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을을 읽다] (12) 광진구 건대입구역, 미국·유럽 쇼핑몰을 걷는 듯..COME ON! 커먼 그라운드
[경향신문]

서울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2번 출구로 나가다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지하철 7호선 환승역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에 와글거리는 대학생까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강남의 직장인들까지 북적거리는데 하루 지하철역 유동인구 12만명을 실감하고도 남았다.
건대입구 하면 먹고 마시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 옛날 닭갈비집을 떠올리며 ‘맛의 거리’로 들어서자 거미줄처럼 늘어선 전깃줄을 따라 현란한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떡볶이, 포장마차, 돼지갈비, 생선회, 뽑기인형, 노래방, 한정식 전문점까지 차 한 대가 다닐 만한 골목을 따라 문이 끝없이 열리고 닫혔다.
“홍대, 강남, 명동, 종로, 그다음이 건대입구죠.” 화양동장 김용식씨(55)가 “서울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 중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곳이 건대입구”라고 했다. 건대입구 주민의 70%가 1인 가구, 하숙생이거나 나홀로족이다. 건국대, 세종대, 한양대 등이 가까이 있다보니 10대와 20대 입맛을 겨냥한 맛집이 많다. 이 거리에 있는 음식점은 무려 500여개. ‘혼밥’ ‘혼술’ 집도 여럿인데 강남이나 종로에서 꽤나 유명한 체인점도 눈에 들어왔다.

길모퉁이를 돌아 초밥집에 가보니 줄지어선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혼자다. 주문표를 뽑아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청년들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한 끼를 때우고 있었다. 일본의 가케우동집 같기도 하고, 옛날 기차가 떠나기 전 후다닥 우동 한 그릇을 비우던 기차역 휴게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하철 7호선이 지나가는 능동로를 따라 늘어선 노점들이었다. 어묵과 떡볶이, 꼬치류를 파는 것은 물론이고 타로점집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천막을 열고 들어가 5000원을 주고 심심풀이로 카드 3장을 골랐는데 신기하게 다 맞췄다.

옷집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5000~9900원까지 의류점마다 한창 세일 중이었다. 헤어숍은 무려 200개가 넘었다. 커트와 염색에 영양제까지 바르는 데 5만~7만원. 강남 청담동이나 이대 앞이라면 30만원은 필요할 텐데, 가격이 착했다. 피트니스, 요가 등 스포츠센터와 마사지, 네일아트, 속눈썹 관리점까지 마냥 예뻐지고 싶은 여대생들의 발걸음은 생기발랄했다.
길 건너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건대 앞이 젊음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문화의 거리로 변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분수광장에서 젊은 인디밴드의 무료 공연이 2시간 동안 펼쳐지는데 올해로 5년째다. 100개가 넘는 좌판이 늘어서는 수공예품 ‘프리마켓’도 열리는데 업사이클링, 친환경 예술문화 상품 등 귀엽고 앙증맞은 디자인 제품이 잘 팔린다. 주말에만 평균 1000명이 여기에 모인다고 하니 가히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양꼬치 어떠세요.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중국음식문화거리인데 리틀 차이나타운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속이 출출해질 때쯤 광진구청 채수진씨(43)가 양꼬치거리로 안내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닭꼬치처럼 양고기를 나무꼬챙이에 구워 팔겠거니 했지만 낯선 풍경에 깜짝 놀랐다. 중국어와 한글이 뒤섞인 50여개의 붉은 간판에 그만 압도당했다.
양꼬치거리가 생긴 것은 1980~1990년대 성수동 일대 외국인 근로자들이 서울에서 비교적 방값이 싼 단독,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면서부터다. 최근에는 인근 대학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2600명 넘게 들어오면서 차이나타운으로 바뀐 것이다. ‘羊肉串’(양육관·양꼬치집), ‘冷面’(중국냉면), ‘電話房’(국제전화방)과 생활용품을 파는 슈퍼, 휴게실과 환전소도 눈에 띄었다. 600여m 골목을 따라 독특한 억양으로 한국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바로 옆 로데오거리로 향했다. 1995년부터 유명 브랜드점이 하나둘 모여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로데오거리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디자이너 브랜드, 캐주얼, 스포츠 의류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세어보니 고작 3개에 불과했다. 모두 음식점에 자리를 내준 것이었다.
로데오거리를 따라 5분 정도 걷다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진짜 많이 모이는 ‘핫 플레이스’는 따로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컨테이너 매장이라니…. 새파란 철근 구조물로 이뤄진 ‘커먼 그라운드’는 미국이나 유럽의 소도시 미니 쇼핑몰 같았다. 원래는 대한상운이 소유하고 있던 택시 차고지였는데 12m 길이의 컨테이너 200개를 얹고 붙여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복합 쇼핑몰로 문을 열었다. 푸드트럭에서 핫도그를 사들고 쇼핑몰 안으로 들어섰다. 빈티지 재킷과 야구모자, 디자이너 슈즈까지 깔끔하고 독특한 매장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주말에는 생동감 넘치는 디스코파티, 맥주와 패션 축제 등이 펼쳐진다고 하는데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해질 무렵 지하철을 타기 위해 2번 출구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했다. 이름도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밴드 공연에 길가던 사람들이 환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어깨를 흔들었다.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골목골목에 도시 불빛이 흔들렸다. 그 골목마다 꿈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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