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스토리] '유쾌한 일탈' 코스프레의 세계

이창수 2017. 2. 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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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영국 영웅 추도 위해 분장 시초/ 미국·일본 거쳐 국내서도 열풍 일어/'철부지 취미' 인식 달리 중년도 즐겨/'프로 코스어' 등장.. 연예인 못지않아/ 일본 캐릭터 노출 심해 선정성 논란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SETEC 전시장에서 열린 ‘서울 코믹월드 애니메이션 코스프레’에서 참가자들이 만화 주인공을 모방하는 ‘코스튬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하상윤 기자
지난 10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코스프레’란 지적은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권한대행의 업무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을 하는 게 아니냐는 야당의 비판에 대한 반응이었다. 황 권한대행의 발언이 알려지자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코스프레’가 주요 검색어로 부상했다.

‘대통령 코스프레’ 말고도 ‘피해자 코스프레’, ‘서민 코스프레’ 등등 코스프레를 활용한 조어는 많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 재벌·정치인이 서민인 척하는 걸 비꼬고 있다는 점에서 보듯 그닥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영어 표현처럼 들리지만 코스프레는 사실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의 일본식 조어다. 국립국어원은 ‘만화, 영화, 게임 등에 나오는 주인공과 똑같이 분장하여 따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코스프레란 단어의 일상화는 코스프레 문화의 확산에 힘입은 바 크다. 왜색, 선정성 등의 논란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소소한 취미로 즐기는 대학생, 직장인들이 부쩍 늘고 있고,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만화 `원피스` 루피·조로 코스프레
◆유럽→미국→일본, 코스프레 세계를 넘나들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로 분장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일본에서 비롯된 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코스프레의 기원은 중세의 영국이다. 영웅에 대한 추도식 때 영웅이 활약하던 시절을 대표하는 옷이나 분장을 한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문화가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당시 유행하던 DC코믹스나 마블 코믹스 등 인기 캐릭터의 의상을 만들어 입는 이벤트로 재활용됐다. 이것이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 만화, 게임, 영화, 연예인 등 다양한 장르의 캐릭터로 분장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일본이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을 이끌게 되면서 각국의 코스프레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주를 이루게 되는 등 코스튬 플레이는 코스프레란 일본식 이름으로 전 세계에 ‘역수출’된다.

LOL 케이틀린 코스프레
일본에서는 2009년부터 ‘세계 코스프레 서밋(World Cosplay Summit)’이란 세계적 규모의 코스프레 경연대회가 열린다. 외무성이 후원하는데 20여개 나라에서 수백명의 ‘프로 코스어’(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들이 참가하고 있다.
‘PC통신’ 시절이던 1998년 매달 마지막 토요일 서울 대학로에서 소수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코스프레 행사가 열렸다. 당시 관련 기사
국내에서 1998년 3월 한 만화전문잡지가 개최한 행사에서 첫선을 보였다. 당시 30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부터 시작된 아마추어 만화 종합 행사인 ‘서울 코믹월드(서코)’나 ‘부산 코믹월드(부코)’ 등을 통해 코스프레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까지 146회가량 진행된 서코는 매번 행사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수천명의 아마추어 코스어들이 모여든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최된 ‘2016 세계 코스프레 서밋’에서 각국의 참가자들이 코스프레 경연 중인 모습들.
◆철 모르는 아이들 놀이(?)…40대의 중년도 즐긴다

휘황찬란한 옷에다 색색의 가발을 쓴 젊은이들. 코스프레를 상징하는 이미지이고 편견어린 시선은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 코스프레를 취미로 즐기는 학생이나 직장인 등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철모르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란 인식과 달리 코스프레 행사장에는 20∼30대는 물론 40대 참가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 코스어들은 무엇보다 “바쁜 일상과 완벽히 동떨어질 수 있단 점이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때부터 코스프레를 즐기고 있다는 직장인 이진성(30)씨는 “처음에는 휘황찬란한 만화 캐릭터 옷을 입는 게 어색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연출하고 옷이나 장비를 하나둘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와 코스프레 행사장을 몇번 찾았다는 직장인 한모(45)씨도 “처음엔 편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람들이 스스로를 꾸미고 한데 모여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취미가 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4만명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한 코스프레 동호회에서는 회원들이 서로 코스프레와 관련한 노하우를 나누거나 주기적으로 함께 모여 코스프레 촬영 행사를 진행하는 등 코스프레를 즐긴다.
LOL 잔나 코스프레.
수년 전부터는 코스프레를 직업으로 삼는 ‘프로’ 코스어들도 등장했는데, 연예인처럼 팬덤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국내 프로 코스프레 팀 ‘RZ COS’의 박지훈 대표는 “코스프레가 ‘오타쿠’만의 문화란 것은 편견”이라며 “코스프레를 직접 체험하는것, 보는 것 등은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정성·왜색 문제는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자성

편견이 아닌 냉정한 시각으로 코스프레를 평가했을 때 종종 문제가 되는 게 선정성과 왜색이다. 코스프레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킹오브파이터즈 마이 코스프레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대부분이 워낙 노출이 심하기 때문에 이를 재현한 코스프레도 선정성 논란이 계속됐다. 코스어들 사이에서 이른바 ‘엄코(엄한 코스프레)’라 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내 코스프레 도입 초창기부터 게임 ‘킹오브파이터’에서 노출이 심한 캐릭터로 나오는 ‘시라누이 마이’는 ‘금단’ 취급을 받기도 했다. 코스프레 행사가 열리면 주최 측이 참가자들에게 “노출이 심한 옷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는 이유다.

일본에서는 코스프레가 성산업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유흥업소 여성에게 여러가지 의상을 입히는 것이다. 승무원이나 간호사 등 복장을 한 여성 종업원을 내세운 유흥업소인 ‘이메쿠라’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코스프레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최근엔 AV(성인 비디오)업계나 야쿠자 등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코스프레 시장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프레를 콘셉트로 한 AV회사가 등장하거나 AV배우가 ‘코믹마켓’이나 ‘코스홀릭’ 같은 대형 코스프레 이벤트에 참가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최된 ‘2016 세계 코스프레 서밋’에서 각국의 참가자들이 코스프레 경연 중인 모습들.
‘왜색 논란’도 종종 불거진다. 2009년 8월 15일 광복절에 진행된 ‘서코’에서는 관련 논란이 일자 코스프레가 일절 금지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부산에서 열린 코스프레 행사 사진 일부가 일본 극우사이트에 올라 일본 네티즌의 비아냥 대상이 된 것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서 왜색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글=이창수 기자, 사진=하상윤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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