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 긴 직장일수록 '유리천장' 더 두꺼워진다

조형국 기자 입력 2017. 3. 1. 16:19 수정 2017. 3. 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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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주당 24시간 초과근로하면
ㆍ관리직 여성 비율 12%P 줄어
ㆍ“일·가정 양립 위해 규제를”

서울에서 유통회사에 다니는 커리어우먼 장모씨는 회사 내에서 ‘독한 과장’으로 소문나 있다. 가장 빠른 출근, 가장 늦은 퇴근, 주말도 휴일도 없이 회사를 지키는 장씨를 두고 주변에서는 “승진에 목숨 건 것 같다”고 수군댄다. 직장생활 9년차로 장씨와 함께 입사한 여성 동기들뿐 아니라 위아래 몇 기수를 훑어도 남은 여성은 장씨뿐이다. 나머지는 결혼과 출산,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밤낮 가리지 않는 호출, 일이 없어도 붙어 있어야 하는 야근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갔다.

정부가 수년째 저출산·고령화 해소, 여성 사회 진출 확대, 양성평등 증진을 위해 일·가정 양립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초과근로를 버티지 못하는 여성이 관리자가 되긴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하는 ‘노동정책연구’에 실린 ‘장시간 근로와 조직: 초과근로시간이 여성 관리직 비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초과근로시간이 많은 회사일수록 여성 관리자 비율이 낮았다. 또 장시간 노동은 생산성을 낮추거나 업무 비효율을 유발하는 병폐 외에도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요인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는 2005~2013년 노동연구원 사업체 패널조사에 2년 이상 참가한 총 8180개 사업체의 과장·차장·부장·임원급 관리직 비율을 조사했다. 근로기준법상 1주일 최대 근로시간인 52시간을 넘기는 경우, 여성 관리자 비율이 최대 10%포인트 이상 차이를 보였다.

2013년 기준 최대 근로시간 52시간을 지키는 기업(초과근로 0시간)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4.93%였다. 3시간 더 일하는 회사에서는 13.41%, 6시간 더 일하는 회사에서는 11.88%로 떨어졌다. 주말근무를 하거나 매일 야근을 해 1주일 초과근로시간이 12시간을 넘는 회사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8.82%, 24시간 초과근로를 하는 회사는 2.71%로 급감했다. 초과근로 0시간 회사에서는 관리직 100명 중 14명이 여성이지만 24시간 초과근로를 하는 회사에서는 100명 중 2명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불평등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2005년에는 초과근로 0시간 업체의 경우 여성 관리직 비율이 9.21%였고 2013년에는 14.93%로 5.72%포인트 늘었다. 반면 초과근로 24시간 업체의 여성 관리직 비율은 같은 기간 0.58%에서 2.71%로 2.13%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전체 관리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근로시간이 긴 회사는 그 속도가 훨씬 더디다는 뜻이다. 근로시간이 긴 회사일수록 가사나 육아에 부담을 느낀 여성들이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5년 기준 한국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3번째로 길다. 기혼 여성의 44%는 경력단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 긴 노동시간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막아 소득격차와 남녀 간 지위 불평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해결이 시급하다.

보고서는 “장시간 근로가 만연할수록 관리직 비율의 성 편향성은 강화된다”며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장시간 근로를 엄격히 규제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긴 근로시간으로 생산성을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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