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umer Journal] 辛맛에 빠진 대한민국
'땀 뻘뻘' 먹으면 스트레스 해소..불황일수록 매운 음식 찾게 돼
치킨·피자·라면·떡볶이..식품·외식업체 '핫'한 전쟁

'매운맛 마니아'를 자처하는 직장인 박 모씨(33)는 요즘 새로운 '강적'을 만나 전의를 불태운다. 국내 인스턴트 라면 가운데 가장 매웠던 팔도 틈새라면 빨계떡을 제치고 '매운맛의 왕좌'를 차지한 삼양식품의 '핵불닭볶음면'이 상대다. 매운맛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 스코빌 지수(SHU·Scoville Heat Unit)를 기준으로 핵불닭볶음면의 스코어는 8706 스코빌. 맵기로 정평이 난 기존 불닭볶음면(4404 스코빌)의 약 두 배, 2위로 내려앉은 틈새라면 빨계떡의 8557 스코빌을 뛰어넘는 수치다.
단 한 입만 먹어도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지만 박씨는 그 매운맛의 매력을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요즘 경기도 어렵고 탄핵 정국으로 국내 정세도 어지러운데 이렇게 매운 음식을 먹다보면 아무 생각 없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다"며 "매운 음식을 정복할 때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풀리고 일종의 성취감도 느껴져 앞으로도 더 매운 음식을 찾아 도전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씨처럼 매운맛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한정판으로 출시된 핵불닭볶음면은 출시 한 달 만에 '완판(완전판매)'에 성공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에 삼양식품은 핵불닭볶음면의 추가 생산을 추진 중이다.
대한민국이 매운맛에 빠졌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매운 음식이 인기다. 상상을 초월하는 매운맛 라면, 소수 마니아들이 선호하던 매운 떡볶이가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매운 치킨에 햄, 피자까지 줄줄이 등장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야말로 매운맛의 전성시대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으로 느낀다. 맛이 아니라 고통의 영역이다. 오죽하면 매운맛을 내는 고추의 이름이 고통을 주는 풀 '고초(苦草)'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을까.
하지만 한국인에게서 매운맛을 빼고 음식을 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음식을 먹다 보면 세상 만사가 한 그릇 음식 앞에 어느새 잊히게 마련이다. 실제로 매운맛의 핵심 성분인 캡사이신은 뇌신경을 자극해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고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고통을 느끼는 '통각' 신경이 자극되면서 통증 완화를 위한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 전환을 유도하는 일종의 자연산 유도제인 셈이다.
그래서 매운 음식은 불황일수록 오히려 잘 팔리게 마련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내 경기 침체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매운 음식의 인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매운 라면에 치즈를 첨가하는 등 자신만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디슈머'가 증가하고 있어 더 다양한 형태의 매운 음식이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매운맛 1~6위 라면인 이들의 스코빌 지수는 4000~8706 스코빌. 매운 청양고추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뜨겁게 먹는 라면의 특성을 감안하면 체감하는 매운맛은 훨씬 강하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스코빌 지수가 높은 라면들은 대체로 강한 캡사이신으로 첫맛(톱노트)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며 "끝맛(보텀노트)에 감칠맛, 단맛, 짠맛, 신맛 등을 복합적으로 배합해 어떻게 '맛있게 매운맛'을 내느냐가 대중적 인기를 가르는 척도"라고 강조했다.
치킨 업계는 일찌감치 '치즈의 시대'를 지나 '매운맛의 시대'를 열었다. 신호탄은 굽네치킨이 쏘아 올렸다.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매운 치킨 '굽네 볼케이노'가 주인공이다. 2015년 12월 첫선을 보인 굽네 볼케이노는 출시와 동시에 뜨거운 인기를 끌며 지난해 연간 1200억원에 달하는 판매액을 기록했다. 치킨에 버무려진 매운맛 '마그마 소스'에 밥을 비벼 먹는 사람들이 나타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BHC는 지난해 '맛있게 매운맛'을 강조한 '맵스터' 치킨을 선보여 출시 한 달 만에 월매출 50억원을 돌파하며 관심을 모았다. 맵기로 유명한 멕시코산 고추 하바네로와 청양고추로 만든 레드핫칠리페퍼소스에 치킨을 버무려 마늘과 대파, 청고추 등 아릿한 채소를 추가로 얹은 제품이다. 도전 정신이 강한 소비자들을 위해 '맵스터 더매운맛'까지 잇따라 선보이며 마니아층 공략에도 나섰다. BBQ는 청양고추와 베트남 고추를 소스로 활용한 중화풍 매운맛 치킨 '마라핫'을 내놓고 경쟁을 본격화했다.
식품·외식업계는 매운맛을 찾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다양한 신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당장 피자업체 파파존스가 올해 처음 내놓은 신메뉴는 '타바스코 핫치킨 피자'다. 타바스코 소스로 매콤한 풍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순살 치킨과 같은 채소, 모차렐라 치즈가 어우러져 '맛있게 매운맛'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이다. 동원F&B는 지난해 8월 업계 최초로 매운맛을 더한 캔형 햄 제품 '매운 리챔'을 내놨고, 사조해표는 지난해 11월 '사조 더 매운 고추참치'를 선보였다. 떡볶이 시장에선 기존의 강자인 동대문엽기떡볶이, 신가네떡볶이 등이 매운맛 경쟁을 주도하는 가운데 즉석떡볶이 업체 두끼떡볶이가 업계 최고의 매운맛에 도전하는 '도전 소스'를 올해 출시해 '매운맛 전쟁'을 선포했다.
▶▶ 스코빌 지수(SHU·Scoville Heat Unit)란?
스코빌 지수는 1912년 미국의 화학자 윌버 스코빌이 개발한 지수로, 매운맛을 측정하는 국제규격이다. 전혀 맵지 않은 0부터 시작해 매울수록 수치가 높아진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풋고추는 1500 스코빌, 청양고추는 4000~1만2000 스코빌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매운맛으로 악명 높은 태국 고추는 5만~10만 스코빌, 멕시코산 고추 하바네로는 10만~35만 스코빌, 인도의 부트 졸로키아는 85만5000~107만5000 스코빌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캐롤라이나 리퍼는 250만 스코빌에 달하며, 순수하게 정제한 캡사이신은 1500만~1600만 스코빌을 기록했다. 가장 매운 물질로 여겨지는 레시니페라톡신의 SHU는 160억 스코빌로 조금만 섭취해도 인체에 치명적이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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