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E-CVT가 뭐에요?
렉서스 ES300h의 매력 중 하나는 ‘침묵의 가속’이다. 엔진회전수를 가급적 낮게 유지한 채 부드럽게 속도 높일 때의 느낌은 낯설면서도 안락하다. 렉서스 하이브리드 시스템 전용 자동변속기 ‘E-CVT’가 안기는 특별한 경험이다. 오늘날 자동변속기와 무단변속기(이후 CVT, Continuously Variable Transmission)는 서로의 장점을 도입해 진화하는 중이다.
자동변속기는 주행상황에 따라 특정 기어비의 톱니를 골라 문다. 이처럼 기어를 갈아탈 때 가속이 끊기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반면 무단변속기는 두 개의 원뿔 모양 ‘풀리(Pulley)’를 벨트로 연결한 구조. 금속 또는 고무로 만든 벨트는 두 풀리의 서로 지름이 다른 지점을 오가며 기어비 바꾸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기어를 단수별로 갈아타는 과정이 없다.
ES300h를 포함한 토요타·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모두 ‘E-CVT’를 쓴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여느 제조사의 CVT와 구조가 완전 딴판이다. 성능과 연비를 동시에 높이기 위해 만든 하이브리드 전용 CVT다. 심지어 렉서스 중에서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지 않은 차종은 쓸 수조차 없다. ES300h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예로 살펴보자.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구동계는 두 개의 전기 모터를 쓰는 직병렬형이다. 동력분기형 또는 동력분할형이라고도 부른다. 직렬형은 엔진이 구동바퀴를 직접 굴리지 않는다. 엔진이 전기를 만들어 모터를 통해 바퀴를 굴린다. BMW가 i3의 주행거리연장 옵션인 소형 엔진이 대표적 예다. 병렬형은 상황에 따라 엔진과 전기 모터가 각각 또는 따로 구동력을 전한다.
반면 렉서스의 동력분할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직렬과 병렬형을 합친 구조다. 사실 전기 모터 한 개만으로도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토요타는 굳이 두 개를 단다. 효율성 때문이다. 전기 모터를 한 개만 달면 구동 바퀴를 굴리면서 동시에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다. 하지만 충전을 전담하는 전기 모터를 따로 달면 언제든 가능해진다.
우선 전기 모터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기 모터는 양극과 음극을 바꾸면 발전기(제너레이터)로 변한다. 따라서 관성으로 달리거나 제동할 땐 전기 모터를 발전기로 바꿔 쓸 수 있다. 그래서 렉서스는 전기 모터를 ‘모터-제너레이터’의 약자인 MG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방식이 갖는 한계 또한 여기에 있다. 가속 땐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구동력을 담당하는 전기 모터가 따로 있다. 렉서스는 충전용을 MG1, 구동용을 MG2라고 부른다. 이들 전기 모터는 ‘동력분할기구(Power Split Device)’와 하나 되어 변속기 역할도 한다. 토요타는 이 구조를 ‘전자식 CVT’를 뜻하는 ‘E-CVT’라고 부른다. E-CVT의 동력 분할 기구는 렉서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핵심이다.
동력분할기구는 유성기어를 이용해 엔진과 구동 모터, 충전 모터의 작동을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유성기어는 하나의 톱니바퀴를 여러 톱니바퀴가 감싸는 구조다. 선(Sun) 기어를 중심으로 여러 톱니바퀴가 행성(Planet)처럼 에워싼 유성기어(Planetary Gear)로 힘을 증폭시킨다. 롤 케이크처럼 3겹으로 각각의 기어를 감싼 형태에 가깝다.
맨 안쪽의 ‘선 기어’는 충전용 모터, 가운데의 ‘피니언 기어’는 엔진, 바깥의 ‘링 기어’는 구동용 모터와 맞물린다. 나아가 이 기어들은 서로 맞물려 움직인다. 가장 바깥의 링 기어를 움직여 동력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특정 기어를 멈추거나 각 기어를 연결하는 캐리어의 움직임을 조절해 전체 기어의 작동 상황을 바꾸거나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출발 또는 낮은 속도로 달릴 땐 엔진과 맞물린 피니언 기어의 캐리어를 고정한다. 그리고 전기 모터로 링 기어를 굴린다. 이때 피니언 기어는 회전을 멈추고 안쪽의 선 기어와 링 기어를 연결하는 역할만 맡게 된다. 이를 통해 링 기어를 돌리면서 동시에 선 기어를 돌려 구동 모터를 사용하는 동시에 충전용 모터도 돌린다.
속도를 높이면 피니언 기어의 캐리어를 풀어 엔진의 시동을 건다. 엔진과 구동 모터의 힘을 합쳐 모든 기어가 전부 회전하는 단계다. 하지만 이 때도 유성 기어는 각 기어의 작동 속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주행 속도와 관계없이 엔진회전수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그 결과 작동원리는 다르지만 CVT와 같은 효과를 낸다.
동력분할기구는 ‘파워 컨트롤 유닛(Power Control Unit)’이 제어한다. 주행속도, 도로상태, 엔진출력, 운전자 입력 등 여러 변수를 조합해 유성기어 및 엔진과 구동 모터의 조합을 실시간으로 바꾼다. 이를 통해 주행 중 배터리 충전 효율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모터를 최대한 많이 써서 연비를 높여야 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특성에 어울리는 구조다.
이 때문에 E-CVT는 엔진회전수와 주행속도가 비례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속이 더없이 매끄럽되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소리 없는 가속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반면 일반적인 자동변속기는 고정 기어를 사용해 엔진과 변속기를 단단히 연결한다. 따라서 엔진회전수와 속도가 같이 오른다.
E-CVT를 비롯한 CVT가 스포츠 주행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편견이다. ES300h는 최고출력 158마력의 직렬 4기통 2.5L 앳킨슨 사이클 엔진에 143마력짜리 모터 맞물려 시스템 출력 203마력을 낸다. 가장 효율이 좋은 조건을 유지한 채 채로 달려나가는 덕분에 가속이 기대 이상 매섭다. 안정감 때문에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E-CVT의 장점 중 하나는 소형·경량 구조다. 크고 무거운 변속기 대신 모터 2개와 동력 분할 기구를 합친 E-CVT를 달아 무게를 줄이고 효율을 높였다. 하지만 렉서스 ES300h를 경쟁자로 꼽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은 대부분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구동 모터 1개를 단다. 특허 때문에 토요타가 쓰는 유성기어 방식의 동력분할기구를 사용할 수 없어서다.
토요타가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콘셉트를 공개한 해는 1977년이다. 소형 스포츠카 ‘스포츠 800’에 소형 터빈 엔진과 전기 모터 달아 하이브리드 콘셉트로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황당한 꿈 같았다. 하지만 토요타는 딱 20년 후인 1997년 첫 하이브리드 양산차인 ‘프리우스’를 내놓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쌓아놓은 하이브리드 관련 특허는 수천 개가 넘는다.
렉서스는 E-CVT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GS450h는 전기 모터에 2단 감속기를 달았다. 저속에서는 저단을 사용해 모터의 가속력을 높이고, 고속에서는 고단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달리기 위해서다. LC500h에서는 E-CVT와 4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한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 구동계도 선보였다. 가상 기어비 기술을 이용한 수동 10단 변속 기능을 더해 ‘운전의 재미’를 살리겠다는 이유에서다.
글 로드테스트 편집부사진 렉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