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복서, 스바루 임프레자

GT-R과 로터리 엔진이 포장도로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울 때, 험로에선 또 다른 강자가 등장했다. 바로 스바루 임프레자(Impreza)다. 임프레자는 WRC(월드랠리챔피언십)를 위해 태어났다. 반듯한 생김새를 뽐내지만 내공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스바루의 자랑인 복서 엔진,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을 담아 3년 연속(1995~1997년) WRC 무대를 제패했다. 이후 임프레자는 총 47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업적을 남겼다. 임프레자는 이탈리아어로 ‘업적’을 뜻한다. 

복서 엔진이 뭐야?

수평대향 엔진은 실린더가 좌우로 움직인다. 마치 권투선수가 두 주먹을 뻗는 모습과 비슷해 ‘복서(Boxer)’ 엔진이라고 부른다. 지난 1966년, 스바루의 모기업 후지중공업은 그들의 첫 번째 앞바퀴 굴림 승용차 ‘스바루 1000’을 출시했다. 보닛 속에 수평대향 4기통 977cc 수랭식 심장(EA55)을 얹었다. 푸시로드 방식의 오버헤드 밸브(OHV)를 달았고, 6,000rpm에서 최고출력 55마력을 냈다. 최고속도는 시속 135㎞.  

복서 엔진은 폭이 넓은 대신 무게중심이 낮아 운동성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단점도 있었다. 유니버설 조인트(두 축이 비교적 떨어져 있거나 두 축의 각도가 큰 경우에 이를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커플링의 일종)에서 생기는 진동이었다. 스바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일본의 베어링 전문 업체 ‘토요 베어링(Toyo Bearing)’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더블 옵셋 조인트(Double Offset Joint)’를 개발해 스바루 1000의 진동을 줄였다. 

사륜구동 탄생 비화 

1971년, 스바루는 네 바퀴 굴림 승용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바로 FF-1 1300G를 통해서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원래 이 차는 앞바퀴 굴림(FF)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스바루는 일본의 ‘도호쿠 전력’으로부터 “사륜구동 버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당시 도호쿠 전력은 업무용 차로 지프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히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겨울철 업무에 지장이 많았다. 또한, 지프가 워낙 구닥다리 디자인이어서 좀 더 현대적인 모양의 자동차를 원했다.  

스바루는 곧바로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에 뒷바퀴 굴림 자동차를 만든 적 있어 어렵지 않게 응용할 수 있었다. 드라이브 샤프트를 뒤쪽의 변속기와 물리고 디퍼렌셜을 심어 뒷바퀴를 굴렸다. 다양한 노면에 대응하기 위해 지상고는 앞바퀴 굴림 모델보다 20㎜ 더 높였다. 스바루는 총 8대의 사륜구동 FF-1 1300G를 생산했고, 이 중 5대를 도호쿠 전력에 팔았다. 나머지 3대는 일본 나가노현에 자리한 하쿠바(산촌마을)에서 농업용으로 구입했다. 

WRC에 도전장, 임프레자 

사진 : 레거시(Legacy)

스바루는 1980년부터 WRC에 참가했다. 당시 경주차는 레거시(Legacy). 임프레자의 ‘형님’ 격 모델이다. 그러나 WRC 주최 측은 규정을 바꿔 레거시보다 작은 차를 원했다. 결국 스바루는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임프레자를 개발한다. 

1세대 임프레자는 1992년 11월 등장했다. 최초엔 4도어 세단과 5도어 해치백, 5도어 왜건 등 총 3가지 모델로 나눴다. 또한, 구동방식은 앞바퀴 굴림(FF)을 기본으로 상시사륜구동(AWD)을 더할 수 있었다. 보닛 속엔 1.6L, 1.8L, 2.0L 등 3가지 복서 엔진이 들어갔다. 몸무게는 1,220㎏(공차중량 기준). 

랠리를 위한 임프레자는 WRX 배지가 붙었다. 2도어 쿠페 버전의 WRX는 엔진의 출력을 240마력으로 높이고, 뒤 차축에 LSD(차동제한장치)를 곁들였다. 또한, 경량화를 위해 오디오, 에어컨, 윈도우 모터 등을 없앴다. 이듬해 등장한 WRX STi 버전은 최고출력 275마력을 뽐냈다. 이니셜 D 속 후지와라 분타의 애마가 바로 이 차다. 

전설의 탄생, 임프레자&콜린 맥레이 

1995년, 스바루 월드 랠리 팀은 새로운 머신과 함께 WRC에 참가했다. 운전대를 잡은 선수는 스코틀랜드 출신 콜린 맥레이(Colin Steele McRae). 그는 뼛속부터 ‘랠리 DNA’를 갖고 태어냈다. 아버지 지미 맥레이는 5차례 브리티시 랠리 챔피언 출신이고, 형 알리스터 맥레이 또한 프로 선수였다. 콜린의 경력도 화려하다. 16살부터 랠리를 시작해 1991년과 1992년 브리티시 랠리 챔피언에 올랐다.

콜린과 임프레자의 시너지는 압도적이었다. 그 해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과 드라이버즈 챔피언십을 모두 가져왔다. 게다가 1996~1997년 3년 연속 종합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후 스바루는 18년 동안 총 47회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고, 콜린은 드라이버 통산 25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임프레자하면 이 차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이하 란에보)이다. 란에보는 전설적인 드라이버, 토미 마키넨(Tommy Makinen)과 함께 WRC에 참가했다. 자존심을 건 두 팀의 한 판 승부가 짜릿한 흥분을 낳았다. 란에보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4년 연속 우승하며 또 다른 신화를 남겼다. 

랠리 카의 현재 

임프레자는 현재 5세대까지 진화했다. 그러나 스바루는 임프레자에서 WRX 계급장을 떼어냈다. 2014년부터 둘 사이를 갈라놓으면서 WRX는 독자 모델로 거듭났다. 

스바루는 지난 1월,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신형 WRX와 WRX STi를 공개했다. 4도어 차체와 큼직한 공기 흡입구, 대형 리어 윙 등 1990년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았다. 차체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595×1,795×1,475㎜. 현대자동차 아반떼와 비슷한 크기다. 반면 WRX의 보닛엔 공포스러운 심장이 똬리를 틀었다. 

고성능 버전인 WRX STi는 직렬 4기통 2.5L 가솔린 수평대향 엔진을 품었다. 최고출력 305마력, 최대토크 40.1㎏·m를 뿜는다. 여기에 6단 수동변속기를 짝지어 네 바퀴를 굴린다. 또한, 19인치 알루미늄 휠과 요코하마의 고성능 타이어를 끼웠다. 안쪽엔 앞 6피스톤, 뒤 2피스톤 캘리퍼 물린 브렘보 고성능 브레이크를 곁들였다.  

속살은 2018년형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반듯한 센터페시아 디자인과 우뚝 솟은 사이드 브레이크 등이 다소 나이든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 하지만 알칸타라 씌운 레카로 버킷시트, 두툼한 스티어링 휠, 빨간색 안전띠로 포인트를 줬다. 또한, 앞좌석 창문엔 이중접합 차음 유리를 넣어 정숙성도 신경 썼다. 

임프레자는 진흙탕 싸움을 좋아하는 복서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이제 WRC에서 만날 수 없다. 현재 WRC 무대엔 크기가 작은 B세그먼트 경주 차들이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자리를 잃은 란에보도 생을 마감했다. 과연 WRX의 운명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글 강준기 기자|사진 스바루,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