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유미의 세포들」-세포에 각인 못 시킨 연애는 언젠가 끝난다
사랑하는 모두의 마음속에는 ‘박’이 있다. 사랑 세포가 설치한 그 박은 두껍고 견고하다. 그러나 익숙함이 만들어 낸 일상의 폭력들이 콩주머니가 되어 날아와 상처를 낸다. 박을 단번에 깨뜨릴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주 작은 콩주머니 하나에 열린다.
연애의 시작은 설렌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눈길뿐 아니라 오가는 한마디의 말이, 맞잡은 손이, 모두 다정하고 다정하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상대방과 연결된 것처럼 두 사람은 교감한다.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을 너와 함께 먹고 싶고, 내가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고는 함께 웃고 싶다. 시시콜콜한 너와 나의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쌀떡볶이와 밀떡볶이 중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는 왜 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지, 하는 말들을 주고받으면서도 그저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 게다가 그것은 모두 소중한 정보다.
다른 세포들보다 월등한 ‘프라임 세포’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사랑하는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의 설정에 따르면 사람의 뇌에는 여러 세포들이 있어서 행동을 결정한다. 우선 이성 세포와 감성 세포가 있다. 이성 세포는 ‘맷돌’을 굴려 유미의 이성적 선택을 돕는다. 반면 감성 세포는 야근을 하다가도 “붉게 물든 석양을 향해 뛰어가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특별한 세포들도 등장하는데 멋지게 차려 입은 패션 세포는 예쁜 옷만 보면 신용카드를 꺼내게 만들고, 머리에 떡볶이를 꽂은 출출이 세포는 밤에 야식을 먹자고 조르고, 스피커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입방정 세포는 늘 쓸데없는 말을 해서 감옥에 갇힌다. 주인공인 유미는 이러한 세포들에 전적으로 영향 받는 존재다. 특히 사랑 세포는 유미가 진심을 다해 사랑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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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건 작가의 만화 「유미의 세포들」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
누구에게나 다른 세포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프라임 세포’가 있다. 유미에게는 사랑 세포가 그렇다. 3일 밤낮을 울었던 아픈 이별,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3년 전의 대홍수’를 겪으며 사랑 세포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 3년 동안 유미는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감이 있는 회사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알코올 해독 세포들이 술에 휩쓸려가자 사랑 세포가 “오늘은 안 취하는 날이야”라는 말과 함께 깨어난다. 유미는 “많이 마셨는데 왜 이렇게 안 취하지?”라면서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사랑 세포의 힘이다. 우리도 유난히 취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어느 세포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유미의 세포들>에는 이처럼 작가의 재치가 빛나는 설정들이 가득하다. 예컨대 ‘따끈따끈 사랑의 배리어’는 몸 주변에 보호막을 생성시켜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온도를 유지시킨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그와 한쪽씩 나누어 낀 장갑만으로도 손이 따뜻하다. 옷의 두께와 상관없이 주변의 온도는 언제나 벚꽃 핀 봄날이다. 당신이 그렇듯, 작가에게도 그런 특별한 경험이 있었나 보다.
유미는 소개팅에서 만난 구웅과 연애를 시작한다. 둘은 잘 어울리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연인이 된다. 커플티를 맞추고,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고, 회사 앞에서 서로를 기다리기도 한다. 둘의 ‘꽁냥꽁냥’한 모습이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구웅은 어느 날 늦은 밤에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유미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굳이 가장 큰 컵에 음료수를 담아 건네고, 냉장고를 뒤져 초코 케이크를 내어 놓고, 자신의 졸업앨범을 펼쳤다가, 보드게임을 권하기도 한다. 유미 역시 빌린 물건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찾아왔지만 그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고 서로 민망해져서 일어난다. 응큼 세포는 울먹이고, 사랑 세포는 웅이의 세포들이 곰돌이 복장을 하고 있을 때부터 웅이가 ‘미련 곰탱이’인 것을 알아보았다며 실망한다. 그래도 유미의 세포들이 힘을 모아 보낸 텔레파시에 구웅의 세포들이 반응해서 구웅에게 “늦었으니까 자고 가, 유미야” 하는 말을 이끌어낸다. 마치 내가 연애를 하는 것처럼, 서툴고 따뜻한, 가끔은 아슬아슬하기도 한 두 사람의 모습에 나의/당신의 세포들도 함께 설렌다.
