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루비'가 말하고 '집사 진중권'이 받아적었다냥

박다해 기자 2017. 1. 1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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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진중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따끈따끈 새책] 진중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


진중권을 '까칠한 독설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책의 첫 장부터 당황할 수 있다. 도도한 고양이 루비의 언어를 겸허하게 받아 적은 진중권이 당신을 반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트위터를 통해 그가 '냥줍'(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줍는다는 뜻) 이후 '집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본 이라면 이 책이 진중권 저술 활동의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책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그야말로 고양이의, 고양이를 위한,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중심주의'를 주창한다.

시작은 2013년 비 오는 어느 날, 진중권이 "쫄딱 젖어 벌벌 떠는 새끼 고양이를 구해 잠시 돌봐주고 있다"고 밝힌 날이다. '트친'(트위터 친구)들에게 "우유를 토하는데 무슨 일이냐"고 SOS 신호를 보내던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묘(猫)빠'(고양이팬)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는 고양이에게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 줄여서 '루비'란 이름을 붙여주더니 어느새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고양이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중계하는, 영락없는 '고양이 집사'가 된다.

루비와 함께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신간 표지에 활용하더니 급기야는 '루비'에 빙의, '루비의 일기'란 트위터 계정을 만들기도 한다. 19세기 유럽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그랬듯, '냥이'의 매력을 찬양해온 그는 마침내 고양이를 둘러싼 철학과 역사, 문학을 아우르는 책을 내기에 이른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낡은 인간중심주의 집사 문화를 버리고 새롭게 '고양이중심주의'를 뿌리내리자"는 것이 목표다. 책 제목은 데카르트의 유명한 문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데리다의 강연 제목 "고로 내가 그것인 동물"에서 따왔다.

그는 루비와 3년 반을 같이 살면서 궁금한 것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문헌 등을 뒤지며 그 질문을 해결해 나간다. 고양이는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살게 됐는지, 고양이에게도 '창세기'가 있는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고양이는 왜 종종 인간과 대등한 인격으로 나오곤 하는지 등이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시절 새겨진 고양이에 대한 기록부터 시인 보들레르와 말라르메의 '고양이 예찬론'까지, 책은 고양이를 둘러싼 방대한 인문학 탐구서다.

진중권과 고양이 루비 /사진제공=천년의상상


"고양이와 오래 같이 살다 보면 대화가 된다"는 '집사' 진중권은 "고양이는 굉장히 철학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성찰을 자극한다"고 밝힌다. 고양이는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고양이를 주제로 한 편의 훌륭한 인문학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고양이 예찬은 끊이지 않는다. 그는 "고양이는 가족관계를 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며 "어떤 면에선 우리보다 더 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척 친한 것 같은데 영원히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어떤 낯선 느낌들이 늘 남는다. 그게 고양이의 매력"이라고도 했다.

진중권은 책에 다 담지 못한 내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왜 현대사회에서 갑자기 고양이 붐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도 하지 못했다. 책에 넣지 못한 많은 문학작품도 있다"며 "앞으로 다른 분들의 더 많은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책은 출간 전부터 '집사'들의 입소문을 타며 화제가 됐다. 집사라면, '루비'가 들려주는 '고양이중심주의'에 더욱 공감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초보 집사들은 자기들이 우리를 데려왔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우리랑 좀 지내다 보면 슬슬 너희가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외려 우리에게 '간택'당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거야." (루비)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진중권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336쪽/1만 8000원.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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