 이곳의 아이디어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늦은 오후 버스를 타고 간 싱가포르 나이트사파리 입구는 생각보다 단출한 편이었다.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맹수의 눈을 그린 로고가 이곳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보통 테마파크에 가면 플라스틱 느낌이 나는 인공 벽이 가끔 있는데, 인공 계곡이나 절벽 느낌이 나게 꾸며 놔서 두드려보면 통통 소리가 나는 그런 의미 없는 화려함보다는 주위 열대 숲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허접스러운 외관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저녁 5시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많이 없길래 뭐야 싶었다. 하지만 비록 입구가 심심해보일지라도 무시하면 안 될 것이, 안에 들어가서 조금 있으니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해 개장 때가 되자 '물 반 고기 반'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미리 표를 사 놔서 좋네."
"그러니깐요."
나이트사파리 개장 직전에는 이렇게 사람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티켓 부스가 있지만 인터넷으로 미리 발권해간 우리 부부는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들어갔다. 관리가 굉장히 잘돼서 대기 시간이 길지는 않고 쭉쭉 빠졌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나이트사파리 티켓을 e바우처로 판매하는데, 우리 부부의 경우 대략 인당 2만6000원에 샀다. 동물원에서 직접 사면 비슷하거나 약간 더 비싸니 시간이 허락하면 미리 사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저기 쥐불놀이 봐봐 오빠."
"응?"
그녀가 쥐불놀이(?)같다는 불쇼 /사진= 홈페이지
벌꿀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동물원 옆 무대에서 두어 차례 불쇼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참 보면 볼수록 기름을 입에 품었다가 불을 향해 '요가파이어'를 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근데 저걸 보고 쥐불놀이라니….
드디어 아득하게 많은 사람과 함께 동물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코스를 트램을 타고 돌거나 직접 걸어 다닐 수 있는데 우리는 날이 아주 어두워지기 전에 동물들이 무대에 나와서 재롱잔치를 하는 '나이트쇼'를 먼저 보기로 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트램을 타고 동물원 본 코스를 돌아보고 나면 나이트쇼 보는 시간을 맞추기가 애매하다고 말한 것도 한몫했다. 결과적으로 적당히 어둑어둑할 때 보니 더 운치가 있었다.
적당히 어둑어둑 할 때 보니 더 좋았다. 입장하자마자 여기부터 가는 것을 추천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 수백 명이 소극장 공연처럼 둘러앉았다. 진행자가 나라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면서 "×× 나라에서 왔으면 소리 질러~~!!" 이런 걸 하는데 막상 가장 많이 온 관광객은 의외로 인도였다. 진행자가 "From India!!!" 하는데 여기저기 엄청 환호성이….
시작 전 신신당부한 주의 사항은 절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동물들이 깜짝 놀라고 자칫 실명할 수도 있어서 그렇단다. 이를 위해 각국 다양한 언어로 설명을 하는데 한국말로도 "플래시? 안 돼요! 소리 지르기? 안 돼요~" 이러면서 일일이 말한다. '얼마나 말을 안 들으면 저러나' 싶었는데 진짜 아니나 다를까 쇼 내내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져서 서로 주의 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뭐 자신의 폰 카메라가 오토플래시 모드인걸 모르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매로 보이는 새의 등장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
쇼 내용은 다양했다. 여느 동물쇼가 다 그렇듯이 자리에 앉은 관광객을 불러다가 동물과 함께하는 체험도 시키고, 귀여운 수달 한 마리가 등장했는데 훈련이 잘됐는지 아주 능숙하게 빈 캔과 플라스틱을 분리수거했다. 매로 보이는 새가 관람석 바로 옆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모습에는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진행자도 정말 웃겼다. 사람들이 일순간 박장대소하는 대목이 있는데 영어가 능숙하지 않다 보니 '도대체 저 타이밍에 왜 웃는거지?'란 자괴감이 살짝 들기도 해서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교훈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귀여운 수달의 분리수거
30~40분 가까이 진행된 나이트쇼였다. 내내 더 많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실 이런 곳은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황홀한 것이지, 사진만 왕창 찍어오면 정작 구경은 못하고 그 날을 온전히 느끼는 데 방해될 수 있기에 '적당히'가 중요한 것 같다.
나이트쇼가 애피타이저라면 걸어서 혹은 트램을 타고 코스를 돌면서 감상할 수 있는 나이트사파리 투어는 메인 디시일 것이다.
나이트사파리의 표범 /사진=홈페이지
사실 위 홍보사진처럼 극적으로 표범이 찍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말 직접 와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 은은한 조명으로 동물을 비춰주는데 대부분 10~20m밖에 안 되는 코앞에서 지나다녀서 굉장히 신선해 보였다. 벌꿀이가 나한테 계속 이래도 되냐고 의아해할 정도였다. 트램이나 사람들이 도보로 다니는 길로 동물들이 뛰어들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울타리도, 뭣도 없이 많은 동물이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돌아다닌다(나중에 알고보니 안 보이는 전기 울타리 식으로 둘러 놓았다고 하더라).
"이거 뭐야 훈련받은 거야? 울타리도 없는데?"
"그러게. 근데 맹수는 좀 멀리 있긴 하다. (웃음)"
정말 가까이 있는 밤비
와이프는 밤비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것을 처음 본다며 계속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가 봐도 사슴과 동물들은 다들 어찌나 귀엽던지. 우아한 자태의 플라밍고도 너무나 예뻤다. 어차피 저녁이라 잘 나오지도 않는 사진을 더 많이는 못 찍고 대부분 뚫어져라 구경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한낮의 동물원만 가 봤는데 적막한 밤에 사랑하는 사람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동물을 보는 경험은 아주 로맨틱했다.
나이트사파리의 플라밍고 친구들
"오빠, 나는 사실 싱가포르 하면 '칠리크랩 사줘' 같은 소리나 했는데 덕분에 저녁에 좋은 구경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