연예 초기 설렘이 시간이 지나 익숙함으로
연애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설렘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익숙함으로 변한다. 더 이상 이전처럼 작은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찾아내고서는 아이처럼 들떠 말을 전하지 않는다. 묘하게 달라지던 목소리의 톤도 점차 일상의 높낮이를 찾고, 옷에 묻은 실밥을 떼어줄 때도 조심스러움이 없어진다. 얇게 썬 밀떡볶이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자연스럽게 몇 번째 포장마차를 찾아 들어가고, 카페에서 상대방이 말없이 화장실에 가도 계절에 관계없이 시럽을 넣지 않은 아이스커피를 미리 주문해 둔다. 이러한 익숙함이 종종 소홀함으로 느껴져서 “애들처럼 젓가락 집는 게 귀엽다고 밥도 안 먹고 바라보던 그 사람은 어디에 갔어?” 하고 물으면 “아, 그 사람은 지난 봄에 죽었지” 하고 답하며 장난스레 웃기도 한다.
유미와 구웅도 어느 단계를 지나 연애의 중반기로 접어든다. 어느 새 1년이 가까워진 그들의 만남은 이제 서로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익숙해졌다. 영화관에서 산 팝콘을 서로에게 먹여주지 않는다. 대신 구웅은 입을 벌리고 ‘쿠우워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팝콘을 흡입한다. 유미가 다급하게 “하나씩 먹어!” 하고 소리치지만 구웅은 이미 절반이나 먹어치운 뒤다. 영화를 보고 나와 코코아와 밀크티를 하나씩 손에 든 그들은,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나누어 마신다. 그러면서 유미는 “설레는 기분은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게 생겼다, 그게 뭔지 정확히 설명하기 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으이그~’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하고 생각한다. 오래 보아 온, 분명 남이 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것 같은 행위,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고 ‘그래 너니까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말이 있다. 유미가 구웅에게 한 그것, 오래된 많은 연인들이 으이그~, 하고는 익숙함과 애틋함을 전한다.
그런데 유미는 얼마 전 구웅에게 “우리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연애가 시작되던 날, 유미의 사랑 세포는 마음에 커다란 박을 하나 설치했다. 그러고는 세포들에게 “구웅에게 불만이 생기면 여기에 콩주머니를 던져” 하고 말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서운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세포들이 몰려가 박을 깨기 위해 콩주머니를 던졌다. 그러나 박은 터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좋아하는 츄러스를 사먹기 위해 줄을 선 유미에게 구웅은 “나는 줄 서서 뭐 사먹는 거 보면 이해가 안 되던데” 하고 말한다. “되게 시간 아깝지 않아?” 하고 덧붙이는 구웅에게 유미는 그럼 다른 것을 먹자며 줄에서 이탈한다.
사실 츄러스를 먹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츄러스를 먹는 시간도,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모두 연애의 시간이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와 희생이 아니라, 함께 하는 그 모든 시간이 소중해야 비로소 연인이 되는 것이다. 츄러스를 못 먹은 출출이 세포는 씩씩대면서 박에 거대한 콩주머니를 던진다. 그래도 박은 터지지 않는다. 그날 밤, 유미는 구웅에게 “웅아 오랜만에 데이트하니까 넘 좋다~ㅋㅋ 츄러스 못 먹은 건 아쉽지만 다음에는 꼭 내가 말했던 빵집도 같이 가자! 오늘 넘 피곤했을 텐데 푹 쉬고 잘 자~ 히힛” 하고는 문자를 보낸다. 구웅에게서 곧 답장이 온다. “ㅇㅇ.” 유미의 예의 세포는 “ㅇㅇ 좀 안 쓰면 안 되나?” 하면서 콩주머니를 발로 걷어차고, 그것이 박에 힘없이 가서 부딪힌다. 그 순간 박이 열린다. 거기에서 ‘헤어져’ 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모두의 마음속에는 ‘박’이 있다. 사랑 세포가 설치한 그 박은 두껍고 견고하다. 그러나 익숙함이 만들어 낸 일상의 폭력들이 콩주머니가 되어 날아와 상처를 낸다. 차가운 눈빛, 자신의 손을 잡는 대신 주머니에 들어간 손, 성의 없는 짧은 문자, 그것이 꾸준히 누적되면서 그 어느 날 느닷없이 연애의 종말을 고하고 만다. 박을 단번에 깨뜨릴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주 작은 콩주머니 하나에 열린다.
이별을 앞둔 구웅은 ‘소중한 걸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대가는 가혹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연애도 그렇다. 설렘은 곧 익숙함이 되고, 그에 따라 가장 소중한 사람을 소홀하게 대하곤 한다. 한 번 열린 박을 다시 닫을 수는 없다. 사랑 세포는 박이 터지기 전까지 전력을 다해 사랑하는 것도 자신의 임무이지만 박이 터지면 돌아서는 것도 자신의 임무라고 말한다. 박이 견뎌내지 못하는 연애를 계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는 익숙함이 소홀함이 되지 않게 하는,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끊임없는 투쟁일 것이다. 처음의 설렘과 반짝반짝함을 세포 하나하나에 잘 각인시켜 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은 언젠가 끝난다.
<김민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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